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년입니다] 김길산 작가의 ‘정가로이’, “전통 기술 데이터화 통해 도자기 불량률 최소화”
[나는 청년입니다] 김길산 작가의 ‘정가로이’, “전통 기술 데이터화 통해 도자기 불량률 최소화”
  • 윤덕우
  • 승인 2022.07.1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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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나르고 빚고 열기 견디고…
도예가 아버지 영향 크게 받아
자연스레 ‘같은 길 걷겠다’ 다짐
미술 전공·문화재 전수 수련도
다기 브랜드 ‘정가로이’ 개발
茶 문화·백자 계승 의지 표명
전통만 고수하는 건 계승 아냐
현대성 더해 새 작품 만들어야
김길산작가
차도구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차와 차도구의 가치로움을 알리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김길산 작가가 자신이 만든 다기를 소개하고 있다.

◇한 우물을 파더라도 전략이 필요한 세대

시대를 비교하지 않으면 현재의 시대정신을 알 수 없다. 과거의 청년들이 걸어온 시대와 현재의 시대는 확연히 다르다. 적어도 3~40년 전, 과거 시점에서는 성실과 근면으로 한 우물을 오랫동안 깊게 파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르다. 시대의 변화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파던 우물에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가차 없이 다른 우물을 찾아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 우물을 파더라도 전략적인 계획이 수반되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 진다. 전략적 계획을 위해서는 시장경제와 변수에 대한 예측이 필요하다. 만일 예측하지 못 한 변수가 생기더라 하더라도 새로운 허들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대가 바로 오늘날의 청년세대인 것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기법을 구현한 백자 차도구를 세계무대에 선보이고 싶다는 당찬 꿈을 가지고 있는 김길산 작가(30세)의 사례는 우리가 지켜야 할 민족정신과 청년세대가 가꿔나가야 할 시대정신의 교집합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김길산 작가가 차도구를 빚기 시작한 이유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 차 문화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차도구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차와 차도구의 가치로움을 알리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활약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과거를 담아 내일에 전하는 과정 또한 달라져야 한다

우리의 차문화는 고대사회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전통 문화의 하나로서 의식다례와 생활다례 두 가지 모두 성행했다. 차 생활은 단순히 차를 우려내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차와 관련된 주변 문화를 동시에 체험하는 정중동(靜中動)의 미를 추구하는 하나의 행위예술이다. 차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차의 맛과 품격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차도구들이 필요한데 이를 통틀어 다도구라 칭한다. 다도구의 재질로는 금, 은, 동, 철, 도자, 옹기 등 매우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주류를 이루는 것은 도자기라 할 수 있다.

도자기는 다른 재료에 비해 저렴하고 대중적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따뜻한 질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다기의 재료로 적당하기 때문이다. 다기는 일반적으로 보통 그릇과는 다르게 차의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차의 정신이란 한 인격체가 삶의 아름다움을 체험하면서 자기 성찰을 하는 조화된 마음이다. 개인적으로는 편협하지 않는 인격의 어울림이고 사회적으로는 공동체에서 더불어 살아가려는 상생(相生)의 정신인 것이다. 그래서 다기는 우리의 일상과 함께 삶의 의미를 함께 담는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다기는 다기 자체의 예술적 가치를 넘어 차문화의 전승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차문화는 다기에 과거를 담아 내일로 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김길산 작가는 다기가 가지는 민족정신과 계승 방법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과 철학이 있었다.
 

김길산 작가 작품
김길산 작가의 작품들.

◇아버지에서 아들로, 어제에서 내일로 전통을 잇는 것이 소명

김길산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인터뷰 내내 아버지를 향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롤모델이며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자부심이 크다고도 말 했다. 김길산 작가의 아버지는 명장 김종훈 선생이다. 김길산 작가와 그의 아버지는 수년째 경북 성주의 산골에서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무거운 흙을 날라 그것을 빚고 뜨거운 가마의 열기를 작품과 함께 견뎌내는 삶을 선택한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성장해 왔다고 그는 회상했다. 인고의 시간을 통해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 냈을 때 그것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미술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전수 장학생으로 수련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백자를 만드는 행위는 개인의 작품세계나 자아실현을 넘어 숭고한 우리문화의 맥을 잇는 고귀한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고도 덧붙였다. 또한 자신이 빚은 작품에 ‘정가로이’라는 브랜딩을 한 이유에 대해서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고 했다.

“제가 만든 정갈한 도자기로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맥을 이어나가겠다는 하나의 다짐이었습니다” 짙은 외색에 익숙해진 도자기를 볼 때 마다 안타까움을 느꼈고, 그런 도자기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자신의 역할과 정체성은 확고해졌다고 말했다.

“흔히 사람들은 전통이라고 하면 과거의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생각을 탈피해야 전통을 계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김길산 작가는 전통에 대해서도 자신이 내린 정의가 분명했다. ‘전통은 여러 선대 장인들의 실험이 응축된 결과물이며 그 중 최상의 기술이 모여 오늘날에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의 발달과 함께 계승 방법과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특정 분야의 장인으로 분류된 사람이 도제식으로 수제자를 길러내 전통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다면, 현재는 그 과정들을 데이터화하여 면밀한 분석과정을 통해 전통을 이어나가는 방법과 방식에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길산 작가는 아버지 세대의 기술을 전수 받아 ‘온도, 흙의 성질, 유약의 성질 등’을 데이터화 하여 불량률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자신에게 부여된 새로운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말 했다. 그리고 불량률을 최소화하여 얻어진 작품과 시간에 전통도자기의 형태에 현대를 접목시켜 창의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 내고, 백자가 가지는 가치를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했다.

◇전통을 지키는데 머무르지 않고 빛나는 현대의 예술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시대의 요구

‘무형문화재’는 문화적, 역사적으로 가치가 뛰어난 것들 중 사람의 행동이나 표현을 통해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무형문화재가 된 사람은 그 분야의 독보적인 권위자라 할 수 있다. 무형문화재가 되기 위해서는 전수장학생→이수자→전수조교를 거쳐야 하는데 한단계 한단계 올라갈 때 마다 소요되는 최소연한은 있어도 최대 연한은 없다. 평생을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노력해도 어려울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김길산 작가의 최종 꿈도 무형문화재라고 했다. 그렇지만 무형문화재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본인이 걸어온 길들이 없어지거나 퇴색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더욱 더 노력하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없다고도 덧 붙였다.

“제가 백자로 다기를 만드는 이유는 우리나라 차문화와 차도구인 백자가 가지는 가치 두가지를 동시에 계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차를 모르면 차도구를 만들 수 없고, 차도구를 모르면 차를 진정으로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죠”

“전통을 지키는데 머무르지 않고 빛나는 현대의 예술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시대의 요구라고 한다면 그것의 가치를 나부터 더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김길산 작가는 최근 몇 년간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서울, 울산 등 광역권 대도시는 물론 해외에서도 수차례 작품전시회를 개최했다고 말 했다. 내가 이해한 전통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이 전통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일상에 정작 우리의 것은 많지 않은 요즘이다. 얄팍한 기교와 기술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선조들의 전통과 문화를 인고의 시간 속에 묵묵히 지켜오고 있는 청년이 있기에 어제의 아름다운 유산이 내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나 (청년활동연구가/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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