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석 작가 ‘마이너스’전...중립·접점 찾으려 ‘청색’과 동고동락
한지석 작가 ‘마이너스’전...중립·접점 찾으려 ‘청색’과 동고동락
  • 황인옥
  • 승인 2022.08.0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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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갤러리 9월25일까지
의도·메시지 등 드러내지 않아
회화 거치대 설치로 공간 확장
가변적 요소에 해석은 관객 몫
한지석 작 '정지된 깃발'
한지석 작 ‘정지된 깃발’

숨이 멎을 것 같은 심오한 청색회화가 시선을 압도한다. 깊고 푸른 청색에서 산이나 바다 또는 구조물 같은 형상들이 언뜻언뜻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칠하고 덮기의 반복으로 구축된 견고한 청색 앞에서 형상은 맥없이 사그라든다. 윤선갤러리에 소개되고 있는 한지석 작가의 작품 세계다. “관람객이 먼저 청색 표면의 아름다움을 보며 ‘작가는 왜 청색을 썼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기를 바라며, 그 다음에 ‘청색 화면 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건너가기를 바랍니다.”

그의 작업은 수많은 이미지를 무비판적으로 소비하는 현대인의 태도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한다. 기술의 발달과 매체의 다변화로 이미지 범람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미지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는,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으며, 어떻게 감각하고 느끼며 기억하는지?”를 환기한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이미지 너머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미를 새롭게 감각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어떠한 사물의 측면이든, 어떠한 자기 존재의 측면이든, 그것들을 어떻게 내가 만들어가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굉장히 다채로워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다변화된 세상을 위한 출발이 아닐런지요.”

청색과의 동고동락은 2013년부터 시작됐다. 청색이 관람객의 감상자의 주체성을 끌어올리는데 적격이라는 판단에서 지난 10여년간 청색회화에 매달렸다. 청색과의 인연에 청색이 ‘중립적’이라는 색 자체의 특성도 관여했다. 한 세계와 또 다른 세계 사이의 경계에서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두 세계를 완벽하게 아우르는 청색의 포용력을 발견하고, 회화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 이 포용력이 다의적인 해석의 원천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제게 청색은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저물어 캄캄한 밤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상태, 즉 빛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그런 찰나의 지점에서 포착되는 색으로 인식됐어요. 말하자면 세계와 세계의 접점인데, 그 접점은 다의적인 해석을 불러오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가 중립성을 확보하는 방식은 ‘지시성’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는 회화의 지시성을 우리가 소비하는 이미지에 생산자의 폭력성이 깃들어 있는 현상과 동일시한다.  그리하여 그는 작가의 의도나 메시지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중립적인 화면을 구축하려 애쓴다. 추상과 재현을 한 화면에 균형감 있게 펼쳐놓으며, 이 공간에서 만큼은 감상자가 작가의 의도에 휘둘리지 않고 자율성을 발휘하기를 염원한다.

문제는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표현본능을 가진 작가의 특성상 의미전달에 대한 욕망이 불쑥불쑥 끼어들기 마련이지만, 그는 표현하고 싶은 욕구와 감추고 싶은 욕망을 모두 허용하는 방식으로 둘 사이의 ‘접점’을 찾아간다. 두 세계 사이의 ‘접점’에서 작가의 주관성은 해체된다.

그의 화면에는 다양한 접점들이 촘촘이 엮여있다. 우선 그가 선택하는 이미지들에서 접점이 발견된다. 이미지는 주로 신문 기사에서 발췌하는데, 때로는 사적인 기억 속 이미지도 활용된다. 여기서 공과 사의 접점이 생겨난다. 추상과 재현의 혼재로 인한 접점 또한 빠트릴 수 없다. 이 경우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접점으로까지 확장되며 다의적인 공간으로 거듭난다.

“제가 무엇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듯이, 제가 작업을 했지만 저의 말로 이 화면을 완벽하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여러 가변적인 것들을 화면에서 충분히 열어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고, 그걸 해석하고 완성하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돌리려 합니다.”

평면 회화를 전시장 바닥 거치대에 설치한 방식도 눈길을 끈다. 캔버스와 거치대, 그리고 빛의 이동에 따라 흘러가는 그림자까지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며 시·공간을 확장했다. 회화와 밀착된 외부적인 요소와 전시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관람객의 감각을 긴장감 있게 끌어들인다.

“어떤 이미지가 다른 시·공간에 있을 때 어떻게 표현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 평면 외에도 설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지석, 박인성, 이창훈과 함께 하는 윤선갤러리 ‘마이너스(Minus)’전은 9월 25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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