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어로수렵활동만으로 먹을 것 구하는 동방별 향해”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어로수렵활동만으로 먹을 것 구하는 동방별 향해”
  • 김종현
  • 승인 2022.07.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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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지상천국을 구상했던 달구벌의 선인들
위지동이전 ‘별나라의 별 동네’ 12국
경주·안동·포항·의성·군위 등 기록 돼
삼국사기 진한 12국에 영천·대구…
선인들 약 10만 년 전 아프리카 출발
낮에는 태양·밤에는 달·별 보며 이동
3~4만 년 전 지상최대낙원 달구벌에
고대천문학,고조선~고구려~조선까지
신라침반
신라(新羅)란 신라침반(新羅針盤)의 준말이다. 글 그림 이대영

◇선사시대 달구벌의 국명 찾기

달구벌이 신라영토에 복속된 제5대 파사이사금29(婆娑尼師今, 108)년 5월에 홍수와 기근이 들어 민심이 극도로 요동쳤다. 신라는 민심동요기를 틈타 달구벌의 다벌국(多伐國)을 정복했다.

천문학에서 신라를 샛별(金星)로 생각했는데, 가뭄이 지속됨에 따라 전쟁의 신(火星)이 날로 붉게 타오고, 민심이 극도로 격화하자 국왕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 끝내 화근을 없애고자 만조백관이 모여서 낸 결론은 금극화(金剋火)였다. 화성이 성남(火星叱怒)은 바로 “불(火)= 적색(赤色)=남주작(南朱雀)”으로 인식했다. 곧 바로 화근제거행동에 들어가 진화정벌(鎭火征伐)을 기획했다.

진화정벌은 비지국(比只國, 昌寧)▶다벌국(多伐國 ▶초팔국(草八國, 陜川草溪) 순으로 정벌하여 신라에 복속시켰다. 그럼에도 정벌당했던 지역이 안정되지 않자, 드디어 244년부터 달성토성을 호국성으로 축성을 시작했다.

일본서기에선 249(신공황후39)년에 신라정벌을 위해 ‘탁국(卓國)’ 혹은 ‘탁순국(卓淳國, 2020년 창원으로 밝혀졌음)’ 병영에 주둔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더 이상은 머뭇거릴 수 없어 261(첨해이사금15)년에 달성을 완공하고 나마극종(奈麻克宗)을 초대성주로 파견했다. 여기서 나마(奈麻)는 신라 17등관계급 가운데 11등관계급(等官階級)에 일명 나말(奈末) 혹은 내말(乃末)로 칭했다.

10등관계는 대나마(大奈麻) 혹은 한나마(韓奈麻)라고 했다. 극종(克宗)은 국악 혹은 거문고 등의 악기제작을 업으로 했던 사람을 칭했다. 통일신라의 기반을 닦고 보니 달구벌의 광활한 군사적 요충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신문왕은 호국사찰 송림사를 682년에 건립하는 등 비밀리 천도사업을 추진했으나 686년 윤(潤) 9월 26일 장산성(獐山城)에 노루사냥을 나왔다가 신월성진(新月聖眞: 경주귀족)들에게 천도의 밑그림이 들통 나는 바람에 거센 저항 끝에 복안을 접고 말았다.

한편 진(晉)나라 진수(233~297)가 저술하고 정사로 인정받는 ‘삼국지’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서 한반도 ‘별나라의 별 동네(辰國辰韓)’ 12국을 열거했는데 사로국(斯盧國, 경주, 지증왕 때 국호를 신라), 기저국(안동), 불사국(不斯國, 양산 혹은 창녕), 근기국(勤耆國, 포항 혹은 청도),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 의성), 염해국(울산 염포동), 군미국(軍彌國, 군위군), 여담국(如湛國, 사천시), 호로국(戶路國, 상주함창 혹은 영천), 주선국(州鮮國, 경산 자인), 마연국(馬延國, 밀양시) 혹은 우유국(優由國, 울진 혹은 영일만) 등으로 기록(추정)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정사인 삼국사기에 등장하고 있는 진한 12국을 추려보면 감문국(甘文國, 김천시 개령면), 골벌국(骨火國, 영천 금호·화산·신령면), 다벌국(多伐國, 대구), 비지국(比只國, 창녕), 소문국(召文國, 의성), 실직곡국(悉直谷國, 강원도 삼척), 읍즙벌국(音汁伐國, 안강읍), 압독국(押督(梁)國, 경산), 우시산국(于尸山國, 울주군 응촌면), 거칠산국(居漆山國, 부산), 이서국(伊西國, 청도군) 그리고 초팔국(草八國, 합천군 쌍책과 초계 사이)으로 추정(기록)하고 있다.

