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영화 탑건에서 찾아보는 행복의 조건들
[의료칼럼] 영화 탑건에서 찾아보는 행복의 조건들
  • 승인 2022.07.1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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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혁 반야월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영화 ‘탑건:매버릭’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필자도 2번이나 보았다. 25년전 큰 성공을 거둔 영화 ‘탑건’ 의 후속작이지만, 통상적인 경향과 다르게 이번에는 후속작이 더 재미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 영화가 ‘코로나’로 표현되는 어려운 시기에도 극장에서 인기를 끈 까닭이 무엇일까?

첫째는 ‘즐거움’이다. 이 영화에서는 다른 류에서 보기 힘든 현대전투기의 공중전투가 실감나게 그려진다. 미국 해군의 F18로 대표되는 초음속전투기들이 영화내내 빠른 속도로 비행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 주고 또 손에 땀을 쥐는 스릴을 느끼게 해준다. 미사일을 발사해 목표물을 타격하는 장면들 역시 관객들의 공격욕을 발산시켜 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낭만스럽게 표현된 주인공들의 모습, 장대하게 펼쳐진 하늘과 산과 바다, 첨단무기들의 통쾌한 위력 모두 우리의 눈과 귀를 호강시킨다.

이 영화의 두 번째 흥행비결은 ‘몰입’ 에 있다.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장면들 그리고 주인공들의 진지하고도 섬세한 감정선들은 사람들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세 번째 강점으로 ‘의미’를 꼽을 수 있겠다. 적성국의 핵무기시설을 파괴하여 사람들을 구하고 군인으로서 국가적 사명에 충성한다는 대의명분이 이 영화에 있다. 동료를 잃은 슬픔과 유가족들의 아픔이 인간애를 일깨운다. 남녀간의 잔잔한 사랑이 꽃을 피우고, 가족의 소중함도 느끼게 해 준다. 무엇보다 동료들간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경쟁과 목숨을 던진 전우애가 보는 이들을 전율케 한다.

마틴 셀리그먼은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든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즐거움, 몰입,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우리는 ‘탑건:메버릭’에서 마틴 셀리그먼이 이야기한 행복의 세가지 조건을 모두 발견할 수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는 이 세가지 요소들이 존재하는가? 과연 우리가 보내고 있는 하루하루는 즐거움, 몰입, 의미로 가득차 있는가?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직장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수행할 때 마틴 셀리그먼에게 자신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필자의 진료실에서 이 질문을 던지면 직장, 가정, 사회관계 등에서 세가지 요소를 다 충족한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적다. 특히 직장인의 경우 일이 바빠서 몰입은 잘 되는데 즐거움과 보람(의미)은 찾기 힘들다는 고백을 많이 한다. 진료경험상 한국인들의 경우 유독 ‘의미’를 잃어버리는 사례가 매우 많은 듯 하다.

당연히 이 세가지 요소를 내담자의 문제로부터 살펴보는 것은 정신치료적인 측면에서 매우 유용하다. 결핍을 통찰하는 과정은 의식세계의 표면으로부터 무의식세계의 심층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의 지적 능력과 의지에 따라 깊이를 달리하며 전개되는데, 무의식 깊이 살펴볼수록 기초가 튼튼한 깨달음과 다양하고 풍성한 해결책들이 도출되기 마련이다. 세 가지를 짚어주는 것만으로도 내담자 스스로가 결핍을 깨닫고 해결책을 궁리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우리는 한국인들의 삶에서 [몰입>즐거움>의미] 의 순서대로 행복의 요소들이 열거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국전쟁이후 급격한 산업화, 현대화, 지식화가 우리 사회에 강요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나타난 사회적 합의로, 매우 효율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가혹한 인생관을 구성원들에게 요구하였다. 하루빨리 인재들을 양성하고 국가를 이끌게 해 빠른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시급함이 우리에게 있었다. 사회는 공부 잘하는 청년들을 선발해서 병역혜택을 주고 장학금을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학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졌고 우리의 높은 교육수준은 생산물의 품질뿐 아니라 사회문화를 성숙하게 변혁시켰으며, 이제 K-반도체, K-자동차, K-드라마,K-팝 ,K-방산물자, K-원자력, K-의학 등등 많은 분야에서 전세계에 자랑스러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자원도 없고 영토도 적은데 사람수만 많은 우리에게는 교육만이 살 길이다’ 는 처절한 명분으로 국민들을 자녀교육에 올인하게 한 부작용 역시 심각해졌다.

먼저 우리는 총력을 기울여 배출해 낸 엘리트들이 과연 공익을 우선시하고 정의로운 사회구현에 본분을 다하고 있는지 짚어보아야 한다. 물론 필자는 대다수의 엘리트들이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며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긍정적인 성과들을 내고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헌신을 외면하고 자신과 자기 가족만의 유익을 추구하는 데에만 골몰해 온 엘리트들 또한 존재한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성적순으로 사람들을 줄세우고, ‘학벌’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초유의 ‘학벌 우선 시스템’을 우리 사회에 견고히 구축하고 말았다.

즐거움과 의미를 상실한 채 그냥 ‘열심히’ 일에만 몰입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길을 잃고 방황한다. 어떻게 즐거움과 의미를 우리의 인생에서 회복할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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