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더운 여름, 물가에 배 띄워 유유자적 산수와 하나되다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더운 여름, 물가에 배 띄워 유유자적 산수와 하나되다
  • 윤덕우
  • 승인 2022.06.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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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船遊)
고국에 돌아온 ‘독서당계회도’
조선 초기 실경산수화 수작
현재 서울 옥수동 일대 풍경
관료들의 뱃놀이 모습 묘사
선비들, 단합이 목적이었을까?
즉흥시 읊고 기녀와 흥 나누고
현장서 고기 낚아 요리 해먹어
실질적으론 행락 그 자체

때 이른 무더위에 바다와 계곡으로 이른 휴가를 떠났거나, 휴가를 계획 중인 분들이 많다. 올 여름 휴가를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 지금부터 분주해지는 일상이다.

며칠 전 뉴스에 오랜 세월 일본 등 해외를 떠돌았던 조선 시대 산수화 한 점이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16세기 선비들이 한강에서 뱃놀이하는 모습을 담은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 선비들의 우아하고 고매한 뱃놀이 그림이다. 뱃놀이는 ‘선유(船遊)’ 혹은 ‘주유(舟遊)’로 라고도 하며 한마디로 배를 타고 풍류를 즐기는 놀이를 말한다. 강이나 바다에 배를 띄우고 연안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면서 시를 짓거나 소리를 하는데, 주로 큰 강인 대동강, 한강, 낙동강 등지에서 이루어 졌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올 여름 휴가는 뱃놀이로 해야 되나. 오늘은 우리 조상님들의 뱃놀이를 엿보기로 했다.
 

독서당계회도-국외소외문화재재단
작가미상 독서당계회도 견본수묵채색 91.3×62.2cm 조선중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소장.

독서당계회도는 중종(中宗, 재위 1506-1544) 연간에 사가독서(賜暇讀書)한 ‘핵인싸’ 관료들의 모임을 기념하여 제작된 그림으로 현존하는 독서당계회도 3점 중 하나이다. 화면 가운데 우뚝 솟은 응봉(지금의 매봉산)을 중심으로 한양의 자연 풍경과 계회 모습이 묘사됐다. 한강변 두모포(豆毛浦)(지금의 성동구 옥수동에서 관복을 입고 뱃놀이 즐기는 선비들의 모습을 그렸다. 1517년(중종 12년) 두모포에 신축된 독서당은 강변과 이어지는 길 위에 위치한 곳으로, 그림에선 안개에 가려진 채 지붕만이 묘사돼 있다.

조선 시대 유학 인재 양성을 위한 학문 연구 기관인 ‘독서당’을 배경으로 중종 때인 1531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16세기 독서당계회도 3점 중 하나로 그중 제작 시기가 가장 이르다. 해외로 반출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작품을 소장했던 일본인 간다 기이치로(1897~1984·전 교토 국립박물관장) 사망 이후 다른 일본인의 손에 들어갔다가 미국 경매에 나온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나서서 매입에 성공했다. 풍수지리 개념이 반영된 그림으로, 조선 초기 실경산수화의 면모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다음은 부유한 양반님들의 뱃놀이를 보자.
 

신윤복 주유청강 간송미술관
신윤복작 주유청강 지본채색 28.2X35.6cm 18세기 후본 국보135호 간송미술관 소장.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에 나오는 주유청강(舟遊淸江)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선유의 일면목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배를 타고 그 자리에서 혹은 이동해가며 주변의 경치를 즐기기도 하고 흥취에 따라 즉흥시를 읊거나 자리를 함께 한 악공이나 기녀들과 음악과 춤을 즐기기도 했다. 물론 술과 음식도 빠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고기를 잡아 회를 쳐서 먹거나 매운탕을 끓여 먹는 즐거움도 곁들였다. 이들의 선유는 음력 7월 기망(旣望, 16일)에 베푸는 경우가 많았다. 신윤복은 그 명성에 비해 알려진 것이 없어 영·정조, 순조 초년까지 궁중의 자비대령화원으로 활동한 화원 신한평(申漢枰, 1726~?)의 아들이라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지만 그의 풍속도는 조선사회의 이면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주유청강>은 선비들이 기생을 불러 배에서 선유놀음을 하는 그림으로 선비들의 선유문화가 단합과 행사, 와유 등의 고고한 목적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한량들의 행락을 위한 놀이였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뱃놀이는 개인 혹은 집단으로 즐기기도 했지만, 국가 차원에서 이뤄지기도 했다. 사신에 대한 환영연(歡迎宴)으로 배를 띄우고 시회(詩會)를 열거나, 관리 부임 축하의 일부로 뱃놀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방관리직 평안감사 환영연
대동강에 화려한 배 띄우고
앞뒤로 악대·관선·관기들…
횃불 든 사람·환영 깃발 ‘화려’

