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 다니엘 뷔렌展…“현장서 영감 받아 작업…관람객도 보이는대로 즐기길”
대구미술관, 다니엘 뷔렌展…“현장서 영감 받아 작업…관람객도 보이는대로 즐기길”
  • 황인옥
  • 승인 2022.08.14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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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형·색·세로 줄무늬 구성
회화·설치·영상 29점 선봬
“도형은 시각적 도구일 뿐
의미 부여는 내 몫 아냐”
“장소에 부합하는 작품 위해
미리 전시장 가서 현장 파악”
“1층에 전시된 ‘…놀이처럼’
2·3층서는 다른 느낌 줄 것”
대구미술관어미홀
대구미술관 어미홀에 전시된 다니엘 뷔렌의 작품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대구미술관 제공
 
부조서울313
다니엘 뷔렌 작품 부조 ‘서울 313’, 231x99x39x15㎝. 대구미술관 제공

미술품은 그것을 만든 작가의 전유물일까? 감상하는 관람객의 향유물일까? 대구미술관 전시 개막에 앞서 만난 세계적인 거장 프랑스 현대미술가 다니엘 뷔렌(84)은 “미술작품에 대한 해석은 감상자의 몫”이라며 후자의 편에 섰다. “관람객이 내 작품에 대해 거부할 수도, 마음에 들어 할 수도 있다. 그것은 관람객의 몫”이라는 것이 작품에 대한 그의 지론이다.

감상자 중심적인 태도가 몸에 배인 그이지만 작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여느 작가보다 오히려 더 크다. 감상자에게 많은 것을 열어주기 위한 경지가 만만하지 않을뿐더러, 누구나 사고의 근저에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본능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일반적인 정서에 반하며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그는 “시각적인 도구들을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그것을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작가의 역할을 제한했다. 그는 작품 제작 과정과 재질, 색채, 크기 등의 작품 구성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 외에 어떠한 의견도 작가 스스로 표출하지 않으려 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 이면에 감상자로 하여금 작가의 간섭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깔려있다.

“저는 제가 작업을 하면서 즐거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나는 이 작품을 하면서 나는 즐거웠는데 왜 관람객은 즐거워하지 않는가?’라고 강요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가와 관람자 사이에 인과관계를 두려하지 않습니다.”

◇ 정형화된 미술제도 비판으로부터 출발, 내용과 형식에서 자유 추구

대구미술관 개인전에 소개되고 있는 뷔렌의 작품들에서 관람객을 향한 애정이 묻어난다. 관람자 중심적인 태도는 작품의 구성물인 시각적인 도구들에서 먼저 포착된다. 그는 동그라미, 네모, 마름모 등의 기본적인 도형만 사용하여 작품을 구성한다. 의미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는 동그라미나 세모, 네모 등의 도형에는 도형 자체가 가지는 의미 외의 어떤 여지도 끼어들 틈은 없다. “저는 도형에 시각적인 도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도형으로 구성된 작품에서 그 어떤 의미를 발견한다면 그것을 철저하게 관람자가 찾은 의미가 될 것입니다.”

그는 특히 스트라이프(줄무늬)를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에 활용해왔다. 줄무늬 중에서도 세로 줄무늬만 고집한다. 관람자의 해석에 줄무늬의 방향까지도 방해요소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선택이었다. 세로는 가장 중립적인 방향이라는 오직 그 이유에서 채택됐다. 모든 세로줄무늬 작품에 신용카드 너비인 8.7㎝을 공통으로 적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가로로 줄을 놓으면 풍경이나 지평선을 떠올릴 수 있어요. 그런 의미 왜곡을 피하기 위해 세로 줄무늬만 사용합니다.”

관람자의 주체적 감상 환경을 최적화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작품 전시 과정에도 드러난다. 대개 미술관이나 갤러리 전시에서 작품 배치를 큐레이터가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그런 방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작품 배치도 직접한다. “관람자 중심”이라는 자신의 가치에 반하는 작품 배치를 원천차단 하기 위해서다.

대구미술관 1전시실 바닥에 설치된 작품에서 ‘관람자 중심’의 철학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바닥은 관람객의 키에 맞춘 배치다. 관람객의 눈높이에 전시되어야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을 보는 각도도 그에 맞게 움직이게 되고, 작품의 해석 또한 풍요로워진다. 이는 ‘눈높이 위의 벽면’이라는 일반적인 작품 배치 위치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키에 따라 작품을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거나 하면서 동등한 위치에서 관람할 수 있는 형태여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색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감상자 배려의 정신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술 작가에게 색은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인데, 그는 색에서 의미를 걷어내려 애쓴다. 지금까지 그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측이 선호하는 색을 수용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모든 색채를 하나의 소재로서 인식하고, 모든 색을 동등한 위치에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게 색은 장소에 따라 랜덤으로 사용하면 되는 시각적 도구의 하나에 불과하다. ”색에 의미를 두지 않는 태도는 제가 쓴 색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라는 문제를 관감객의 몫으로 돌리는 것에서 왔습니다.“

