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가족 평안 빌거나, 성찰하거나…‘새’를 보는 두 시선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가족 평안 빌거나, 성찰하거나…‘새’를 보는 두 시선
  • 윤덕우
  • 승인 2022.07.2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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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먹고 이슬에 잠자다
조선의 꽃·새 그림 ‘화조도’
풍부한 상상력보다 세밀한 관찰 우선
깃털 한올 한올 그려야 하는 고난이도
풍요로운 인생·가족의 장수 바라는 마음
이종렬 작가의 야생 조류 사진
눈 쌓인 들판 고고한 두루미 무리
보는 이로 하여금 반성하게끔 해
현대 민화가 주는 메시지와 동일
최근 서울 출장길에 한 사진작가의 조류(鳥類)가 주인공인 전시회를 가게 되었다. 그 작가는 자연다큐멘터리의 대표적인 사진작가로서 이종렬씨이며 ‘조류’ 사진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카메라로 담아낸 ‘조류’가 담긴 수묵화라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사진전의 제목 ‘풍찬노숙(風餐露宿)’은 말 그대로 바람막이도 없이 한(寒)데서 밥을 먹고, 지붕도 없는 노천에서 이슬을 맞으며 잔다는 뜻으로, 거처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사자성어는 만 편에 가까운 시를 남긴 남송의 시인 육유(陸游)의 ‘숙야인가시(宿野人家詩) 중 “늙으니 내세로 가는 길도 흐릿하고 기억력도 가물가물하구나,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자고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으니 허물인지 알지도 못하겠구나! (老來世路渾 盡,露宿風餐未覺非)”에서 유래하였다.

전시회 제목인 ‘풍찬노숙(風餐露宿)’은 이종렬 작가가 고집스럽게 지켜온 취재 방법을 표현하는 단어이며, 새들의 처지와 감정을 온전히 담기 위해 자연에서 함께 자고 먹는 고단한 생활을 하며 새들을 촬영하는 이종렬 작가의 고집스러운 촬영 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전시 서문(序文)에서 “자연생태를 접하면서 따듯한 숙소에서 잠을 자고 맛난 음식으로 배를 불리며 촬영한 사진들에서는 그 들의 처지와 감정을 담아낼수 없음을 깨닫고부터 자연스럽게 이들과 함께 자고 먹는 생활을 하며 취재를 하게 되었다. 이런 믿음에서 나는 이들을 찾아가 하늘은 이불 삼고 바람과 이슬을 맞으면 동숙(同宿)의 정(情)을 나누고 있다.“고 했다. 이 글을 읽으며 필자의 ‘내가 그림(民畵)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목표와 방향을 조금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화조도(花鳥圖)는 대부분 온갖 계절의 꽃과 나무를 배경으로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 속에 그려져 있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추구하는 동양적 사고의 가치가 그 화면에 흐르고 있다. 그 의미 또한 세상의 모든 풍파를 피해 인생을 즐겁고 풍요롭게 살며, 자손이 번창하고, 다복하게 사는 가정, 가족끼리 깊이 사랑하며 오래오래 사는 것을 상징하였다. 한마디로 옛 그림의 새는 은유(隱喩)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화조도병풍-국립고궁박물관
<그림1> 화조도 4폭 병풍 지본채색 화면 각 폭 세로: 125.5cm, 가로: 44.9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화조도는 표현에 있어서 조화와 화합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기에, 음(陰)과 양(陽), 정(靜)과 동(動), 땅(地)과 하늘(天)의 대립 되는 이원성을 추구했다. 꽃과 새, 나무와 바위 등의 대립도 이러한 조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꽃을 화병에 넣어 방안을 장식하거나 새를 잡아 새장에 가두는 문화는 없었다. 꽃밭을 특별히 가꾸지도 않았다. 그 대신 사상이나 정서를 투영시켜 꽃을 관조(觀照)하고 멀리서 나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화조도(花鳥圖)’는 대중적인 그림이지만 그 대상을 표현하기 만만치 않다. 꽃과 새의 형상(形狀)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상상력을 가지고 대충 그릴 수가 없었다.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고 새의 털은 붓끝으로 한 올 한 올 그려야 했다. 또한, 꽃의 특성상 다양한 색을 사용 해야 하는 채색기법을 동원해야 했다. 특히 꽃과 새의 모습에 인간의 미묘한 감정을 담아 넣는 일은 그림에 대한 오랜 경륜과 고난도의 기술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이러한 그림의 대중화를 이루어 작품의 가치를 높이려면 수준 높고 완성된 원본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대표적 작품을 여러분께 소개한다.

중국 명나라 시대 궁중화가로 활약하던 변문진(邊文進)의 화조도를 보시라. 1413년에 제작된 삼우백금도(三友百禽圖)는 군자를 상징하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에 각종 새 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각 경물의 구성과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고 화려하며 장식적인 작품이다.
 

삼우백금도-대만고궁박물원
<그림2> 변문진 작 삼우백금도 견본채색 151.3 X 78.1cm 대만 고궁박물원 소장.

〈삼우백금도〉에는 까치, 산비둘기, 화미조, 긴 꼬리 물까치, 태평조, 곤줄박이, 때까치, 두견새, 꾀꼬리, 앵무새, 굴뚝새, 참새 등의 다양한 새가 그려져 있다. 이러한 새들의 정경은 축하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으로, 새해(新年)를 맞이하는 그림으로 어울릴만한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다.

다시 이종렬 작가의 수묵화 같은 새의 사진으로 돌아가보자.
 

풍찬노숙1
<그림3> 이종렬 작 설중야학. 캐논플렉스 B1층 캐논 갤러리 제공

한겨울 눈을 맞으며 서 있는 두루미 무리들... 화면에는 그 이쁘고 흐드러진 꽃 한송이도 없고, 따뜻한 햇살 같은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한겨울! 눈 오는 들판 위의 새들은 처연함을 떠나 비장함을 느끼게 하지만 눈 덮힌 세상을 통해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도 순백색으로 아름답게 정화시켜 주는 것 같다. 그 배경 속의 저 새들은 그야말로 풍찬노숙(風餐露宿), 설중야학(雪中野鶴)이다. 눈은 저 새들에게는 본격적인 겨우살이가 시작됨을 알리는 시련의 전주곡이고, 세상의 풍정을 알려면 온갖 시름을 견뎌내어야 한다는 각오와 같다. 민화(民畵)에서 보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화조도는 아니지만. ‘오늘날 현실 속 화조도는 저런 이미지와 메시지도 표현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눈이 쌓인 산과 들에서 생활하는 두루미의 모습은 여백이 아름다운 한 폭의 수묵화 같고, 세상일에 초연한 듯 고고(孤高)한 두루미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뒤돌아보고 성찰 할 수 있는 기회’로서의 새로운 의미를 전하고 그것이야말로 현대적 의미의 민화의 메시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머물게 되었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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