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난 자리
[달구벌아침] 난 자리
  • 승인 2022.07.2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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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너무 가까이 있고 쉽게 만질 수 있어서 귀한 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그렇고, 나의 젊음이 그렇다. 곁에 있을 때는 잘 모른다.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었는지를. 늘 그렇듯 그 사람을 멀리 떠나보낸 후, 그 순간이 한참 지난 후 깨닫게 되는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뭐든지 가까이 있을 때는 잘 모른다. 한 발짝 떨어져 멀리서 볼 때 그 진가(眞價)가 제대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부터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사람은 함께 있을 때는 존재의 고마움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이 떠난 자리, 난 자리에선 그것이 보인다.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었는지가 그 사람이 떠나고 난 빈자리에서 보인다. 그래서 한 사람의 평가는 그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 제대로 이뤄진다. 곁에 있을 때는 일상이라 객관적으로 그를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인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늘 떠나고 난 뒤에 '구관이 명관'이란 소릴 한다. 이게 우리 어리석은 인간의 단편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고 싶다. 그래서 행복을 찾아 저마다 열심이다. 파랑새를 찾아 길을 떠난 치르치르 미치르 남매처럼 오늘도 우리는 행복을 찾아 길을 나선다. 그런데 행복을 그렇게 찾아다녔는데 행복을 찾아 길을 나서던 그곳이, 그때가 행복한 곳이었고, 행복한 때였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시간이 한참 지난 후라서 슬프다. 숲 속에서는 숲이 보이지 않고, 숲 밖으로 빠져나와서 숲이 보이는 것과 같다. 어리석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모두 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잃고 난 뒤에 깨닫는다고 해야할까?
아이들이 이제 장성하여 모두 성인이 되었다. 어느 날부터 뭔가 허전함이 내 맘을 채워나갔다. 어릴 때 아이들 사진을 보면 그때가 그리웠다. 분유를 먹이고 트림시키고, 품 안에 안고 잠을 재울 때가 그리웠다.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도 함께 잠들던 때가 그리웠다. 아이들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고, 말을 하기 시작할 때 늘 아빠 품을 찾던 그때가 그리웠다. 지금에 와서야 그때가 좋은 때였구나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좋은 때구나'라는 걸 잘 알지 못했다. 늘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보인다. 손주를 보게 되면 내 자식보다 더 사랑스럽다고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같다. 자녀를 다 키우고 뒤돌아보니 그때가 좋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때를 그리워하다가 손주가 태어나고 온전히 순간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신께 "다시 한번만 그때로 나를 데려다주세요"라고 소원을 빌었는데 그때로 돌아온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신이 선물로 준 행복한 시간. 그래서 이제는 행복의 한 복판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나에게도 선물 같은 시간이 왔다. 지난 5월에 어여쁜 손녀가 태어났다. 요즘 손녀를 본다고 정신이 없다. 아들네와 같이 생활하고 있는 우리는 3대가 같이 사는 가족이다. 아직은 100일 안되어서 하는 일이라고는 먹고, 자고, 싸고, 우는 것이 하루 일상이다. 그러다가 한 번씩 옹알이를 하고, 눈 맞춤을 하고, 활짝 웃을 때 모든 걸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새벽에 몇 번씩 깨어 분유 먹이는 일도 행복이다. 아주 손녀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이 아이가 커버리고 시간이 지나고 지금을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맘껏 품 안에 안고 사랑의 말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을 보고 말을 하신다. "지금이 좋을 때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그 뜻을 잘 모른다. 당연하다. 지금에서 멀리 떠나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그 말을 하고 있는 그 어른들 역시 지금이 좋은 때라는 것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고, 행복한 때라는 말을 자신에게도 해야 한다. 소중함을 잘 아는 것도 삶의 지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내게 있는 사람을, 그리고 지금 이순간을 떨어져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한국이 좋은지는 한국에 있을 때 모른다. 한국을 떠나봐야 한국이 좋은지 안다. 그래서 한 번씩 내 삶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야 내가 보인다. 내 속에 너무 오래 갇혀있으면 내가 보이지 않는다. 외로운 시간, 혼자의 시간에 던져져 오롯이 혼자일 때 내가 보인다. 소중한 가족도 마찬가지다. 멀리 떨어져 있어 봐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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