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두려움을 추앙하라
[치유의 인문학] 두려움을 추앙하라
  • 승인 2022.07.2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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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눈에 보이는 위협을 ‘두려움’이라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공포’라 한다. 인류가 처음 맞이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랬다. 보이지 않는 위협이었기에 ‘공포감’이 컸고 감염된 사람들의 주검을 보면서 ‘두려움’은 확산되었다. 그래서 코로나19로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할 때 가장 강조하는 이야기도 바이러스의 정확한 실체를 이야기해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실체를 알면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위해 심리 상담을 하러갔을 때의 일이다. 교통사고 전문병원이었기에 모두 공통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운전하는 것이 두렵다는 공통점. 핸들을 잡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는 이유는 똑같은 사고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병원이 하도 갑갑해서 바람도 쐴 겸 밖으로 한번 나갔는데 죽는 줄 알았어요! 갑자기 차가 내게로 달려드는 줄 알고 무서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지 뭡니까?”/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손이 덜덜 떨렸어요!”

교통사고 환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사고의 충격은 머리와 몸에 동시에 저장된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건 이것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치료도 몸과 마음을 동시에 깨우고 직면시키는 활동을 한다. 두려움은 언제나 몸과 마음에 함께 일어난다.

많은 환자들이 사고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교통사고가 났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늦은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오던 겨울날이었다. 지방에서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대구에는 비가 조금 내렸던 모양이었다. 밤이 깊어지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도로가 결빙된 걸 몰랐다. 빨리 집에 들어가야 된다는 마음으로 속도를 올리는 순간 회전구간에서 핸들이 잠겨버렸다. 순간! 차가 미끄러지는 걸 몸이 먼저 느꼈다. 차가 뒤집힐 때 나도 모르게 뇌는 다운되었다. 기절했던 모양이다. 차가 미끄러지는 그 짧은 시간에 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치듯 지나갔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었는지….

깨어보니 자동차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차는 찌그러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손으로 운전석 유리를 깨고 탈출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은가? 영화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그렇게 탈출했다. 다행히 몸이 자유로워 나올 수 있었지 만약 그 속에 갇혔더라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25톤 트럭이 내 차를 덮친 건 정확히 2분 뒤였다.

“환자분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숫자를 거꾸로 세어보세요?”/ “선생님의 입에서 나는 담배 냄새가 너무 지독합니다. 다른 선생님 없습니까?”/ “농담하는 걸 보니 다행히 죽지는 않겠네요!”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중에 내가 던진 농담 때문인지 의사는 웃으며 화답했다. 다행히 찰과상과 몇 군데 화상 말고는 다친 곳은 없다고 하셨다. 사실 그날 내가 농담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만약 사고 당시 나의 뇌가 다운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잔인한 기억으로부터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을 것이다.

차가 내게로 오는 착각, 운전에 대한 두려움. 모든 것을 이겨 내는데 가장 큰힘이 되었던 것이 바로 ‘직면’이었다. 그날의 사고는 나의 조급함과 부주의가 만든 분명한 인재였다는 것, 정직하게 운전하면 결코 사고 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순간 평정심이 찾아왔고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다.

김한민 감독의 영화 ‘최종병기 활’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직면의 힘이 가진 위대한 영상을 볼 수 있다. 청나라로 볼모로 잡혀간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조선 최고의 신궁 남이와 청나라 최고의 장수 쥬신타가 활과 칼을 겨누고 있다. 쥬신타의 칼끝에 볼모로 잡혀있는 여동생을 구하고 쥬신타를 죽이는 유일한 방법은 활을 곡사로 날리는 방법뿐이다.

간절함! 여동생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 그 절박함 속에 죽은 아버지의 유언을 녹였다. 긴박한 영상 속 스크린에는 구부러진 활 속에 아버지의 유언이 피 묻은 영상으로 클로접 되어 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위대한 힘은 절박함과 간절함 그리고 직면의 힘이다. 경연대회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는 간절함의 힘이 나보다 더 큰 사람이다. 배수진을 친 상대를 그래서 이기기 어렵다.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명대사는 어느새 두려움을 극복하는 나의 어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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