이어 삼국사기 신라본기가 아닌 열전이나 야사에 나오는 사량벌국(沙梁伐國, 상주, 三國史記昔于老傳), 창녕국(昌寧國, 안동, 練藜室記述), 구령국(駒令國, 봉화 춘양면, 練藜室記述), 소라국(召羅國, 봉화 법전면 소천리, 練藜室記述) 및 장산국(해운대 장산, 三國遺事, 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서 국명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자기록이 아닌 구전국명(口傳國名)으로는 김천시(甘文國)를 중심으로 어모국(禦侮國, 김천시), 문무국(文武國,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배산국(盃山國,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 아포국(牙浦國, 김천시 아포읍) 등이 있었다. 변한(弁韓)에 속했던 주조마국(走漕馬國) 혹은 (卒馬國, 김천시 조마면) 등이 전해오고 있다.

◇선사시대 천문학으로 본 ‘多伐國’

선인들은 대략 10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출발해서 낮에는 하늘의 태양, 밤에는 달과 별을 보고 파라다이스를 꿈꾸면서 어로수렵활동만으로도 손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는 해안을 따라 동방별을 향해, 지상최대낙원을 찾아서 3~4만 년 전에 이곳 달구벌(한반도)에 들어왔다. 아프리카 혹은 이집트에서 동방별은 우리나라 28수 별자리에서 미수(尾宿, 전갈자리)와 기수(箕宿, 궁수자리)에 해당한다.

연려실기술에서 한반도(朝鮮)는 마지막 고천문 12천의 십이차(十二次) 석목(析木)에 해당하고, 29수에선 미수(尾宿)와 기수(箕宿)에 해당했다. 달구벌(한반도)에 하늘 한 가운데 있는 은하수가 있고, 그 가운데 미수(尾宿)가 있다. 은하수는 하늘에 흐르는 거대한 강물처럼 보였다. 한반도에 도착했던 선인들은 이런 고대천문학을 고조선 ▶고구려(四神圖) ▶고려▶조선까지 이어왔고, 이를 1395(태조4)년에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석판에다가 새겨 새로운 천년천문의 터전을 마련했다.

바다를 항해함에 있어서도 BC 1만 년 이전에는 대부분이 해안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인문항법(人文航法, humanities navigation) 혹은 지문항법(地文航法, topographical navigation)을 사용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북극성 혹은 십자성의 별자리를 이용하는 천문항법(天文航法, astronomical navigation)을 창안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천문항법을 이용, 669(문무왕9)년, 672(문무왕12)년 및 869(경문왕9)년에 신라침반(新羅針盤)을 만들어 중국에 진상했다.

자석과 자침을 생산했던 지역에 따라 사로신라(斯盧新羅) 혹은 강회신라(江淮新羅)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이미 천문항법을 이용한 새로운 나침반(新羅針盤)을 사용했다는 의미다. 신라(新羅)란 신라침반(新羅針盤)의 준말이다. 이런 과학적인 기반에서 장보고(?~846)는 해상왕국을 꿈꾸고 건설했다. 이전에도 국왕의 운세를 관장하고 있다고 믿었던 북두칠성 자미원(紫微垣, 玉皇上帝天宮)의 천기를 알고자 633(선덕여왕2)년에 첨성대를 건립하였다.

사실, 신석기시대에 들어와서 농경을 하면서, 농사는 하늘(별들)이 좌우하는 것이라는 믿음에서 천문학에 관심이 높았다. 농사 농(農)자를 풀이하면 풍년 풍(豊)자와 별 진(辰)자가 결합한 문자이고, 여기서 별 진(辰)자는 바로 남두육진(南斗六辰)이 좌우한다고 믿었다. 사실 오늘날 기록에서도 BC 3000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에서는 양치기(목축)가 주업이기에 양치기(Dumuzi) 별자리를 중시했다. 그리스로 넘어가서 물고기자리, 고래자리 및 황소자리 등으로 세분되었고, 이에다가 그리스신화를 입혀 스토리텔링(storytelling)한 게 오늘날 황도 12궁이고, 여기서 점성술이 발전되었다.

1922년 국제천문연맹(IAU)에서는 88개 별자리를 지정했으며, 그 가운데 한반도에선 52개 별자리가 보이고 있다. 한반도 고인돌(선돌)에 암각된 별도 있다. 청주의 ‘아득한 고인돌’에선 북두칠성(곰자리), 북극성과 카시오페이아(Cassiopeia) 자리가 있고, 포항의 ‘오줌바위’에선 W자와 Y형의 별자리를 새겨 놓았다. 고구려벽화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및 현무(玄武)라는 사신도(四神圖)가 일본 기토라 고분(キトラ古墳)에까지 전파되었다.

글·그림= 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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