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팔조, 8월 21일까지 故 심향 작가 ‘스타필드’展
갤러리 팔조, 8월 21일까지 故 심향 작가 ‘스타필드’展
  • 황인옥
  • 승인 2022.07.3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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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빛내는 별처럼…각자 자리서 반짝이는 사람들
어린날 보았던 별에서 영감
한지 앞뒷면에 별무리 자수
수많은 별들이 연결되어 있듯
사람도 촘촘한 인연으로 연결
유독 빛나는 이도 가려진 이도
겸허한 소통으로 연결 가능
佛 매거진 “한국단색화가
이우환·박서보 계보 이어”
심향작-Starfield-2017
심향 작 ‘Starfield’(2017)

심향 작가는 “전통서예와 수묵화가 현대인의 미의식에 얼마만큼 부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작가였다. 서예와 수묵화가로 활동하다 먹과 붓을 버리고 실과 바늘을 이용한 자수기법을 구사하는 강단으로 파격의 최일선에 섰다. 자수 기법으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펼쳤던 고(故) 심향 작가의 개인전인 ‘스타필드(Starfield)’가 갤러리 팔조에서 개막했다. 갤러리 팔조에서 ‘스타필드’ 연작으로 처음 여는 개인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병행전시 ‘Personal Structure’ 및 VIII 타슈켄트국제현대비엔날레 (내셔날갤러리, 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에 출품했던 작품과 함께 미발표 작 등 ‘스타필드(Starfield)’ 연작 20여점이 걸렸다.

◇ 자수기법으로 탄생한 ‘스타필드’ 연작

심향의 대표작은 한지에 자수로 밤하늘의 별들을 관계성으로 표현한 ‘스타필드’ 연작이다. 생전에 그는 “한지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고, 바늘과 실은 마음의 형태를 표현하는 물성”이었다며 작품 이면에 깔린 의미를 설명했다. 수많은 존재들 중에서도 작업의 주제로 선택한 ‘별’에는 그가 “보고, 듣고 느낀 세상의 모든 존재의 가치를 형상화를 위한 대상”이라는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

그는 ‘스타필드’ 연작을 통해 현대미술의 결정적인 순간을 열기를 희망했다. 먹과 붓의 자리를 실과 바늘로 대체한 파격에 현대미술이 지향하는 전위적인 독창성에 대한 열망이 자리했다. 그리기에서 자수기법으로 작업방식을 전환한데 이어, 허를 찌르는 또 한 번의 기법이 추가됐는데, 그것이 한지 뒷면에서의 수(繡) 놓기였다.

흔히 자수라고 하면 천의 앞면에서 원하는 형상을 따라 수를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는 뒷면에서 수(繡)를 놓는 파격을 감행했다. 앞면에서 수를 놓은 결과 드러나는 매끈한 형상과, 뒷면에서의 자수로 드러나는 앞면의 어수선한 선들을 중첩하며 하나의 조형세계로 수렴해갔다. 그 결과 그의 화면에는 확장된 ‘사유’와 ‘세계’로 반짝였다.

심향 작업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먼저 알아본 것은 해외미술계였다.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병행전시 ‘Personal Structure’에서 그를 알아보고 초청의사를 밝혔고, 그의 작품은 관람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2019년에 특별히 그를 위한 전시를 또 한 번 기획하게 되면서 ‘Personal Structure’ 재단측의 심 작가를 향한 강한 애정을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심향은 2019년 타계했고,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재단측에서 초대전을 기획한 것이다.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병행전시 ‘Personal Structure’전을 보고 아트트앱(ArtTrav) 사이트에 알렉산드라 코레이는 “주목할 만한 것은 심향의 섬세한 다층 자수인데, 기이한 한국식으로 조르조네(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 유명작가)의 뭐라 표현 할 수 없는 면(je-ne-sais-quoi)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나는 실타래 같은 테마가 비엔날레 주요 전시관으로 넘어가는 걸 보고 있다”라는 리뷰로 그의 작업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프랑스 매거진 ’LA GAZETTE DROUOT‘에 미술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Virginie Chuimer-Layen는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으로 이어지는 한국단색화의 계보를 언급하며 심향을 거론했다. 그는 “한지 종이에 새겨진 심향의 자수는 전통적인 소재를 통해 영성과 깊은 의미로 스며든 진미를 표현한다”고 평했다.
 

흑백-심향작가의생전모습
심향 작가의 생전 모습.

