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빈집의 요구르트
[기자수첩] 빈집의 요구르트
  • 승인 2022.08.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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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혁진사회부기자
조혁진 사회부 기자
사소한 일이 겹쳐 큰일이 되곤 한다. 사소한 일을 하지 않아서 톱니바퀴가 제대로 구르지 않기도 한다.

지난해 연말 대구 서구청이 요구르트 업체에게 배달비를 환급받은 사례가 있었다. 홀몸노인 요구르트 배달 사업 대상자인 A씨가 사망했음에도 보름가량 배달을 멈추지 않아서다.

홀몸노인 요구르트 배달은 매일 아침 홀로 사는 어르신 가구에 식품을 제공함과 동시에 안부를 확인하는 복지사업이다. 전달되는 음료는 흔히 현관문에 내걸리는 작은 주머니에 담긴다. 사업 대상자가 하루라도 수령하지 않았을 때, 배달원은 불의의 상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업이 정상적으로 작동만 한다면 대상자의 신변 이상을 배달원과 주변 이웃이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도 A씨를 향한 복지서비스가 한동안 중단되지 않았던 경위는 이렇다. 지난해 12월 서구지역 한 주택에 거주하던 노인 A씨가 사망했다. 관할 구청에 따르면 A씨는 평소 가족과 연락을 자주 주고받았고, 요양보호사의 관리도 원활히 이뤄지고 있었다. 건강 이상이 확인된 직후 병원으로 이송돼 유가족 등도 사망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A씨의 유족은 한 달여 동안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다. 신고가 이뤄지지 않았던 사이 A씨는 당연히 사업 대상자에서 빠지지 않았고, 배달은 중단되지 않았다.

같은 시기, 보름간 빈집에 요구르트를 전달한 배달원도 대상자의 부재를 알지 못했다. 이 부분에선 A씨 이웃의 책임이 적지 않다. A씨 몫의 음료를 이웃주민이 가만히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달원의 태만함도 일부 작용했다. 홀몸노인 요구르트 배달사업의 취지에는 건강식 제공 못지않게 안부 확인 목적이 크다. 배달주머니에 방치된 음료를 보고 관할부서에 신고를 할 수도 있지만, 직접 어르신을 뵙고 말을 건네며 외로움을 달랠 수도 있다. 배달원이 A씨의 안부를 직접 물으려 했다면 조금이나마 빨리 부재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담당 배달원은 요구르트를 매일 배달하지 않거나, 안부를 확인하지 않고 주머니에 음료를 담고 오는 데 그치는 등 확인 절차가 다소 미흡했다고 전해졌다.

결국 빈집에 배달됐던 음료의 경위는 제때 이뤄지지 않은 사망신고, 양심적이지 않았던 이웃의 행동, 몫을 다하지 않았던 배달원 등 세 박자가 한데 어우러진 촌극으로 드러났다. 아무리 잘 짜여진 체계라 할지라도 각자의 역할이 이뤄지지 않는 순간엔 한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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