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마음의 안전지대는 생명의 안전벨트
[치유의 인문학] 마음의 안전지대는 생명의 안전벨트
  • 승인 2022.08.2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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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슬픔은 예고가 없다.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사소한 인간관계의 ‘인적재난’에서부터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회적 재난’ 그리고 화재나 태풍 같은 ‘자연재난’까지 재난의 얼굴은 늘 평범한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얼굴은 서로 다르지만 고통의 크기는 언제나 똑같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눈에 보이는 상처만 열심히 치료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는 방치해 왔다. 보이지 않는다고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상처는 몸의 상처보다 더 깊고 오래가더라. 몸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치료 적기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결정적 시기’라 한다. 시기를 놓친 병들은 상처를 남긴다. 7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이 지났지만 상처의 딱쟁이가 아직도 붙어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 깊은 밤이 되어도 불을 켜놓고 자야 하는 대구 지하철의 일부 생존자들, 어릴 적 웅덩이에 빠진 이후 물 근처만 가도 몸이 굳어버리는 필자의 경우까지…, 치료의 결정적 시기를 놓친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둡고 까만 돌이 하나씩 있다.

감기를 놓아두면 독감이 된다. 그 독감을 또 방치하면 폐렴이 된다. 폐렴의 끝은 사망이다. 등식이 조금 강렬했지만 틀린 답은 아니다. 코로나19에서 보았듯이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폐렴은 죽음이었다. 마음도 똑같다. 초기 우울감을 놓아두면 우울증이 되고 그 우울증을 방치하면 불안장애, 공황장애가 온다. 지독한 불안장애, 공황장애의 끝도 사망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살이다. 이것이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방치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아픈 사람에게 면역력은 병을 이겨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세균을 잡아먹는 백혈구의 일종인 호중구와 대식세포, 항체를 발사해 세균을 죽이는 T세포와 B세포 등은 건강한 사람이면 모두 가지고 있는 면역세포들이다. 하지만 마음의 면역은 모두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니다. 반드시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일종의 ‘미션’이다.

그래서 필자가 만든 것이 ‘마음의 안전지대(Safe Zone)’ 치료 활동 프로그램이다. 트라우마로 지친 내담자들이 가장 좋아했던 프로그램이면서 만족도도 가장 큰 활동이었다. 어릴 적 방안에서 박스로 어설프게 집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잠을 자며 안정감을 느꼈던 추억은 물리적 안전지대의 경험이었다. 세상살이가 지치고 힘들 때 수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와 향기는 애절한 우리의 정신적 안전지대였다. 안전지대는 이처럼 내가 안정감을 느끼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물리적 공간이면서 또한 정신적 공간이다.

“혹시 어디에 가면 가장 마음이 편해지십니까?”/ “어떤 생각을 했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아지십니까?”/ “….”

상담을 하면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안전지대가 없었다는 것에 놀랐다. 정확히 말하면 상실했다. 상담사들처럼 모든 사람들이 세세한 부분까지 마음을 챙길 수는 없겠지만 당신이 지금 만든 마음의 안식처는 분명 생활의 활력이 된다.

베타 엔도르핀이 정신의 안정감을 가져다주고 부신피질 호르몬이 신체적 이완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물리적 안전지대는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심리적 안전지대는 정신의 긴장을 풀어준다. 몸과 마음의 이완은 교양선택이 아니라 전공필수다.

물리적 공간의 안전지대로 필자가 추천하는 세 곳은 집과 카페, 그리고 야외공간까지 3곳이다. 집은 가장 가까운 곳에 내가 직접 만들 수 있는 물리적 안전공간이고 카페와 야외공간은 외부의 물리적 안전공간이다. 집에는 가장 작고 아담한 곳에 쉼터 같은 공간을 만든다. 그곳에는 힐링이 되는 소품 몇 점과 따뜻한 조명, 그리고 아늑한 소파만 있으면 끝이다. 가능한 미니멀하게 만드는 게 팁이다. 텅 빈 공간에서 나오는 여백의 울림은 뇌가 위로받는 최고의 시간이다. 너무 황량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 공간은 당신의 감성 뮤직으로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 빈 공간에서의 멍 때림! 방구석 일렬에서 최고의 세이프 존 핫 플레이스는 의외로 쉽게 만들 수 있다.

집과 카페에서 즐기는 세이프 존이 정적의미의 안전지대라면 야외공간은 동적의미의 안전지대다. 공원 숲길을 따라 걷는 시간은 운동과 명상의 복합적 의미다. 여기에 명상적 몰입만 살짝 넣으면 동적명상이 완성된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가 2015년 부터 주최한 ‘멍 때리기 대회’도 멍때리기의 지존인 ‘불멍’도 스스로 휴식을 찾으려는 뇌의 치유능력이 아닐까? 일종의 ‘인지의 해방’처럼 말이다. 때론 ‘우리는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여기에서는 ‘분발’이니 ‘책임감’ 따위는 생각하지 마라!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고 위로하면 된다.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살아남은 당신은 그것을 누릴 충분한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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