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칭찬과 믿음은 인간 성장의 보약이다
[치유의 인문학] 칭찬과 믿음은 인간 성장의 보약이다
  • 승인 2022.08.1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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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

스페인 교육자 페레(1859~1909)가 세상의 모든 아동 훈육자를 향해 날렸던 뼈 때리는 어록이다. 하지만 이 땅에는 페레가 천명한 교육 선언 100년이 지났건만 부모들의 폭력으로 2020년 10월 사망한 정인이와 같은 아이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교육과 사육, 줄타기의 민낯이다.

필자는 어릴 적 공부를 못했다. 그냥 못한 게 아니라 아주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께서 산수 시험을 치게 하면서 제일 점수가 낮은 3명을 남기겠다고 했다. 사실 시험을 칠 필요까지 없었는데 말이다. 그냥 공부 못하는 학생을 성적순으로 밑에서 3명만 끊으면 되는데 굳이 시험을 치셨다. 우여곡절 끝에 시험은 끝났고 3명의 명단을 부르는데 제일 먼저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올 것이 왔구나’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나머지 두 명도 함께 불렀다. 그냥 혼만 내시고 끝내는 줄 알았는데 선생님께서는 2시간 후에 다시 시험을 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성적이 낮은 아이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키겠다고 했다.

“아니 공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공부 못한다고 화장실 청소까지 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난 도망을 결심했다. 선생님께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잽싸게 도망을 쳤다. 덕분에 난 꼴찌를 면했고 남아 있던 두 명 중 한 명이 꼴찌를 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시험을 친 내 친구는 지금까지 영원히 꼴찌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난 다음 날 선생님께 나의 엉덩이를 반납해야만 했다. 얼마나 엉덩이를 맞았는지 지금도 엉덩이가 얼얼하다. 엉덩이의 희생은 컸지만 내 자존심을 지켰다는 긍지와 자부심은 아직도 살아있다. 그 시절 나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그 시절에 받았던 생활통지표를 최근에 꺼내 보니 너무 감동적이다. 8과목 중 딱 세 과목만 ‘양’이었고 나머지 과목은 전부 ‘가’였다. 이쯤 되면 우리 어머니도 나를 엄청 혼내시고 큰소리 한 번 정도는 내셨을법한데 난 그 흔한 야단 한번 맞지 않았다. 공부를 못해서 주눅 들어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넌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야,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넌 머리가 나쁜 게 아니야, 늦게 머리가 트이는 아이지!”

어머니의 근자감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어머니의 예언은 지금까지 하나도 틀린 적이 없었다. 내가 받은 ‘양’ 세 과목은 미술, 체육, 국어였다. 아무리 못해도 ‘미’는 받고 시작한다는 과목에서도 난 ‘양’을 받았다. 어머니는 내가 받은 5과목의 ‘가’에 집중하신 게 아니라 3과목의 ‘양’에 집중하셨다. 마치 그것이 어머니의 위안인 것처럼 말이다.

“책과 노트에 그린 그림을 보니 참 잘 그렸네!”/ 공부하는 책에 낙서와 그림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툭’ 하고 던진 어머니의 그 한마디는 꼴찌를 밥 먹듯이 하던 아들의 자존감이 되었다. 그 후 난 홍익대 미대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미대 교수까지 될 수 있었다. 칭찬에도 타이밍이 있다.

“넌 타고 난 건강 체질이야, 머슴 체질!”/ 얼마나 건강 체질을 타고났는지 중2 때 학교를 빠져볼 요량으로 친구와 눈을 비볐는데도 눈병에 걸리지도 않는 전투적인 건강 체질을 타고났다.

시간이 지나 보니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모른다. 아무튼 어머니의 그 응원 덕분에 필자는 아직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최고의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대학 신입생 1,600명과 푸쉬업 시합을 해서 2분에 147개로 144개를 한 최고 체육과 대학 신입생을 3개 차이로 이기는 기염을 토했다. 체육 ‘양’의 기적이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예언은 기다림과 믿음에서 나왔다. 꼴찌를 해도,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숱한 사고를 쳐도 끝까지 자식을 믿고 기다려준 기다림과 믿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그 기다림과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너는 반드시 잘 될 거다.”/ “걱정하지 말거래이”/ 가끔 삶의 지쳐서 넉두리처럼 쏟아내는 아들의 걱정에도 어머니는 늘 큰 스님의 음성 같은 목소리를 하고서 철없는 아들의 마음을 한결같이 어루만져 주셨다. 나이와 상관없이 진심이 듬뿍 들어간 칭찬과 믿음을 받고 싶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그 음성과 눈빛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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