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갤러리 ‘마이너스’展 참여작가 박인성...이미지 쌓아올려 왜곡된 정보시대 조명
윤선갤러리 ‘마이너스’展 참여작가 박인성...이미지 쌓아올려 왜곡된 정보시대 조명
  • 황인옥
  • 승인 2022.08.2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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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가 된 나치 선전영화에 큰 충격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의문 품어
아날로그 필름으로 촬영 후 2차 가공
“이미지는 생산자·소비자에 의해 조작
필름에 새겨진 정보 통해 진실 도달”
박인성작-Behind-the-vail연작
박인성 작 ‘Behind the vail’ 연작.
 
박인성작-필름연작
박인성 작 ‘필름’ 연작.

구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추측일 뿐, 정확한 인식은 불가능하다. 접착제인 합성수지나 광택 도료인 바니시로 이미지를 덮은 결과다. 또 다른 작품에선 형상이 선명하게 드러나지만, 그 또한 추측에 의지할 뿐 정확한 판단은 유보할 수밖에 없다. 윤선갤러리에 소개되고 있는 박인성 작가의 ‘Behind the veil’ 연작과 ‘Film’ 연작이다.

작품의 시각적인 이미지만 보고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나?”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있지만, 하나의 지점에서 동공을 반짝이며 오판임을 인정하게 된다. 평면 상단에 새겨진 ‘KODAK EKTAR 100’과 하단에 새겨진 날짜와 시간에서 “평범하지 않음”을 직감하게 되고, “시각 너머에 깊은 이야기가 더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기 때문이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아날로그 세대라면 화면 상단과 하단의 단어나 숫자가 낯이 익을 수 있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무릎을 탁 치며 아날로그 필름을 떠올리게 될지 모른다. 화면에 새겨진 정보들은 아날로그 필름에 새겨진 필름의 퍼포레이션과 고유번호이기 때문이다.

그가 “아날로그 필름을 사용하여 촬영했다. 화면에 새겨진 단어와 기호들은 필름의 생산 업체와 종류를 나타내며, 숫자는 필름의 고유번호나 촬영된 날짜와 시간”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 아날로그 필름으로 예술의 본질 탐구

아날로그 필름을 사용하여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4년, 독일 유학 시기였다. 그 해에 아날로그 필름을 다루는 영화와 사진 관련 워크숍 참여와 ‘Be Documentary’라는 주제로 작업 프로젝트를 구상하던 중에, 독일 나치정권이 만든 정치선전영화 필름을 우연히 플리마켓(벼룩시장)에서 구입하면서 아날로그에 마음을 빼앗겼다. 구입 당시에는 아날로그 특유의 물성에 매료되었지만, 내용과 형식적인 측면으로 파고들며 나치정권 선전영화가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나치정권을 선전하기 위해 거짓으로 점철된 영화를 만들어놓고 사실을 전달하는 기록 영화로 탈바꿈 시켰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요.”

당시 그는 필름 릴에서 필름을 빼내 한 컷씩 자른 후 시간성과 장소성을 기준으로 재편집했다. 왜곡과 선동 일색인 필름에서 그가 발견한 진실은 다큐멘터리를 만든 당시의 촬영 행위와 필름을 해체하고 재편집한 자신의 행위였다. 그의 손에 의해 재편집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영상은 이름에 걸 맞는 다큐멘터리로 거듭나게 됐다. 그때부터 다큐멘터리에 얼마만큼의 진실이 담겨져 있으며,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의견차는 어떠한지에 의문을 품으며 작업의 주제로 펼치고 있다.

“완성된 내용이 거짓이라면 진실은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제작되는 그 시점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 아날로그 필름으로 예술의 본질을 찾아가는 대표작 윤선 갤러리에 소개

지난 5일 개막한 윤선갤러리 ‘마이너스’전에 ‘Behind the veil’ 연작과 ‘Film’ 연작이 걸렸다. 아날로그 필름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두 연작의 맥락은 동일하다. 그는 아날로그 필름을 매개로 얻은 결과물보다 아날로그 필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작업한다. 내용 이전의 본질인 아날로그 필름에서 예술의 본질을 발견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가공되어 왜곡되지 않은 날것의 아날로그 필름에서 진실한 본질의 세계를 발견하려는 것.

‘Behind the veil’ 연작은 ‘Film’ 연작보다 외시성으로 출발하여 회화성으로 완결된다. 동시대의 주목받는 대상이나 사건의 일부를 줌 인(zoom in)으로 촬영한 점은 무엇을 촬영했진지에 대한 정보를 판단하게 하는 외시성을 어느 정도 확보한다. 하지만 대상의 일부를 촬영하고 현상한 후 다시 스캔하고 프린트로 인쇄하면서 외시성은 사라지고, 전체적인 분위기만 남는다. 대신 합성수지나 바니시 또는 물감으로 마티에르(질감)을 살려 회화성은 짙어진다.

반면에 ‘Film’ 연작은 디지털로부터 출발한다. 디지털 컬러차트에서 규격화된 디지털 색상번호를 지정하여 색면(Color Field)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아날로그 카메라로 촬영하고 현상한다. 이후 현상한 필름으로 2차적인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약품을 사용하거나 다른 필름을 겹치면서 우연적으로 형상을 확보하고, 다시 스캔해서 프린트로 출력한다. 복잡한 작업 과정 중에 우연성이 개입되고 결과는 예측불허로 흐른다. 사진의 평면성은 회화로 옮겨와도 그대로 유지된다.

◇ 아날로그 필름으로 예측불가능성 표현하며 이미지 왜곡 시대 조명

‘Behind the veil’ 연작과 ‘Film’ 연작 모두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목도한다. ‘Film’ 연작에는 외시성이 배제된다. 디지털 상에서 규격화해 놓은 색채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고할 것 같은 규격은 카메라의 조작이나 출력기의 상황에 따라 무참하게 깨어진다. ‘Behind the veil’ 연작은 특정한 대상을 지목하며 외시성을 확보하지만, 이 또한 해석자나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 애초의 외시성은 오간데 없고 다양한 해석을 낳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필름에 새겨진 정보만 진실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내용은 이미지 생산자나 소비자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조작될 수 있으니까요.”

작가는 우연적인 요소들에 의한 예측불가능성은 접하는 정보의 양이 증가할수록 높아진다고 믿는다. 인터넷 발달 이전에는 일부 세력들의 선도로 유행이나 정치적인 분위기를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지만, 개인에게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개인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총량이 제어불가능한 수준이 되면서 명확한 배경이나 과정 또는 이유 없이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공통적인 의식이나 생각들로 만들어졌던 대중성이나 대중적인 의식들이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소비하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어요. 대중들이 우연히 소비하는 정보들이 쌓이면서 우연적으로 그런 현상들이 생겨나는 것이죠. 역주행이나 레트로 현상이 대표적이죠.”

그는 “다큐멘터리는 과연 실현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다양한 형식에 대한 실험들을 통해 찾아가고 있다. 필름스캐너, 아날로그 필름, 다큐멘터리 영상 등은 형식적인 실험의 대표주자들이다. 그가 이같은 실험을 하는 이유는 “양 극단의 균형을 모색”에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필름의 균형을 찾아가듯 지배적인 개념이나 현상의 반대 입장도 들여다보며 접점찾기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더 바람직한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희망한다.

이창훈, 한지석, 박인성 작가가 함께 하는 윤선갤러리 ‘마이너스(Minus)’전은 9월 25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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