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흔들릴지언정 가라앉지는 말아요 (Fluctuat nec margitur)
[화요칼럼] 흔들릴지언정 가라앉지는 말아요 (Fluctuat nec margitur)
  • 승인 2022.08.1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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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잘 될거야!

우리의 운명은

겨울철 과일나무와 같다.

그 나뭇가지에

다시 푸른 잎이 나고

꽃이 필 것 같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을 꿈꾸고

그렇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다.



-괴테, 『괴테의 명언』 중



살면서 시련과 고난은 늘 따르는 법이라지만, 요즘 지구촌에서의 살이는 불안, 위기를 넘어 공포에 가깝다. 종식되지 않는 코로나의 위협,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전해오는 전장의 참상, 500년 만에 찾아온 가뭄의 잠식으로 대륙을 꿰뚫는 교통의 동맥 라인강을 비롯한 주요 강이 바짝 메말라가고, 기록적인 폭염과 적은 강수량으로 주요 경제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유럽, 집중호우로 도시의 대로가 물에 잠기면서 저지대 참변이 발생한 대한민국 수도 서울 등의 뉴스는 모두 폐부를 찌르는 아픔이다.

이러한 세기의 비상사태는 지구인의 삶과 사고를 위기 상황으로 각인시키고 있다. 나에게도 그렇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깨어났다는 사실, 물 한 모금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 열 손가락과 발가락이 온전하다는 사실, 지인과 웃으면서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 등 예전에는 일상으로 알았던 일들이었는데 이제는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기적임을 절감한다. 그리고 나를 지켜보며 사는 습관이 생겼다. 그중 한 가지가 숙제 검사이다. 나에게 책읽기는 가장 재미있고, 쉽고, 즐거운 일이다. 이제는 책읽기 방법에 한 가지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잠자기 전 읽던 책 한두 쪽을 필사하고 나 스스로에게 검인을 받은 다음 잠이 든다.

어제도 그랬다. 밤 11시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필사하는 중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늦은 시간에 나를 찾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통화를 하는 일은 드문 일이다. 벨소리를 의아하게 생각하며 수신인을 확인하니 우울증을 앓고 있는 20대 여성청년이었다. 외려 내 목소리가 반갑게 전환되었다. 그녀 목소리는 울음이 가득했다. “친정 엄마한테 전화하면 걱정하실까 봐”, “전화할 곳도 없고 해서 그냥”. 고마웠다. 그 늦은 시간에 남편과 말다툼 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집을 뛰쳐나오긴 했는데,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갈 곳도 없고, 불러낼 만한 사람도 찾을 수 없고, 그 와중에 생각난 사람이 나였다니.

늦은 시간, 여성청년 혼자 기다릴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그녀 집 근처 파출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공주님! 나를 뽑아주셔서 고마워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안전벨트를 매어주니 큰 눈 가득 쏟아질 듯한 눈물방울을 달고 있던 그녀가 웃기 시작했다. “공주님! 커피숍도 문 닫을 시간이고, 우리 둘이 드라이브 데이트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마차님께 밥 좀 줘도 될까요?” 주유소 앞에 차를 정차시킨 나를 보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내어 웃었다. 20대 중반, 갓 대학을 졸업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결혼, 그리고 출산을 한 그녀에게 산후우울증이 찾아왔고, 심각한 증세는 자해로 이어졌다. 어린 엄마와 아기를 염려하고 배려한 의사는 ‘아기접근금지’ 처방까지 내렸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 ‘두 여자’의 배회는 길지 않았다.

“결혼은 축복이며, 출산은 하늘이 내린 선물입니다. 그 축복을 두 분이 받았네요. 축하해요. 행복하셔야 돼요.” 그녀와 그녀의 남편 얼굴이 환해지는 걸 발견하고, 잠든 아가에게도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며 마무리하지 못한 기도를 혼자서 했다.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에요.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쳐 아무리 배를 흔들어도, 뒤흔들릴지언정 가라앉지는 말아요. ‘Fluctuat nec margit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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