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양성철 회고전, 대구문예회관 13일까지
사진작가 양성철 회고전, 대구문예회관 13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2.08.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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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생 50년간 ‘세상에 없는 사진’ 끄집어내려 노력”
70년대부터 아방가르드 첨병
피사체 내면 투영하는 데 열정
공모전 탈락에 ‘마음대로 작업’
흑백서 월드컵 경기 때 레드로
펜데믹 맞아 블루 칼라 첫 소개
“생각대로 찍고 보여줘야 발전”
다시-양성철 작 '불이(不異)'
양성철 작 ‘불이(不異)’
양성철 작 'CUT-IN'
양성철 작 ‘CUT-IN’
양성철 작 '불이(不二)'
양성철 작 ‘불이(不二)’
양성철 작 '붉은 깃발 별이 되어'
양성철 작 ‘붉은 깃발 별이 되어’
양성철 작 'Blue Hour'
양성철 작 ‘Blue Hour’

사진작가 양성철은 일찍부터 사진에 금기(禁忌)를 두지 않았다. 대상을 흔들거나, 인위적으로 단절하거나, 풍경에 이질적인 사람의 손가락을 넣거나, 인체의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며 이단아적인 기질을 표출했다. 회화적 감성을 사진 영역에 끌어들인 ‘살롱 사진’ 스타일 아니면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이 주류였던 당시의 시류에 비춰보면, 그는 기성 예술의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한 혁신적인 예술 운동인 아방가르드(avant-garde)의 첨병을 달렸다.

‘현대사진’을 추구하는 현재의 시점에서 그의 활동들은 여느 작가들의 독자성 확보에 대한 노력 정도로 인식할 수 있지만, 70년대 말과 80년대의 사진풍토에서 보면 그의 시도들은 파격이었다. 90년대를 거쳐 현재까지 사진 인생 50년간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갈증은 늘 그의 곁을 따라다녔다. 그는 “나의 사진 활동 50년은 세상에 없는 사진을 끄집어내기 위한 시간들로 점철됐다”고 회고했다.

사진에 내면을 담아내는 양성철 작가 회고전이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회관 기획인 ‘원로작가 회고전’의 올해 작가로 선정되어 전시를 구성했다.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나 영남대 상경대학과 계명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대구 매일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진 이래 최근까지 50여 년간 꾸준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는 대구 사진계의 대표적인 원로 작가다.

이번 전시에는 200여 점의 사진 작품과 팸플릿, 포스터, 사진집, 각종 아카이브 자료 등을 소개하며 50여 년 사진예술을 입체적으로 정리, 재조명한다.

◇ 70년대 말부터 ‘현대사진’ 추구

그는 70년대 말 80년대 초부터 현대사진 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사진계의 주류였던 스타일과 차별화된 사진을 추구했다. 70년대 중반에 그의 철학이 녹아든 사진을 발표하자 세상의 반응은 시무룩했다. “이게 사진이가?”라는 핀잔까지 들어야 했다. “그만큼 그때 저의 사진은 사회전반에 깔려있는 사진에 대한 인식체계에서 동떨어져 있었어요.”

주위를 둘러보면 같은 생각을 가진 작가들이 더러 있었다. 80년대부터 그들과 함께 ‘제3사진그룹’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하며 주류에서 비껴있는 외로움을 달랬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자신들의 활동이 ‘현대사진운동’임을 인식했지만, 그룹 활동 초기에는 스스로 ‘독특한 취향’ 정도로 여길 정도에 불과했다. “우리는 일반적인 생각과 다른 개념으로 사진에 접근했고, 표현도 다르게 하려는 열정으로만 똘똘 뭉쳐있었습니다.”

그의 사진에서 핵심 개념은 ‘내면의 반영’이었다.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재현하는 리얼리즘 사진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에게 피사체는 내면을 담아내는 매개체 역할로 제한했고, 피사체에 내면을 투영하는 것에 더 많은 열정을 할애했다. 시류(時流)와 다른 독자노선을 따르기로 결정을 내리기까지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공모전에 출품한 사진이 채택되지 않아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 마음대로 작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됐어요.”

독자적인 작업을 지향한 만큼 롤 모델이나 스승의 부재는 그의 몫으로 다가왔다. 국내에선 스승으로 삼을 선배 작가가 드물었고, 그에 따라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표현법을 터득해야 했다. “해외 유명 작가의 사진을 따라하거나 외국서적을 섭렵하는 것으로 대안을 찾았어요.”

