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우리 집 바닥은 아랫집 천장입니다
[달구벌아침] 우리 집 바닥은 아랫집 천장입니다
  • 승인 2022.07.1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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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새벽녘, 잠결에 뒷집 개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연이어 옆집 사내의 고함이 따라 흐른다. '제발 잠 좀 자자, 참을 만큼 참았다'라며 빗발치듯 허공을 향해 폭언을 퍼붓는다. 옥상에 올라 고함을 지르는지 들끓어 오르는 화마가 골목마다 차고 넘쳐 창문을 타고 넘나든다.
잦은 비와 불볕더위, 두툼하게 부풀어 오른 구름이 햇빛을 가리는 날의 연속이다. 더군다나 코로나19가 재 확산하는 가운데 신규 확진자 수가 또다시 4만 명대를 넘어서고 있다. '더블링' 현상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심지어 우리 집 고양이의 기운까지 저기압인 듯 낮게 가라앉아 있다. 가슴 마디마디에 시한폭탄 하나씩 안고 사는 사람들처럼 긴 장마로 인한 우울감에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무섭게 짙어지는 담벼락이 초록 일색이다. 끝 간 데 없이 타고 오르는 담쟁이들의 열정이 지붕을 넘어 하늘에 가 닿으려는 듯 그들의 모습 또한 지쳐 보인다. 옆도 뒤도 발아래 한 번 내려다볼 틈도 숨 고를 새도 없이 위만 올려다보며 걷고 또 걷는다. 스크럼을 짜며, 온몸으로 배밀이를 한다. 시멘트 바닥처럼 거칠고 건조한 세상을 향해 거침없는 강행군이다.
화단 가장자리 담벼락 한편 겨우 기대고 서 있는 담쟁이의 모습이 위태롭다. 뙤약볕 아래 작렬하던 여름을 견디며 무수한 잎들과 가지를 키워내느라 훤히 드러나 있는 발목이 아려온다. 메마르고 뒤틀린 뿌리가 세면대를 붙들어 잡고 선 채 숨 가빠하는 그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가 사는 집 화장실은 내가 사는 집 안방과 맞물려 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집의 등은 내 집의 마당인 셈이다. 그는 오늘도 여전히 화장실 세면대를 기둥처럼 붙들고 선 채 집채만 한 고래가 수면으로 잠시 올라와 숨 고르기 하듯 고래고래 고함을 친다. 새벽과 한밤중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포탄 훌뿌리는 소리 같다.
"내 좀 살자. 숨 좀 쉬자. 제발, 누가 날…."
순간 그의 아내가 한껏 풀이 죽은 얼굴을 하고 마당을 지나 뒤뜰로 걸어 나온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나를 불러 세운다. 까치발을 하고 화분 하나를 담장 너머로 내민다. 봉선화다. 올해 유난히 예쁘게 피었다며 미안한 맘에 드리는 것이니 받아달라고 한다. 괜찮다며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굳이 사양하는데도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새댁아, 이거라도 받아준다면 미안한 제 맘이 조금은 덜어질 것 같아 그래요."라며 머리가 바닥에 가 닿을 듯 연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인다. 서로 못 할 짓 하지 않도록 알아서 더는 타오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앞집이나 옆집 너나 할 것 없이 담장을 사이에 둔 이웃들이 서로 얼굴 마주 보며 인사를 건넬 때마다 입을 댔다고 한다.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동네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라며 애를 태웠다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우리 집 마당에 뿌리를 둔 담쟁이가 담장을 타고 올라 앞집으로 옆집으로 넘나들던 때가 있었다. 이웃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흉물스럽다거나 뿌리가 벽 속을 파고들어 담벼락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들어 담쟁이를 잘라냈으면 했다. 더군다나 그녀는 꽃피우지도 열매 맺지도 못하는 것이 날 세운 칼처럼 이파리만 시퍼렇게 물오른 담쟁이로 인해 언젠가는 그녀가 사는 집 또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폭우처럼 거세게 항의를 한 적이 있다. 그녀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뒤늦게 사과를 드려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여 건넨다.
뿌리를 뽑아내지 않는 한 내년 봄이면 또다시 자랄 텐데. 위로만 보고 타 올랐던 내 맘속 끊임없는 질문들의 해답을 찾은 듯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바닥을 치고 있는 길 잃은 담쟁이를 두 손으로 거두어 담장 위로 길을 내어 주었다. 저렇게 해서라도 살고 싶을까. 원망한 적 내게도 있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어느 날부터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원망이 쌓여 측은한 맘으로 돌아선 후, 사위가 고요한 날은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홀로 먼 길 떠나셨나.' 단 한 번도 '괜찮아요?' 따뜻한 말 한마디 물어 봐주지 못했는데.
우린 모두 누군가의 양보와 배려 덕분에 큰 사고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삶이라는 무대 위, 누구든 막론하고 천장과 바닥에 설 때가 있다. 급한 마음에 앞사람을 밟고 가거나 변화무쌍하게 차선을 바꾸며 끼어들기 해 본들 어쩌겠는가. 붉은 신호등이 켜지면 누구나 정지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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