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의 여름방학
영호의 여름방학
  • 여인호
  • 승인 2022.08.1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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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야, 오후에 소 먹이러 어디로 갈래?”

”파랏골(고향의 산 이름)로 가자.”

“좋다. 오늘은 파랏골로 가자. 망태는?”

“망태도 가져가자. 오늘 오후에 소 먹일 풀을 베어 놓아야 내일 오전에 좀 놀 수 있잖아.”

영호는 점심을 먹기가 바쁘게 왼쪽 어깨에 망태를 메고, 오른손에는 소고삐를 왼손에는 낫을 쥐고 산으로 갑니다. 친구들, 형님들 등 많게는 10여 명이 소를 몰고 줄을 지어 산에 오릅니다. 그늘이 좋은 곳에 도착하면 소고삐를 놓고 여름 한낮의 더위를 피합니다. 소들은 무리지어 맛있는 풀을 찾아서 산을 오릅니다. 너무 늦지 않게 망태에 풀을 가득 채우고 어둑해지기 전에 소를 찾아 나섭니다. 소들은 무리지어서 산등성이를 넘어가기도 합니다. 간혹 무리에서 홀로 떨어진 소를 찾지 못하면 밤새 온 마을 사람들이 소를 찾으러 나서기도 합니다. 풀이 가득한 망태를 어깨에 메고, 낫은 망태의 풀에 꽂고 소를 몰고 집으로 옵니다. 그런 날의 저녁은어김없이 어머니표 손칼국수입니다. 6학년 영호의 여름방학 일상이었습니다.

날을 정해서 온가족이 참깨를 벱니다. 참깨 줄기를 뿌리에서 10에서 20 센티미터 위에서 자르고 미쳐 떨어지지 않은 잎은 떼어 냅니다. 적당하게 묶은 다발은 네 개씩 묶어서 발을 벌려서 말립니다. 잘 말린 참깨 묶음을 거꾸로 들고 막대기로 톡톡툭툭 치면 하얀 싸라기눈이 내리듯 소복하게 쌓입니다. 그런 참깨를 말리고 물에 걸러서 돌과 불순물을 제거하고 다시 말립니다. 방앗간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할 때 비로소 참기름이 됩니다. 참기름의 고소함은 농부의 땀과 정성 그리고 발자국 소리 덕분입니다.

참깨를 베는 날이었습니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낫질을 해도 자꾸만 뿌리까지 올라왔습니다. 뿌리까지 딸려온 참깨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에 죈 낫으로 내리치면서 뿌리를 잘랐습니다. 번거롭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 작업을 반복하다가 왼손에서 따끔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왼손의 가운뎃손가락의 관절 부분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급하게 입으로 피를 빨아서 멈추게 하고는 옷을 잘라서 동여매었습니다. 집에 와서 된장을 바르고는 다시 헝겊으로 감쌌습니다. 그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손은 다 나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2센티미터 정도의 상처가 선명한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은 힘을 주지 않으면 똑바로 펴지지가 않습니다.

여름방학 숙제는 곤충채집, 식물채집도 있었습니다. 숙제를 빠짐없이 모두 한 기억은 없습니다. 집안일 거들고 친구들과 놀다보면 숙제를 하거나 다른 공부를 할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1970년대 시골마을이니 지금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다니는 학원은 이름초차 없을 때입니다. 방학을 마치고 2학기를 시작하는 날은 9월 1일이었습니다. 숙제를 미룬 못한 친구들은 느티나무나 미끄럼틀 밑에서 친구의 숙제를 보고 베끼기에 바쁜 개학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영호의 여름방학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대구교대부설초도 지난 7월 22일 금요일에 여름방학식을 했습니다. 2학기 개학식은 9월 6일 화요일입니다. 방학 기간이 조금 긴 것은 학교의 공사 때문입니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 5, 6학년 교육활동 공간혁신에 이어서 이번 여름방학에는 3, 4학년 교육활동 공간혁신이 진행 중입니다. 지붕공사와 화장실도 공사가 진행 중이고 과학실도 새롭게 단장 중입니다. 방과후 교육활동을 하는 아이들과 돌봄교실 아이들은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옵니다. 이것저것 걱정되는 것이 많은 여름방학입니다.

방학 전에 시공업체 관련자와 여러 차례 협의를 하고, 공사 중에도 의논할 일이 많습니다. 공사와 관련된 분들께는 항상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안전하게 공사해 주세요. 그리고 이 학교에 내 손자 손녀나 내 아들과 딸이 다닌다고 생각하고 시공해 주세요. 그리고 학교에서는 절대 금연입니다.” 그렇지만 공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인 영호의 여름방학이나 교원인 영호의 여름방학도 이번과 다음해 한 번이면 끝이 납니다. 영호에게는 끝나는 여름방학이 아쉽기도 하지만, 어떤 새로운 여름방학이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김영호<대구교대부설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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