그의 사진에 녹아있는 현대성과 실험성은 이번 전시에서 충분히 확인된다. 먼저 70년대 작업인 잔상(殘像) 연작을 언급할 수 있다. 사물에서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고 사물에 남겨진 인간의 감성을 포착한 작업이다. 공상(空相) 연작도 ‘잔상’ 연작의 연장이었다. 숲속 벤치, 경우기가 지나간 자욱이 남은 겨울 논,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무속인의 집 앞 대나무 등의 풍경에 인간의 흔적을 담아내려 했다. 80년대의 ‘CUT-IN’ 연작은 그를 국내 사진계에 각인시킨 대표작이다. 풍경에 손가락을 넣어 촬영한 작품인데, 우연한 시도로 시작됐다. ‘손’이 주는 형상성이 풍경에 겹쳤을 때 일어나는 이변에 집중한 작품이다.

불교적인 색채도 사진으로 풀어냈다. ‘불이(不二/不異)’ 연작이 대표적이다. 전작인 ‘잔상(殘像)’ 연작에서 처음 불교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불교 공부가 시작됐고, ‘불이(不二/不異)’ 연작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가 본 세상은 공(○)과 곱표(×), 맞다와 틀리다, 상과 하 등의 이분법의 지배 하에 놓여있었고, 그는 차별이나 분별, 대립이 없는 진리의 경지인 불교의 ‘불이(不二)’를 떠올렸다.

인물이 중심인 ‘인물(人物)’ 연작 역시 ‘불이(不二)’의 연장이었다. 사람을 대상으로 했을 때 몸과 정신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표현했다. 이후 개념을 더 확장하여 인(人·Split)+물(物·Body)’ 연작으로 확장했다.

◇ 흑백에서 칼라로의 확장 통한 풍요로운 작품세계 구가

그는 오랜 시간 흑백 사진을 고수(固守)했고, 흑백에 있어 그는 고수(高手)다. 흑백 선호는 그가 사진을 배울 당시의 기술적인 문제로부터 촉발했다. 당시의 기술로 인화하는 과정에 컬러에 대한 통제가 원활하지 못했다. “흑백 사진은 제가 직접 작업하기 때문에 색이나 농도나 콘트라스트를 조절할 수 있지만 컬러 사진은 기술적으로 상당한 투자를 해야 되죠. 반면에 흑백은 인화과정 전반에 제가 직업 개입하여 색이나 농도나 콘트라스트를 조절할 수 있죠. 그 세월이 오래 쌓이면서 흑백은 누구보다 자신감이 생겼죠.”

흑백 위주였던 작품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19년 개인전 때다. 강렬한 레드(Red)가 전시장을 물들였다. 젊은시절 억압의 상징으로 인식됐던 붉은색이 다시 눈에 들어온 것은 2002년 월드컵. 온 나라가 붉은 티셔츠의 물결로 물들이는 것을 보며 붉은색에 대한 트라우마가 조금은 옅어졌고, 2016년에 진보당 전용 색으로 인식되던 붉은색을 보수당이 당의 색으로 채택하는 것을 목격하고 붉은색 작업을 시작했다. “월드컵 때 붉은색이 던졌던 환희와 열정, 보수당이 붉은색을 선택할 때 국민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모멸감이라는 이질적인 감정들이 교차했어요. 그런 감정들을 ‘레드’ 연작에 표출했습니다.”

이번 회고전에 처음 소개된 작품은 ‘블루(Blue)’ 연작이다. 코로나 19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일상을 블루 칼라로 담아냈다. 큰 의미를 두고 블루 작업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레드’ 연작 전시 때 한 감상자가 “다음에는 블루도 하겠네요?”라는 농담에 그가 “그것도 한 번 해야지요”라고 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코로나 19 팬데믹을 만나면서 블루 작업이 실현됐다. “디지털 작업이 가능하면서 색에 대한 자신감이 좀 생겼고, 이번에 블루에 도전하게 되었어요.”

◇ 인물이나 군중의 모습에서 삶의 모습 발견

그의 화면은 한결같이 인물이나 군중으로 채워져 있다. 그 흔한 자연풍경은 보기 드물다. 결이 좀 다른 석상이나 불상을 촬영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얼굴형상에 집중됐다. 사람을 대상으로 독자적인 사진세계를 구축하려는 그의 작업이 향하는 정상에 “사진을 통한 삶의 관조”라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그가 “앞으로 내가 무얼 할 것인지에 대해 모른다”고 했다. 50년 부력의 작가에게서 나온 말치고는 허무했다. 철저하게 장기와 단기적인 계획 아래 작업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하지만 그는 “확신 하나는 늘 가지고 간다”며 여지를 남겼다. “지난 50년이 그랬듯이 나의 사진관(觀)이 흐르는 대로 어떤 사진이든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했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후배들을 위한 조언의 말을 구했더니 자신의 사진 여정을 압축해 주었다. “자기 생각대로 찍고 보여줘야 발전이 있습니다. ‘이거 해도 됩니까?’,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질문하고 의심하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소신대로 해 보는 것, 그것이 성장의 지름길일 것입니다.” 전시는 대구문화예술회관 1-5전시실에서 1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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