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임명제와 임기제의 모순
[대구논단] 임명제와 임기제의 모순
  • 승인 2022.06.2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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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대기자·전북대 초빙교수
정권이 바뀌면 앞 정권에서 임명되었던 공직자들은 정상적인 업무처리에 갈등을 느끼게 될 것이다. 특히 이념적으로 보수와 진보가 엄존하는 정치판에서 자신의 이념성향과 전혀 다른 정권이 집권자로 들어서면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자기이념이나 소신을 밀고 나간다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집권 측의 정책이나 수행방법이 지금까지 자신이 보지하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를 때 그의 처신은 매우 어렵게 될 수 있다. 이 때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 자기생각과 전혀 다른 이념이나 정책을 수행하게 되면 그는 '소신 없는 공직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반면에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정책수행을 거부한다면 그는 공직자로서 상부의 명령을 거부했다는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경우에 그는 엄청난 갈등 속에 상하는 물론 동료지간에도 별다른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결국 앞 정권에서 임명된 사람은 새로운 정권 하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눈총만 받게 된다는 것이 엄염한 사실로 드러난다. 이것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공직 사회에서 말썽을 빚는 원인이 된다.

이를 바르게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번갈아가며 정권을 주고받아 왔기 때문에 임명직 고위공직자에 대해서 임기를 보장하고 있으면서도 정권이 바뀔 때에는 서슴없이 공직을 사퇴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념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자신의 의사관철을 위해서도 즉시 사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재인 정권 하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일가의 수사와 관련하여 엄청난 압박을 받은 것을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다. 당시 그가 사퇴했더라면 오늘날의 윤석열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자신의 사퇴가 곧 조국수사의 중단을 가져오고 조국일가에게 명예로운 상장이 헌정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정의를 지킨다는 검사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서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직무정지와 징계로 퍼붓는 추미애의 맹공을 자리를 지키며 꿋꿋이 버텨냈다. 덕분에 전 국민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드디어 야당후보로 대통령에 당선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여기서 정권과 생각이 다른 윤석열은 어서 사퇴하지 않았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그는 같은 정권에 의해서 임명된 사람이고 정권이 계속 중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경우와 천양지차가 있는 것이다. 이념이 같은 정권이었지만 부정부패를 두고 볼 수는 없었기에 자신의 불리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과감히 맞받아쳤던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정권이 집권하게 되면 앞 정권에 의해서 임명된 사람들은 비록 임기가 길게 남았다고 하더라도 즉시 사표를 제출하여 새 정권의 결정에 순응하는 기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돌아다니는 꼴을 보면 문재인 정권은 국회의 입법독재를 통하여 전 정권이 임명한 사람을 임명권자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도록 자물쇠를 채웠다. 임명된 사람들은 능력에 상관없이 길게 남은 임기를 채울 수 있게 되었고 "법에 따라 남은 임기동안 열심히 일 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왕조시대에는 임금의 한 마디에 모든 결정권이 있었기에 생살여탈의 권한을 임의로 휘둘렀다. 지금은 개인의 권리와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서 집권자도 뒤로 물러설 줄 안다. 그러나 한 번 임명되었으면 임기 끝까지 버틸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생각과 이념이 다른 사람이 붙잡아도 서슬 퍼렇게 떨쳐버릴 줄 알아야 한다.

임명제와 임기제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인 것 같으면서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국민의 뜻을 어긋나게 만드는 중대 과실을 안고 있다. 임기를 부여한 것은 신분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만 지레 짐작하고 있으면 우스개가 된다. 신분보장은 책임부여다. 임명한 정권 하에서 열심히 일하며 아무런 부정도 없어야 된다는 철두철미한 국정철학을 말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임기를 내세워 자리보전에 급급하고 있는 것은 책임의식을 내버린 추태다. 임명직 임기제의 제일의 뜻이 책임완수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그는 공직자로서 이미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입법과정에서 걸러져야 하는 맹점이다.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임명제의 본뜻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제도상의 문제점을 회피하면서 자신의 자리에만 급급하는 파렴치한 행위다. 앞 정권의 임명과 새 정권의 신임은 전혀 다르다.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은 자리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모처럼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을 때 일반인이든, 공직자든 간에 자리다툼과 같은 저열성을 버리고 책임의식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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