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CEO 탐방] 서춘도 “일 앞에선 언제나 YES맨…초긍정적 사고가 소통 비결”
[휴먼 CEO 탐방] 서춘도 “일 앞에선 언제나 YES맨…초긍정적 사고가 소통 비결”
  • 강은주
  • 승인 2022.07.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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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대구·경북도회장
나름의 철학
무엇이든지 항상 겁없이 도전
손해도 봤고 시련도 있었지만
경험 겹겹이 쌓여 기회로 돌아와
직원과 막걸리 한 잔 하는 삶 추구
협회가 하는 일과 성과
정보통신공사업 발전 목적
수주독점 막고 중소기업 보호
작년 49건 개선 상위권 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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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도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대구·경북도회장

기업과 기업을 운영하는 CEO(최고경영자), 그리고 CEO의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꽃이자 동력이다. 기업가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구체화시키는 ‘마이더스의 손’이며, 시대 변화의 최전선에 서서 고뇌하는 리더다. 많은 젊은이들이 기업가·사업가를 꿈꾸지만 도전의 과정은 만만치 않다. 뿐만 아니라 성공한 경영자가 되기는 더욱 어렵다. 남다른 열정·용기·판단력으로 기업 활동이나 사업에서 성공한 CEO는 꿈꾸는 청춘들의 롤 모델이 된다. 대구신문은 각 분야에서 사업과 기업 운영으로 자신의 세계를 개척한 지역 밀착형 CEO를 발굴, 그들의 성공 스토리와 숨겨진 내면을 소개하는 지면을 마련했다. 인생의 출발선에 선 젊은이, 도전적인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주는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희망한다.

서춘도(53) ㈜서경네트웍스 대표는 지난해 3월 제23대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대구·경북도회장에 취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던 어려운 시기였다. 당시 대구경북도회의 불합리한 입찰 개선 실적은 전국 최하위였다. 서 회장은 취임 후 회원사의 권익 향상과 지역 정보 통신사업 활성화를 위해 전력 질주했다. 지난해는 49건의 불합리한 입찰을 개선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했다. 현재 11개 시·도회에서 따라올 협회가 없을 정도로 군계일학의 성적을 내며 연말 최종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변혁이다. 대구 동구 신암동에 있는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대구경북도회 사무실에서 장본인인 서 회장을 만났다.

- 늦었지만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대구·경북도회장 취임을 축하한다. 협회는 어떤 일을 하는가.

△ 1971년에 설립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특별법인이다. 회원의 품위 유지와 복리증진, 공사 기술 향상, 공사시공 방법 개선 및 정보통신공사업의 건전한 발전이 목적이다. 대구경북도회는 1천여 회원사가 있다. 정보통신공사는 전문 업체가 시공해야 품질을 확보할 수 있기에 도급의 분리가 중요하다. 그래야만 건설업체의 수주독점을 막아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저가 하도급으로 인한 시공 품질 저하를 막을 수 있다. 대구·경북도회에서는 공고문 등을 상시 모니터링하여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고 지역 공사 물량 확대와 활성화를 위해 전방위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서 회장 취임 후 대구경북도회 성적이 우등생으로 바뀌었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 관심이다. 집착은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결과를 도출한다. 무엇보다 회원사가 한목소리를 내도록 소통과 화합에 주력했다. 지난해는 신규업체 간담회를 신설, 회원사 간 경영노하우 공유와 멘토링 등으로 상호 교감의 시간을 가졌다. 정보통신공사업계는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기술과 ICT 융합시스템으로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등 새로운 먹거리를 예견하고 업무영역을 확대해왔다. 앞서간 회장들의 노고 덕분에 좋은 결실을 낼 수 있었다.

- 서 회장은 주위로부터 신임이 두터울뿐더러 소통의 달인이라고 불리던데.

△ (손사래를 치며) 나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다. 소가 많이 움직여야 좋은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듯이 나는 열심히 일했다. 아니 미친 듯이 일했다. 왜냐하면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훌륭한 배경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1993년에 정보통신공사업 현장직에 취업, 관리직까지 모든 업무를 익혔다. 30여 년간 종사했으니 여기서 잔뼈가 굵은 셈이다. 그래서 회원사에 필요한 사항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업체를 찾아가고 부딪치고 또 찾아가며 나름의 소통법을 배우고 익혔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다. 양보와 배려는 당장에는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더라. 나는 일 앞에서는 언제나 YES맨이었다. 지금까지 어떠한 상황과 경우에도 한 번도 부정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맥락에서 초긍정적인 사고가 소통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 소통은 결국 사람과의 일인데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가.

△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적당한 음주도 좋아한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음주는 피할 수 없더라. 사람을 만나면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치유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고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회사 직원들과도 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격식 없이 지낸다. 사무실 인근에 장날이 서면 직원들과 함께 가서 파전에 막걸리 한잔하며 담소 나누는 것이 소확행이자 삶의 여유다.

