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면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면
  • 여인호
  • 승인 2022.06.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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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 저 이창민(가명)입니다.” “그래, 창민아 중학교는 잘 다니고 있지?”

“예, 운암중학교 다니고 있어요.” “그래 오랜만이네. 어머니도 잘 계시지?”

“예, 일요일이 스승의 날이라서 전화 드렸어요.” “허허, 고맙다. 공부도 잘 하고 있지?”

2022년 5월 13일 금요일 오후 4시 무렵에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운암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창민이와 통화한 내용입니다. 공부도 잘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창민이는 영호가 대구교대부설초에 교감으로 근무하던 2015년에 만났습니다. 입학을 하고 유난히 교문을 들어서는 게 힘들었던 아이였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교문까지 와서는 울면서 어머니를 끌어안은 채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교문에 있던 영호가 손을 잡고 교실까지 몇번이나 같이 들어갔습니다. 교실에 들어설 때야 울음을 그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 창민이를 영호는 교장이 되어서 다시 만났습니다. 6학년 때는 전교학생회 남자 부회장까지 했습니다. 승용차로 6년 동안 칠곡에서 대구교대부설초까지 등하교를 함께 한 어머니는 가히 맹모삼천지교에 버금가는 모정입니다.

“우리 가족에게. 엄마, 아빠, 동생아.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습니다. 승준이도 고마워. 엄마, 아빠 이제 말 잘 들을게요. 동생아, 이제 누나가 동생이 해달라는 것 다 해줄게. 아빠, 엄마, 동생아 많이많이 사랑해요.” 2022년 5월 31일 1학년 교실에서 정송건(가명)이 수업 정리 단계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교육실습을 나온 대구교육대학교 4학년 교생 50여 명이 참관한 수업입니다. 공부할 문제(배움문제)는 ‘가족에게 감사카드를 써 봅시다.’입니다.

송건이는 영호가 본 아이들 중에 교문과 교실에 들어서는 게 가장 힘들었던 아이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교문까지는 잘 옵니다. 혼자서 교문을 들어서는 게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영호의 손을 잡고 교실에 가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교실까지 가서도 이내 나오곤 했습니다. 학교의 위클래스 상담, 병원 상담, 부모와 담임, 교감, 교장의 연석 협의 등의 과정도 거쳤습니다. 그렇게 4월도 지났습니다. 그러던 송건이가 5월 11일 수요일부터 정상적인 등교를 했습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아주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영호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검정색 구두를 신은 남자를 보면 기겁을 하고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영호의 집은 동네에서 가장 위쪽이었고, 큰집은 신작로를 낀 가게를 했습니다. 60년대에 마을에 들어서는 손님은 신작로를 끼고 있는 큰집의 가게에 들르니, 부모님과 함께 큰집을 갔던 영호는 줄행랑을 치는 게 일이었나 봅니다. 어려서 두려움이 많고 어리숙했던 영호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호는 양복을 입더라도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즐겨 신습니다. 구두를 신을 때도 검정색보다는 갈색을 즐겨 신습니다.

이창민, 정송건, 김영호는 무엇인가 두려운 게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보다는 너무나 큰 초등학교 건물이 두려운 것일 수도 있겠지요. 영호는 시골에서 볼 수 없었던 구두라는 생소한 것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요. 두려움이 있으면 용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호는 “용기와 두려움은 한 이불을 덮고 잔다.”라는 말을 퍽이나 많이 사용합니다. 용기와 두려움의 합은 100이니 용기지수를 높이자는 말도 덧붙입니다.

대구교대부설초에는 ‘어린이 다짐’, ‘학부모 다짐’, ‘교원 다짐’이 있습니다. 학부모 다짐 중에 “내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며…….”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믿고 기다려 줄 때입니다. 우리 아이들이나 그 누구라도 믿고 기다려 주면 그 자신만의 꽃이 됩니다.



김영호 대구교대부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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