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를 찾아서] 바지랑대
[좋은시를 찾아서] 바지랑대
  • 승인 2022.07.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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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호 시인

느닷없이 소나기 한바탕 줄달음치더니

바람 천둥까지 한여름 축제를 벌인 뒤

시골집 마당은 오히려 적적하다

땅 냄새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마당을 가로지른 탱탱한 빨랫줄에 물방울

일렬횡대로 대롱대롱 매달려 떨고 있다

숨을 곳을 못 찾은 텃밭 애벌레는

퉁퉁 부은 얼굴로

몸 털며 기어 나와 햇빛에 몸 말린다

바지랑대는 하늘 향해 길게 직립하여

무거운 어깨 휘청대며 한숨 돌리고 있다

미처 들이지 못한 빨래들이 천근만근 늘어져

지키기 힘든 무게 몸 낮춰 뻗대 주면

기어이 올리고 마는 저 버팀의 힘

잔치가 끝난 마당

육친처럼 오래된 누더기 이불

하얗게 다시 마르고 있다

누덕누덕한 생이 멀리 날아가고 있다

◇이필호= 1959년 경북 군위 출생. 2010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삶과 문학 회원, 대구 작가회의 회원, 2017년 시집 <눈 속의 어린 눈>.

<해설> 요즘은 보기가 쉽지 않은 바지랑대를 몇 번이고 소리내어 읽어 보았다. 읽을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시인의 글에서 바지랑대는 시인자신이다 라는 결론을 내려 보았다. 지친 자신의 중심잡기와 버티기를 누군가 알아주고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스며 있는 시를 읽고 세상의 모든 시인같은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도 해 보았다. 잔치가 끝난 적적한 마당에서 여전히 버티고 서 있는 바지랑대의 무게를 헤아려 보는 시간이다.

-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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