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분노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의료칼럼] 분노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 승인 2022.06.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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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마음과 마음정신건강 의학과의원 원장
김성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마음과 마음정신건강 의학과의원 원장
변영로 시인은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 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고 했다. 홧김에 한방을 날려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고, 미루던 일을 열 받아서 한꺼번에 일사천리로 처리하기도 한다. 때론 ‘분노는 나의 힘’이 되어 우유부단한 자의 강력한 동력되기도 한다.

그러나 분노는 대개 부정적인 감정이어서, 삶을 불행의 악순환으로 이르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된다. 무분별한 공격 행동으로 이어지고 분노 표출이 만연한 사회는 도덕적 붕괴와 인성 파괴의 위험성까지 안게 된다.

지난 6월 9일, 분노감에 휩싸인 중년 남성이 대구 법률사무소에 불을 지른 사건이 있었다. 7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너무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희생자들은 부지런히 아침을 가르며 출근하여 바쁘게 일 처리를 하던 직장인이었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으로 궂은 일, 힘든 일을 가리지 않고 가족의 생계를 감당해오던 가장들이었다.

참변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오열하였고 울음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아무리 울어보아도 그리움에 사무쳐 실신을 하더라도 과거 행복했던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함께 꿈꾸어왔던 미래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인간의 정신은 조각나서 표류하게 된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의 생존자 중에 지금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는 분도 많다. 그때 딸을 잃은 어머니는 이번 법률사무소 방화사건 소식을 듣고 불안감이 악화되어 내원하였다. 눈물부터 쏟아지고 불구덩이에서 엄마를 찾았을 딸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 했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나 유족, 가까운 지인들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고통스런 사건 상황의 회상은 다시 끔찍한 시간으로 되돌리기 때문에 말문을 닫거나 세상과 단절되어 지내기도 한다.

심한 재난을 겪은 후 생기는 정신적 불안 상태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 아무 이유도 없는 무차별한 공격으로 벌어진 이런 사건은 삶의 가치와 의미의 상실을 가져올 수 있다. 가해를 받아 손상된 사람들은 극심한 무력감에 빠질 수 있고, 기본적 신뢰감에 타격을 주어 불안이 확산되고 사회적 퇴행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구에 1995년 상인동 지하철 가스 폭발 사고 등 대형 화재 사건이 많았고, 시민들 중에는 이와 관련된 불안감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사회는 그들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애도과정을 잘 치룰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다수의 침묵은 비겁한 회피이며 동시에 죄악일수 있다. 그들을 비난하지 않고 위로해야 한다. 성금 모금을 하거나, 폭력 예방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시기일수록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는 미디어들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시민들이 위축되지 않고 악을 이길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도록 앞장서야 한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개인은 전체에 영향을 주고 전체의 문제는 개인에게 영향을 준다.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모든 집단에 적용되는 명제다. ‘법조계의 문제일 뿐이다. 변호사들은 그런 공격을 받을만하지,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다’. 등의 생각은 우리 사회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다.

사회적 지지는 중대한 재해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힘을 가지게 해준다. 누군가가 자신의 운명에 대해 걱정해주고 있다는 작은 암시만 있어도 절망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매우 소중한 특권이다. 우리의 몸이 안전하게 보존되는 것, 정신적 자율성이 방해받지 않는 것, 현재의 집단 내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을 모두가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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