◇ ‘인-시튜’ 개념에 현장 중심의 철학 녹여내

뷔렌은 1960년대 초부터 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자유롭게 다루며 급진적인 작업을 선보여왔다. 1986년 개최한 제42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뉴질랜드, 슈투트가르트, 일본 등에서도 권위 있는 미술상 수상이 이어졌다. 정형화된 미술 제도를 비판한 그에게 세계 미술계는 상으로 그의 작품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정형화된 틀에 대한 반동으로 출발한 뷔렌의 미술은 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자유롭게 다루며 기성 미술에 대립각을 세웠다. 첫 시작은 줄무늬였다. 미술계에서 예술의 범주에 넣지 않았던 산업적인 패턴인 줄무늬 천에서 받은 영감으로 줄무늬로 예술작품을 제작하여 “예술은 포장에 불과한 것”이라며 비판했다. ‘고상함’을 찬미하는 예술계를 일갈한 이 사건에서 그의 전위성은 만천하에 공표됐다.

그의 작업 스타일은 ‘인-시튜(in-situ)’라는 용어로 축약된다. ‘인-시튜’는 20세기 초 고고학자들이 주위 환경의 맥락과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 사물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한 용어다. 미술분야에서 이 용어는 그에 의해 처음 사용됐다. 작업의 전 과정이 전시될 장소에서 이뤄지는 작가의 작업 특성이 ‘인-시튜’ 속에 녹아있다. 그는 전시가 열린 장소를 해석하고, 그 해석된 아이디어로 작품을 현장에서 제작하여 전시한다. 전시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작품은 해체된다.

전시 현장을 둘러보고 해석하는 일은 그의 작업의 시작점이다. 그는 현장에서 받은 영감으로 그 장소에서 작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왜 현장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미술관이 다 똑같은 흰색 벽일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다 다르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전시장에 직접 가서 봐야 영상이나 사진으로 잡아내지 못하는 현장감을 포착할 수 있어요. 현장을 알지 못하면 그 장소에 부합하는 작품을 제작하기가 어렵지요.”

그의 현장중심적 사고는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관람객에게도 적용되기를 희망한다. 그는 “작품은 반드시 전시장에서 관람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주의를 견지한다. 여기에는 “현장에서 직접 보는 작품이어야 온전한 감상이 가능하다”는 이유가 전제되어 있다. 현장에서 작품 감상에 대한 그의 의지는 단호했다. “현장에서 보는 작품에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대체할 수 없는 많은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직접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제대로 감상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작업 스타일 중 또 하나는 ‘위치 작업 (situated work, travail situle)’이 꼽힌다. 특정 공간에서 전시되고 해체된 작품을 또 다른 공간에서 재전시할 때 적용되는 방식이다. 주로 작품의 이동이나 재배치 때 그가 정한 규칙대로 진행하는 시스템이다. ‘위치 작업’은 어디까지나 일부로 제한되고, 그의 작품 중 90퍼센트 이상은 ‘인-시튜’ 방식을 따른다.

◇ 자유로운 작품 세계 한 눈에 조망하는 대구미술관 전시

대구미술관 전시에 회화, 영상, 설치 등의 작품들이 다채롭게 펼쳐져있다. 작품과 공간의 특정 관계에 주목한 최근작 29점이 어미홀 및 1전시장에 설치됐다. 그는 대구미술관 공간에 대해 큰 만족감을 표했다. “구조적으로 자유롭고 유연성이 높은 것”을 대구미술관 전시장의 장점으로 꼽으며, 미술관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활용한 외부 전시에 대한 의지도 표명했다. “공간의 유연성이 풍부한 대구미술관에서 새로운 각도로 제 작품을 즐겼으면 합니다.”

층고가 높고 공간이 넓은 1층 어미홀에 설치된 작품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그의 대표작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블록 쌓기 놀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2014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처음 공개 이후 아시아권에서 첫 발표다. “위층 (2,3층)에 올라가서 관람하면 또 다른 시각으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어, 이런 관람 형태는 흔치 않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1전시장의 넓고 밝은 공간에는 2015년 이후 제작한 작가의 입체 작품들이 설치됐다. 특히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의 대부분은 거울 혹은 플렉시글라스(Plexiglass) 등 사물을 비추거나 확대, 파편화하는 재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뷔렌에게 거울은 관람자와 공간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되,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제3의 눈’으로 기능한다. 관람자가 작품 감상자이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일부로 기능하게 만들며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장편 필름 ‘시간을 넘어, 시선이 닿는 끝(2017)’도 아시아권 최초로 상영한다. 그가 그동안 걸어온 시간과 여러 에피소드들을 집약적으로 담은 자서전과 같은 영상물이다. 전시는 내년 1월 29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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