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귀농인 K씨
[대구논단] 귀농인 K씨
  • 승인 2022.07.2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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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정년을 앞둔 K는 정년 후 무엇을 할까? 며칠을 고민했다. 자격증도 없고, 특기도 없어, 할 일이 없다. 그럼 친구는? 종교에 빠진 친구, 만사 다재다능한 친구, '골프 신'의 경지에 오른 친구, 그들과 시간을 같이하기에는 좀 그렇다. 할 일도 없는데 농사나 지어? 작고한 모친이 농사짓던, 고향에 있는 밭에 나무를 심기로 했다. 전국에서 크기로 몇째 간다는 묘목 단지에 갔다.

"사장님, 일도 잘할 줄 모르고, 게으른 사람에게, 적당한 나무 없소?"
나무상회 사장이 빤히 쳐다보더니 묘목 하나를 갖고 왔다. 호두나무란다. 약도 많이 안 줘도 되고, 관리를 안 해도 되니, 심어만 놓으면 잘 큰단다.

거창하게 나무를 심었다. 고향 가까이에 사는 후배들을 비상 소집하였다. 적당하게 간격을 잡고 교과서대로 심었다. 그날 밤 K의 집에서는 바비큐 불꽃이, K의 설레임을 아는 듯이 화려하게 빛났다. K는 전입신고도 하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농지 경작 신고'도 하여 100% 귀농인이 되었다.

이듬해 인근에 사는 친구가 농장 구경을 왔다. 나무를 둘러보더니 '툭' 어깨를 쳤다. '오리나무좀 벌레'가 침투했단다. 이 친구는 공직에 있을 때부터 퇴직 준비를 하여, 호두나무 심은 지 3년 되는 농사꾼 선배이다. 친구 말대로 호두나무에는 구멍이 뚫렸고, 새잎이 돋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사한 나무도 있었다. '호두나무에는 병이 없다.'는 나무상회 사장 말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다음날 호두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병든 나무가 많았다, 구멍 난 부분을 이쑤시개를 꽂아 표시했다. 친구가 와서 칼로 환부 주위를 도려내고, 살충제 원액을 구멍 속으로 투입했다. 그해 가을,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밭에 토양살충제를 치고, 호두나무에 수성 페인트를 칠하라.' 시키는 대로 따랐다.

또 친구는 '유박비료'를 호두나무 한 그루에 한 포씩 주라'고 했다. 이웃에서 '유박비료' 주는 모습을 보고, '유목에 거름이 과하다'고 걱정했다. K는 그 말을 듣고, 다음 해에는 '유박비료를 반포로 줄였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거름을 많이 주어야 나무에 좋다'고 하였다. 또 마음이 변하여 그 전처럼 거름을 한 포씩 주었다. 농사에 지식이 없는 K는 주관이 없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그러나 나무는 쉽게 잘 자라지 않았다. 한 해 겨울이 지나면 꼭 대여섯 그루씩 죽었다. 냉해, 병충해, 땅의 물 빠짐 등 주위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가장 믿는 친구도 모른단다. K는 농사에 대해 너무 모르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호두나무를 심은 지 5년이 지나도 호두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 나무상회 사장이 '5년이면 열매가 달린다.'라고 했는데 감감무소식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거름을 너무 많이 준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이제 나무 밑에 시커멓게 쌓인 유박비료를 어쩔 수 없었다. 내년에는 달리겠지….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다. 풀의 생명력은 엄청나다. 홍수가 나도, 가뭄이 들어도, 잡초는 잘 자란다. 호두나무밭도 예외 없었다.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비닐과 제초용 부직포를 깔아보고, 제초제도 쳐보고. 관리기도 사용하고, 온갖 방법을 다했지만, 잡초는 부활하였다. 읍내 후배가 내 일처럼 도와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K는 농사일에 길들여지지 않았고, 허리 지병도 있어, 풀 한 포기 뽑더라도 인건비가 들었다.

또 K가 부치는 밭은 비가 오면 밭둑이 무너졌다. K는 그때마다 면사무소에 수해복구 신청을 했다. 연례행사가 되었다. '제방복구사업처럼 견고하게 할 수 없나?'고 이의도 제기하였지만, 반응이 없었다. K는, 이런 악조건들에 지쳐 농사꾼이 되기를 포기할 만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K의 집에는 조상으로부터 위토로 내려오는 전답이 조금 있었다. 선친은 K를 공부 시키기 위해 이 위토를 팔았다. K는 직장을 잡고 돈을 마련하여, 도시에 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먼저 고향의 전답을 샀다. 땅을 구매한 첫해 모내기를 할 때, 선친이 논두렁 위에서 막걸리를 드시고 춤을 추었다. K는 그때 그 선친의 춤을 잊지 못한다. 선친의 무덤이 호두나무밭 꼭대기에 있다. 선친은, 생전에 애정이 깃든 밭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밭을 풀밭으로 묵힐 수 없다.

흔히 퇴직자들은 할 일이 없으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는다고 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농사는, 본인이 농사에 대해 잘 알아, 과학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의 노동력이 받쳐 주어야 하고, 나름대로 절실함이 있어야 지속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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