이 그림은 관청에서 주관한 선유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전김홍도필평안감사향연도
전 김홍도 필 평안감사향연도(平壤監司歡迎圖 月夜船遊) 지본채색 71.2cm X 196.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속담에 ‘평양감사도 제하기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조선시대 감사 중에서 평양감사를 제일가는 자리로 쳤다. 그러한 평양감사가 뱃놀이를 한다면 얼마나 성대할까? 영조 21년, 새로 부임한 평양감사의 환영하기 위해 벌이는 향연을 그린 이 그림에서는 공식적인 ‘선유’는 물론이고, 밤에 벌이는 뱃놀이의 화려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동강 위에는 평안감사가 탄 배를 중심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악대 및 관선(官船)이 늘어서 있고 뒤로는 관기(官妓)들이 탄 배, 음식을 준비하는 배, 사대부나 아전들이 탄 작은 배들이 따르고 있다. 강가에서도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있으며, 성 안 마을 집집마다 환영 깃발이 세워져 있다. 평양에서 열린 잔치의 화려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자 이제 지금의 우리는 어떤 뱃놀이를 해야 할까?

심사정의 <선유도>는 선비들의 ‘와유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와유(臥遊)는 사전적으로 누워서 즐긴다는 의미인데 심사정의 <선유도>는 배라는 공간에 파묻혀 배와 함께 이동하면서 유유자적한 산수를 즐기는 형태의 와유라고 생각한다.
 

선유도 심사정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 선유도 수묵 채색 1764년 제 작 27X37.5cm 국립중앙박관 소장.

심사정의 <선유도>에서는 두 사람의 선비가 배에 눕듯이 기대어 물결과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고 있고, 사공은 노를 열심히 저어 이동하는 모습이다. 그림의 상단에서 용이 이동하는 듯 구름이 떠다니고 그 아래에는 물안개가 자욱하고, 화면의 하단에는 파도는 거세게 일고 있는데 두 선비의 시선을 볼 때, 뱃머리에 기대어 여유롭게 산수를 즐기며 유유자적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와유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배의 뒤편에 탁자가 놓여 있는데 탁자에는 책이 놓여 있고, 백자에는 홍매가 꽃혀 있으며, 고목 위에는 학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는 선비의 서재를 배로 옮겨 놓은 것으로 임포(林逋, 967-1024)의 매처학자(梅妻鶴子)를 연상케 하는 선비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다.

매처학자에 대해 중국의 사서(辭書)인 <사해(辭海>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송나라 때의 임포는 항주 서호의 고산에 은거하였는데 부인도 없고 아들도 없었다.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스스로 즐겼는데, 사람들은 그를 보고 매화로 아내를 삼고 학으로 자식을 삼았다고 말했다. [宋代林逋隱居杭州西湖孤山, 無妻無子, ㎡種梅養鶴以自娛, 人稱其梅妻鶴子.]”

우리나라는 산과 강이 발달해 있어 우리 조상님들은 자연을 이용해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활력을 찾으려고 한 것 같다. 그것은 지금의 사람들에게도 유유자적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시쳇말로 버킷리스트이고 로망이기도 하다.

휴가를 받아놓고 호캉스를 할까 박물관 투어를 할까. 여러 가지 잡다했는데… 독서당계회도의 환수소식과 필자가 좋아하는 심사정의 <선유도>를 보고 ‘나도 낭만적인 뱃놀이를 해야겠다.’ 라고 다짐해 본다. 아! 그러다 정 안되면 동촌 유원지에 떠있는 오리배라도 타고 무사히 여름을 나야겠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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