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장재희 10년만의 개인전…아트스페이스 펄 30일까지
작가 장재희 10년만의 개인전…아트스페이스 펄 30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2.07.19 2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여년 암청에 휘둘리다 행복해지려 형광색 선택
중년에 새롭게 발견한 희망의 색
10년 고민 끝에 물결무늬로 표현
구상계열이 결국은 추상으로
형광색 연작 희망 메시지 가득
장재희작-초록꽃길
장재희 작 ‘초록꽃길’

작가 장재희는 순수미술에서 선호하지 않는 형광색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가 형광색을 그림의 중심에 놓기까지 나름의 절박함이 없지 않았다. 광고나 경찰복, 소방복 등 특별한 강조가 필요한 분야에서 분명한 목적의식 하에 사용되는 색으로 알려진 형광색을 순수 미술에 접목하는 파격을 감행할 만큼, 당시 그의 심정을 복잡했다. “제가 작업을 끌고 가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작업에 제가 끌려가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돌파구로 형광색에 끌렸어요.”

순수미술이 강렬함의 끝판왕인 형광색을 일부만 사용하는 것도 꺼리는 정도인데, 화면 전체에 도포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과감했다. 화면 전체를 형광색 찬사로 물들였다. 그런 그의 화면을 마주하고 혹자는 “가볍다”고 평할 수 있지만, 작가는 오히려 반색한다. “내적으로 조금 가벼워지고 밝아지고 싶어 형광색을 택했다”는 그의 고백을 듣고 나면, 의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형광색으로 빛나는 그의 작품을 아트스페이스 펄에서 만날 수 있다. 10년만의 외출인 개인전 ‘DISCOVER’전에 형광색으로 아로새긴 창작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가벼운 형광색 작업은 무거운 암청색으로 점철된 ‘표류’ 연작에 대한 반동으로 태동했다. 그는 90년대 중반부터 형광색 작업을 발표하기 이전까지, 근 20년간 전지(全紙)에 암청계열로 과거와 현재, 삶과 예술을 교차했다.

작가에게 암청색은 욕망에 대한 오마주였다. 당시 그는 주목받는 그림을 그리면서 화가로 성공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중년에 접어들면서 강렬했던 욕망의 빛도 조금씩 사그라 들었고,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형광색은 자유에 대한 은유적인 표상으로 그의 의식에서 급부상했다.

화가와 색은 상호관계로 묶여있다. 색이 화가의 내면을 반영하는 매개가 되기도 사용되지만, 어떤 때는 색이 작가의 내면을 끌고 가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그의 형광색도 그런 관계 속에서 태동했다. 긴 시간을 암청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다, 암청색에 휘둘리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색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는 무거운 암청이 자신의 내면상태으로 파고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면 속 불행한 기운이 자신에게 덮쳐오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기임을 직감했고, “이제는 그림도 나도 행복해지자”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희망의 전령사로 형광색에 주목했다.

그림은 작가의 분신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면에 흐르는 기류와 무관할 수 없다. ‘표류’ 연작은 90년대 후반에 그의 내면을 지배하던 성공을 향한 욕망의 표출이었다. 암청색의 면을 수십 번 반복하여 층층이 쌓고, 표면의 검푸른 무게감 위에 모(毛)가 다 낡아 나무 막대가 된 붓 끝으로 흰색 물감을 묻혀 벽에 글을 쓰듯 새겨 넣으며, 성공에 대한 갈망을 시각적으로 서술했다.

암청색 연작이 30대의 자화상이었다면, 형광색 연작은 중년의 자화상이다. 불혹을 넘기고 성공에 대한 욕망의 칼날이 무뎌지면서, 삶도, 그림도 끝없이 달리는 욕망의 전차에서 내려와 자유롭고 싶어졌다. 이제는 그도, 그림도 행복해져야 한다는 외침이 내면에서부터 솟구쳤다. 새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형광색은 중년의 그가 새롭게 발견한 희망의 색이었다. 그가 새롭게 추구해가는 자유와 행복의 가치를 서술하는 색채로 형광색만한 것이 없다고 받아들였다. “형광색을 만나면서 성공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림 그리는 일을 즐거워졌어요.”

형광색으로 작품을 꾸리기까지 긴 고뇌의 시간을 가졌다. 꼬박 10년이라는 시간을 “형광색으로 어떻게 그림을 꾸릴지”에 대한 과제와 씨름했다. ‘어떤 형상으로 표현할 것’인가부터 형광색의 ‘밀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난제 해결이 급선무였고, 고심 끝에 무결무늬 속에 형광색을 담아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막상 자유의 상징으로 형광색을 채택했지만, 물결이라는 틀에 얽매이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물결무늬를 버리고 더욱 깊어진 추상으로 확장해갔다.

작가는 “형광색에 대한 두려움이 물결무늬라는 틀에 기대게 한 것 같다”며 물결무늬가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형광색이 워낙에 튀다 보니 사람들이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물결무늬를 빌려 표현하려 했던 것 같아요.”

작업 초기에는 구상계열의 작업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그는 태생적으로 추상성이 탑재된 작가였다. ‘표류’ 연작에서 무심히 긋고 쓰고 지우며 구축한 암청색 면(面)의 중첩을 통해 거대한 추상의 세계를 표현했듯이 형광색 연작 역시 결국 추상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형광색을 기반으로 직선과 곡선 등의 선의 변주로 ‘행복’과 ‘자유’라는 가치들을 서술해갔다. “직선은 면보다 딱딱하지만 정리된 느낌이 있어 좋고, 작가에게 더 자유로운 조형요소에요. 형광색의 선명한 느낌과 강렬한 기운을 살리는데 선(線)만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에게 영감의 원천은 사람도, 그렇다고 자연도 아니다. 바로 작업하는 그 순간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업에서 다음 작품의 단초인 구성이나 색체 등의 개괄적인 요소들을 결정한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작업에 임하기 때문에 작업을 시작할 때 밑그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그림은 내가 만들어 내는 꽃 같은 아름다움이고, 내가 만드는 정열의 불꽃놀이며 나의 아픔이자 희망”이라고 한 작가의 말처럼 그림은 그의 분신이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내면의 감정들을 진정성 있게 표현하면 그 자체로 서사가 된다. 작업은 그에게 밑그림 없는 내면의 흐름도(圖)와 다름없다.

“저는 체화된 내면의 깊이를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작가이길 원해요. 그렇기에 제 그림은 마음의 빛을 색의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지요.”

그에게 그림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는 도구이자 삶의 의미다. 그림을 통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감각한다. 아침이 밝으면 새로운 하루가 주어지듯, 그림은 그에게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자신을 항해하는 배와 같다. “오로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제 안의 외침을 모른 척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매일 그림을 그려 나갑니다.” 전시는 3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