- 일을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면 가정에는 소홀했을 것 같다. 일·가정 공존에 문제는 없었나.

△ 정확히 짚었다. 일의 특성상 현장 출장이 많아서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토·일요일에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첫째가 쌍둥이인데 둘 다 내가 아빠인 줄을 몰랐다. 어느 날 아침, 집을 나서다가 큰 아이와 마주쳤는데, “엄마, 아저씨 간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앞도 뒤도 안 돌아보고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가족을 위해 미친 듯이 일했지만 진정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에 충실했는가를 물었다. 다행히 아이들과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주말에는 아들 셋과 함께 동네 목욕탕에 가서 등도 밀어주며 사나이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나는 학창 시절 오랜 자취생활 덕분에 요리를 좀 한다. 때때로 돼지 수육과 김치찜으로 신공을 발휘하면 아이들과 집사람은 “맛집보다 낫다”라고 칭찬해준다. 우쭐해지는 순간이다. 우리 집은 모든 방문이 열려있다. 심지어 화장실도 열려있다.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 아이들이 밝고 긍정적이다. 그동안 집사람의 희생이 컸다.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 서 회장은 60년대 출생인데 마치 전후 세대처럼 일하고 희생하며 살아왔다. 이러한 노력의 배경이 있게 된 성장 과정이 궁금하다.

△ 경산시 와촌면 강촌에서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을 이장이셨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위로 3남매는 초등학교 졸업 후 모두 일터로 나갔다. 아버지께서 “너라도 공부해라”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철없는 개구쟁이였다. 냉장고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캐비닛을 들고 오셨다. 나는 여닫는 문이 있기에 그것이 냉장고인 줄 알았다. 친구들에게 아이스케이크를 만들어 줄 작정으로 머루 열매를 따서 찧어서 밥그릇에 담아서 캐비닛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아무리 문을 열어봐도 변화가 없었다. 이틀이 지나자 색이 변했다. 상한 것도 모르고 나는 그것이 얼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촌놈이었다.

- 서 회장이 경영하는 서경네트웍스는 어떤 회사인가.

△ 2005년 직원 4명으로 창업, 현재 직원 30여 명과 매년 매출 40억~50억 원의 통신전기공사업체다. 규모는 작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업무 분야의 다각화와 분야별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며 남다른 기술력은 회사의 강점이자 경쟁력이다. 우리 회사의 공사는 민원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도미노처럼 일을 매끄럽게 처리한다고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자랑할 것은 직원의 70%가 20년 이상 장기 근속한다는 것이다. 통신업은 3D업종이다. 전문성을 갖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직접 공사를 해보지 않으면 기술을 습득할 수가 없다. 인력양성이 제일 힘든 부분이다. 오랫동안 가르친 직원이 작업 환경이 좋은 대기업으로 이동할 때 제일 힘들고 힘도 빠진다. 그런 부분에서 대표와 직원 사이에 신뢰 형성이 중요하다. 대표가 궁극적으로 회사의 모든 책임을 지지만 회사의 운명은 직원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직원은 가족이다.

- 사업을 하면서 힘들 때는 없었나.

△ 왜 힘들 때가 없었겠나. 일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업체로부터 새로운 제안이 들어오면 무조건 일을 맡았다. 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많은 일감은 빠듯한 회사 재정에서 한계를 맞기도 했다. 일이 끝났다고 직원을 내칠 수는 없었다. 고정 비용은 늘어나는데 수익은 따라가질 못했다. 급여가 모자라서 개인카드로 돌려막기도 했고 친구,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몇 년간 집에 생활비는 거의 못 줬던 것 같다. 집사람과 갈등도 있었고 고생도 많았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역량이 강화되었다. 지금은 회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노력의 대가로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 안락함과 행복이 있는 지금의 삶이 있기에 늘 감사하며 베풀며 살려고 한다.

- 나름의 경영철학은.

△ 철학이라는 말은 학문적인 것 같아 나와 거리가 멀지만, 나는 현장에서 누구보다 많이 일했다. 모든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겁도 없이 도전했다. 손해도 봤고 시련도 있었다. 그러한 도전과 경험이 겹겹이 쌓여 기회가 되었다. 지금 내가 이 일을 하지 못하면 그 기회는 다른 누군가에게 가고 나에게는 다음 기회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도전은 기술과 경험을 축적했고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 나는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한다. 장날 직원들과 함께 막걸리 한 잔하는 삶의 단면이 경영철학이라면 철학이다.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더 복지를 누리고 보람과 행복을 만끽하도록 사내 복지법인을 별도로 진행 중이다.

- 살면서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는.

△ 운동을 좋아한다. 매일 아침 20층 아파트 계단을 10번씩 오르내린다. 코로나19로 멈추긴 했지만 마라톤대회 100번 참가가 목표다. 노후에는 요리사가 되고 싶다. 제주도 해안가에서 라면집을 열고 싶다. 하루에 딱 30그릇만 파는 최고의 라면집을 계획하고 레시피를 연구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라면을 끓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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