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논단] 수학은 경쟁자가 없다
[교육논단] 수학은 경쟁자가 없다
  • 승인 2022.07.07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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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견숙 대구영선초등학교 교사 교육학 박사
“수학계에서는 경쟁자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수학의 매력은 공동의 연구에 있으며, 동료와 함께하며 연구는 더 효율적이고, 멀리 가고, 깊이가 더해집니다.”

2022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한국 기자들과의 온라인 인터뷰 회장에서 한 말이다. 공동으로 연구하는 경험에 대한 중독성으로, 그는 수학 연구에 십수 년 동안 빠질 수 있었단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어려워했다느니, 고등학교 성적이 최상이 아닌 중간 이상 정도였다느니, 시인이 되고 싶었다는 등 허 교수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화제가 되는 가운데, 내게는 이 말이 가장 와닿았다. 경쟁자가 없는 수학, 함께 연구하는 수학이라니.

코로나 이후 2021학년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우려를 받고 있다. 중위권의 ‘보통학력 이상’의 비율이 감소하고, 최하위권인 ‘기초학력 미달’의 비율이 늘어났다. 고등학교 2학년의 경우 수학 교과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14.2% 정도다. ‘기초학력 미달’이라 하면 교과 내용의 20%도 이해할 수 없는 소위 ‘수포자’를 뜻한다.

‘수포자’는 사회적이고 정치적 맥락에서 등장한 비학술적인 용어지만, 몇몇 학술적인 관점으로 정의하는 시도가 있었다. 이들은 ‘수포자’를 ‘수학에 대한 불안을 넘어서서 학습을 회피하거나 포기하려는 심리적인 의사결정에 이르는 학습자’ 정도로 이야기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수포자를 자처한 학생들에게는 낯선 수학을 만나 경쟁에서 낙오되는 경험, 아무리 노력해도 수학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 이미 패배한 경쟁에서 시간 때우기 등의 경쟁과 관련한 일련의 현상 등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들은 경쟁화된 교육에 대한 부담이 어린 시절부터 내면화되는 것이 수학 교과에서 가장 강하게 표출됨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법철학자인 조지프 피시킨은 이러한 상황들을 ‘병목사회론’으로 설명한다. 병목(bottlenecks)은 말 그대로 유리병의 좁은 입구를 뜻한다. 대학 입시라는 시험 통과 기준이 되는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수학 성적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입시라는 ‘병목’을 성공적으로 통과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 원래의 수학 교육의 목표였던 수학적 사고력 등의 비경쟁적인 목표가 ‘남보다 높은 수학 점수’라는 경쟁적 목표로 바뀐다. 그러면서 수학 교육의 목적도 경쟁적 목적으로 변질된다는 거다. 누군가가 성공하면, 누군가는 실패해야 하는 일련의 상황이 결국 수포자를 만들게 된다. 허준이 교수와의 무수한 인터뷰에서 각종 언론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 암기가 어려웠다던 일화를 버무려 ‘수포자가 필즈상을 받았다’라는 식으로 헤드라인을 뽑아내게 만든 사회적 맥락은 슬프다.

코로나 이후로 학생들의 학력 저하에 대한 해결점을 찾는 것은 비단 수학 교과에 한한 것은 아니다. 교육부에서는 기초학력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기초학력보장법을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시도교육청은 종합계획에 따라 매년 관련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학교에서는 기초학력 진단검사를 시행하고 이에 따라 지도가 필요한 학생을 학습지원대상으로 선정하여 지도할 수 있다. 학업성취도평가가 도입되어 부진 학생을 적시에 발견하기 위한 노력도 시도된다.

올해 새롭게 당선된 교육감 대부분 역시 학습 결손의 회복에 대한 의지를 바탕으로 기초·기본학력에 대한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AI 활용 교육, 기본학력 전수조사, 학습 지원 인력 제공, 집중학기제 운영, 안전망 구축 등 이들이 내놓은 솔루션은 다양하다. 그러한 공약의 실천으로 얼마 전 부산교육청에서는 모든 학교에서 초6, 중3, 고2 대상의 9월 학업성취도평가를 치른 후, 과목, 세부 영역별 성취율이 담긴 성적표를 학부모에게 보낼 예정이라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학생을 제대로 진단하기 위한 평가는 필요하다는 암묵적 동의 아래에도 이러한 시도가 혹여나 학생의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가 하는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경쟁 없는 수학에 대한 어쩌면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교육적 고민도 시도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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