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위기의 우리경제, ‘짠테크’가 답일까?
[박명호 경영칼럼] 위기의 우리경제, ‘짠테크’가 답일까?
  • 승인 2022.07.0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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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나라경제가 위기다. 이미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내수 경기가 악화되고, 물가는 크게 올랐다. 전기료와 가스요금 등의 인상은 물가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올 여름 소비자물가는 6%를 기록할 것이라고도 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는 지난 5월 기준으로 21년 만에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우리경제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센 경제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정책당국에서는 물가를 잡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통령도 “국민이 숨이 넘어가는 상황”이라고 우려할 만큼 우리경제의 어려움은 심각하다. 내수경기는 물론이고 우리경제를 먹여 살리는 수출 환경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달 21일 ‘2022년 상반기 수출입 평가 및 하반기 전망보고서’에서 올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치솟은 물가에 소비지출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은 알뜰소비에 눈을 돌린다. 소위 ‘짠테크’(짜다+재테크)가 유행이다. 절약을 통해 돈을 모으는 방식인 ‘짠테크’가 새로운 소비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반품 제품이나 흠집 등으로 가격을 낮춘 제품이 잘 팔린다. 편의점에서는 할인이 적용되는 구독 쿠폰 서비스가 인기다. 장바구니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소포장 상품의 구입도 늘고 있다. 유통업계는 물가상승에 대비하여 이미 초저가 경쟁전략에 돌입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도 초저가 PB상품의 도입, 대대적인 세일행사와 함께 농·축·수산물의 직매입 비중을 높이고 있다. 가격을 낮춰서 고객을 잡겠다는 것이다.

기업 차원에서 ‘짠테크’의 원조는 아마도 토요타자동차가 아닐까 한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일념으로 원가절감을 외쳤다. 비용절감을 통한 가격우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방식이다. 물론 비용절감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혁신보다는 현 상태의 개선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으로, 경제위기의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경영 전반에 걸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와야만 경쟁우위를 실현할 수 있다.

경제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야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강화된 ‘탈세계화’라는 해외 공급 요인이 우리경제의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킨 주된 원인이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화’의 혜택으로 성장해 온 우리경제는 ‘탈세계화’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수요측면에서 보면 금리인상으로 소비지출을 억제해서 일시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 하지만 통화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대외요인이 우리경제 위기의 발단이자 핵심이다. 따라서 종합적인 차원에서의 위기 대응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은 나라경제가 경제주체의 생각과 자세와 행동에 달려있다는 대명제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기업 차원의 윤리경영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정부와 개별 가계도 올바른 경제 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가계에서는 소비지출을 줄이고, 정부도 솔선수범하여 정부지출을 억제해야 한다. 기업은 경영전반의 고비용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나 비용의 축소보다 시장을 경쟁적 구조로 만들거나 시장을 재정의(再定義)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기업은 가격인상이나 고용조정, 투자축소 등 손쉬운 인플레 대응방식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대신 원가절감과 기술개발을 통한 혁신경영을 지향해야 한다. 기존의 시장 틀에서 벗어나 시장의 판을 뒤집거나 게임 자체를 바꾸는 시장 재정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정부도 경쟁을 촉진하고, 경쟁을 통해 가격이 내려가는 시장구조를 만드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으로 돈 가치가 떨어지면 국민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최대 피해자는 양극화의 끝단에 몰려있는 서민들이다. 세입자들이고, 영세 자영업자들이며, 비정규직 근로자들이다. 당연히 이들을 배려하는 국가 차원의 지원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 국민 모두가 경제적 고통을 겪는 이웃의 힘든 삶에 눈과 귀를 열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할 수 있을 때 우리경제는 살아난다.

1991년 구소련의 붕괴 당시 회자되던 이야기다. 부자들 가정 냉장고에는 음식물로 가득 차있는데 또 새 식료품을 밀어 넣어서 이미 들어 있던 것들이 썩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졌다. 물론 가정에서의 무절제한 식료품 낭비가 국가 붕괴의 주된 원인은 아니다. 하지만 절제가 결여된 소비는 나라경제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 “절제는 모든 시련에 저항하고 있다는 증거다. 절제는 인내와 자비와 배려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명언이다. 지금 우리는 절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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