◇ 평등, 본질 등의 다양한 가치를 자수에 담아내

‘스타필드’ 연작은 어린 시절 할머니의 따스한 등에서 올려다봤던 별자리에서 영감을 받았다. 할머니의 등에서 본 밤하늘 별들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작업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서예를 전공한 그가 한지는 고수하면서 붓과 먹(墨) 대신 바늘과 실을 잡은 배경에 붓과 먹이 갖는 한계가 자리했다. 붓과 먹이 복잡 다양한 현대인의 감수성에 부응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고, 2007년부터 붓과 먹 대신 실과 바늘을 잡았다.

‘스타필드’ 연작에서 그가 주목한 가치는 ‘평등사상’. 더 빛나거나, 덜 빛나는 별들의 모습에서 인간세계의 축소판을 발견하고 사유의 대상을 ‘존재의 평등’에 맞췄다. 작가는 셀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별들이 각각의 고유성을 유지하며 우주를 밝히듯, 인간세상도 제각각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지만 그 고유성의 위대함은 부정할 수 없음을 강변했다. 그 사유의 정수들을 ‘스타필드’ 연작으로 발언하기 시작했다.

심향은 ‘평등’의 가치를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덕목으로 ‘관계’와 ‘소통’을 꼽았다. 셀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의 연결성으로 밤하늘이 빛나듯,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인간 세상 역시 겸허한 소통으로 평화로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평등’과 ‘소통’의 개념들은 별들의 중첩으로 구현해갔다. 먼저 한지의 앞면이나 뒷면의 자수를 통해 입체감을 확보하고, 그 위에 또 한 장의 한지를 배접하고 또 다시 수를 놓았다. 그 과정을 최대 5겹까지 반복하며 별들을 연결해갔다. 그 결과 수많은 별들은 거대한 우주라는 공간 속에서도 각각의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더러 한글의 자음이나 한자를 현대적인 조형미로 표현하기도 하며 서예로부터 출발한 자신의 뿌리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는 그 어떤 존재도 도드라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존재의 평등’을 유지하려 애썼다.

◇ 한지 뒷면에 존재감 부여하며 빛과 어둠의 경계 허물어

평등을 향한 작가의 열정은 한지 뒷면의 자수에서 오롯이 드러났다. 앞면이 빛이라면 뒷면은 어둠인데, 그는 앞면과 뒷면에 자수를 동시에 함으로써 빛과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평등이라는 것은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일 수 있다. 그에게 빛과 어둠이 그랬다. 빛은 누구나 열망하지만 어둠은 애써 외면하고픈 존재이며,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과 다름없었다. 그는 그 차이를 인정하고 어둠에 좀 더 마음을 내려했다. 그의 손끝에서 중첩이 진행될수록 어둠은 빛과 동등한 지분을 확보해 갔다.

“모든 관계 속에는 주인(主)이 있다. ‘스타필드’에서 점으로 형상화 된 별은 주인이며, 서로의 고리에 의해 소통되는 빛으로서 존재하고, 존재하고 있는 동안 빛이 나며, 드러날 수도 가려 질 수도 있다. 그리고 결코 혼자서는 빛날 수 없음에도 우리는 그저 드러난 빛만 본다. 뒤에 숨어있는(가려진) 인연의 빛이 있는데도 말이다.”

“특히 가려짐(hidden)은 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로 잘 보여 지지 않는 존재의 가치를 의미한다”는 생전의 말에서 어둠에 대한 그의 애정을 또 한번 확인한다.

“우리 마음 안에도 어둠과 빛이 있다. 빛과 어둠을 인정할 때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실은 먹, 바늘은 붓이나 다름없다. 실 작업에서 한지는 비춰지는 소재라는 것이 중요했다. 작품에서 감춰지는 형태가 중요한 요소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본질과 같은 의미다.”

그의 밤하늘에는 찰나의 순간부터 영원의 순간까지 가없는 시간성이 축적되어 있다. 이같은 영원성은 별들의 중첩으로 확보됐다. 하지만 별 하나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지켜가려는 노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했다. 무한한 공간성과 영원성으로 구축된 ‘스타필드’지만 그의 노력으로 하나의 별들은 “주체적으로 빛을 내는 존재감”이라는 개별성을 잃지 않고 있다. 그의 ‘스타필드’에서 받는 치유와 위안은 작가의 치밀한 의도에 의한 결과였다.

“점과 점 사이, 그리고 점으로 연결된 공간은 무한의 공간이며, 시간 역시 찰나의 순간부터 끝없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이 관계 속에 주인으로서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주인이지만 객관적으로 우리 모두가 주인인 것이다. 그리고 주인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포용해야한다.”

“개인의 실체를 규정하기보다 자신을 성찰하고 집착과 이기심을 극복함으로써 함께 소통하기 바라며, 우주의 광활한 공간속에서 순간에 머무르지 말고 인연이 닿는 것과 자유로이 소통하라”는 작가의 외침이 들리는 듯한 갤러리 팔조 전시는 8월 21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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