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필수 의료 결핍 국가가 된 이유
[의료칼럼] 필수 의료 결핍 국가가 된 이유
  • 승인 2022.08.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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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둥 마크원외과의원 원장 대구시 의사회 논설위원
최근 서울아산병원 소속의 간호사가 근무 도중 뇌지주막하출혈을 일으켰으나 뇌혈관 수술을 받지 못하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먼저 동료 의료인으로서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30대인 간호사가 자신이 근무하는 서울아산병원에 출근한 직후인 오전 6시 30분 경 극심한 두통으로 아산병원 응급실 진료 후 뇌지주막하출혈 진단을 받았지만 당시 병원에 뇌혈관개두술을 시행할 수 있는 신경외과의사가 없어 먼저 중재적 코일링 시술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후 개두술을 위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끝내 숨지고만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국민 눈높이에서도 ‘이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 아닌가?’ 걱정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고민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팩트는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없었다’는 점이다.

첫 번째로 떠올릴 수 있는 원인은 ‘의사들의 태만’일 것이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틀렸다. 이 병원은 해당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뇌혈관 신경외과 의사가 불과 두 명뿐이다.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을 5~10시간 연속 발휘해야 하는, 말 그대로 혼을 쏟아부어야하는 수술을 단 두 명이 24시간 대기하며 수행할 수 있는가? 서울 빅5 병원에서 개두술이 가능한 의사는 세브란스·서울성모·삼성서울 병원 각각 4명, 서울대병원 3명, 사고가 발생한 서울아산병원 2명뿐이다. 평균 3.4명이다. 대한민국 빅5 병원들이 이렇다.

두 번째는 개두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더 빨리 옮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 맞을 법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역시 단정지을 수 없다. 우선 중재적 코일링 시술로 지혈을 시도한 사실 자체를 탓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뇌출혈은 뇌동맥류파열로 인한 지주막하출혈이었다. 일반적으로 뇌동맥류 제거를 위한 클리핑 개두술은 중재적 시술을 통한 코일링이 어려운 경우이거나 코일링을 실패한 경우에 시행한다. 이번 아산병원 간호사의 경우 이미 동맥류가 파열되어 출혈이 발생한 상태였기에 클리핑 수술을 시행했어야 할 듯 하지만,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서 중재적 코일링을 시행할 의사는 있으니 먼저 시행하기로 결정한 듯 하다. 생체징후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앰뷸런스로 후송하게 되면 골든타임을 놓칠 거라 판단했을 수도 있다. 평일 오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서울대병원을 앰뷸런스로 이동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함부로 낙관할 수도 없다. 살신성인 이국종 교수도 낙담하게 만든 대한민국 응급후송체계다. 수년간 온갖 솔선수범과 대정치권 설득 작업 끝에 소중한 닥터헬기를 충원했더라도 소음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이륙도 맘대로 못하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이다.

세 번째, 일부 보건의료 관련 단체에서 주장하듯 의과대학 정원을 십 수 년째 묶어놔서, 즉 대한민국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이유라는 생각이다. 이 사건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는 ‘전체’ 의사 수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인가? ‘뇌혈관개두술을 시행할 수 있는 신경외과전문의’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 해당 단체가 진심으로 동료의 죽음을 애통해한다면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을 이 비극에 갖다 붙이는 발언을 삼가하고, 하다못해 ‘입원 병상 20개 당 의사 1명’이라고만 규정된 법을 개선해서 종합병원 필수진료과목 의사를 일정 수준 이상 반드시 충원할 수 있도록 강제하자고 요구하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네 번째는 해당 병원의 인사정책이 이유라고 주장할 수 있다. 수익이 나는 과목만 충원하고 저수가에 만년 적자에 허덕이는 과목에 대한 인력 충원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적자라 하더라도 3차병원이자 교육병원으로서 필수 의료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사회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자리를 만들어도 그 일을 할 신경혈관외과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수십년간 필수 응급 의료를 원점부터 돌보지 않고 땜질 처방만 반복한 결과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뇌신경혈관외과가 기피 대상이 된 것을 누구 탓으로 돌릴 것인가?

이렇듯 여러 문제가 얽혀있기에 지금부터라도 사회적 논의와 유권자들의 논리적이고 현명한 여론 형성이 꾸준하게 이어져야만 한다. 어쩌면 필수의료 강화를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지금껏 매우 부족했다는 점이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다섯 번째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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