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살아야 지방이 산다] “선산군 구미읍이었는데…작은집이 큰집 됐죠”
[마을이 살아야 지방이 산다] “선산군 구미읍이었는데…작은집이 큰집 됐죠”
  • 김종현
  • 승인 2022.08.3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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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구미를 품었던 선산읍의 유래와 변화
신라 때 ‘일선군·숭선군…’ 불려
조선 태종 때 선산부로 개칭돼
2천 년간 명칭, 구미시로 통합
경제력·인구 등 모두 다 흡수
학문·인재의 고향이 소읍으로
선산5일장·선산봉황시장
근·현대 변화 과정 ‘역사 실체’
전국에서 온 노점상이 대부분
복고풍·현대식 조화 이뤄 매력
선산시장1
지난 7일 선산장날 노점상 풍경.

경북 구미시 선산읍은 신라시대에는 일선군(一善郡), 일선주(一善州), 숭선군(崇善郡) 등으로 불렸고, 조선 태종 때 선산부(善山府)로 개칭되었으며, 고종 23년 선산군으로 변경되었다. ‘선산’이란 이름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1970년대 국가산업단지 조성 이후 구미시는 도시계획과 택지개발로 인해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어느 지역민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미합중국’같은 구미, ‘작은집이 큰집이 된’ 구미만의 특이한 역사를 갖는다. 이러한 변화 과정을 겪으면서 지역 내 역사·문화자원의 원형이 훼손되거나 지역 정체성이 상실된 실정이다. 또한 신도시 개발 등으로 도시 외곽으로의 확장, 기존 중심지의 인구 감소 및 고령화 등으로 인해 지역의 쇠퇴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 격동의 세월을 겪어온 선산 사람들과 그들이 기억하는 선산의 이야기들은 기록되지 않은 채 여전히 산재 되어 있다.

◇작은집이 큰집이 되다

“구미시로 빼앗긴 거라. 모든 역사와 전통이. 신라 때부터 ‘일선군’, ‘숭선군’, ‘일선주’로 고려 때 ‘선주부’를 거쳐, 좋을 선, 착할 선 자가 2천 년 동안 계속 내려오다가, 구미시로 통합되어버렸다. 선산군 구미읍이었는데, 작은집이 큰집이 됐어. 거리가 20㎞ 떨어져 있으니까 통합이 되니 행정만 통합된 게 아니라 경제력이고 인구고 다 흡수해 버리는거라. 인구도 이동하고, 경제적인 것하고 모든 기관도 다 따라 나갔지. 그러니까 선산은 인부족 재부족인거죠.”(박은호 전 구미문화원장)

마지막 선산읍장을 지내셨다는 선산 출신의 한 퇴직 공무원은 1978년 선산군 구미읍이 구미시로 승격 분리되고 1995년 구미시와 선산군이 도농통합형 구미시가 되는 상황에 대해 “작은집이 큰집이 됐다”라고 설명한다. “작은집이 큰집이 됐다”는 그의 말 속에 선산인으로서 아쉬움이 서려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고 할 만큼 역사의 중심에 있던 학문과 인재의 고향이었던 선산은 더 이상 “맥이 이어지지 않”고 “인(人)부족 재(財)부족”인 소읍으로 전락하였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를 포함한 읍민들과 출향인사들은 조선시대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던 옛 영봉리인 ‘장원방의 복원을 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역사·문화와 관련된 책자를 제작하는 등 선산의 정체성과 전통을 이어가고 발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선산5일장과 선산봉황시장

지역에 남아있는 전통시장들은 한국의 근·현대 시기의 변화 과정을 있었던 모습 그대로 드러내는 역사의 실체들이다. 전통시장들은 이 시기 도시 한편에서 성장과 쇠퇴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지역사회의 시·공간적 변화 과정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필자는 구미 지역의 여러 전통시장 중 오랜 역사를 지닌 선산읍의 5일 정기시장인 선산장과 현대식 상설시장인 선산봉황시장을 중심으로 전개하고자 한다.

2020년도 구미시가 의뢰한 ‘구미시 마을 인문자원 발굴 사업’에 연구원으로 참여했던 필자는 2년여 만에 선산장을 다시 찾았다. 선산5일장을 찾은 때가 한낮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이 달 7일이었다. 방문객들도 장꾼들도 하나같이 코로나로 마스크를 쓴 데다 삼복더위에 얼굴이 벌겋게 익은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장터의 분위기는 2년 전에 느꼈던 것보다 한층 더 활기차 보였다.

“조선 시대부터 선산시장이 유명했어요. 장날에 복개천 주변으로 장이 서는데 전국에서 온다. 외지에서 노점상이 들어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거지. 원주, 영동, 충주, 안계, 대구. 전국에서 온다. 풍물 시장화된 거지.”(박은호 전 구미문화원장)
 

선산시장2
시장 초입 공용주차장에서 바라본 선산봉황시장과 선상5일장 전경.

◇5일장 이동상인, 장꾼

구미에서 선산읍으로 들어가 1호 광장을 지나면 바로 이어지는 완전교가 장의 초입이 된다. 5일장이 열리는 2, 7일이면 완전교를 시작으로 수문교까지 방천길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장터에 각종 노점상들이 들어선다. 장꾼들 대부분은 지역민이 아니라 ‘김천, 상주, 부산, 대구, 의성 등 전국에서 오는’ 외지인들이라 할 수 있다. 장날에 직접 가꾼 농산물 같은 지역 특산물을 팔러 나온 지역민들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한다.

“선산장은 주말 끼는 장날에만 오는데 오늘은 대목이라 나와 봤어. 코로나로 너무 힘들어. 부산도 가고 김천도 가고 의성도 가고 장천도 갔다가 온 데로 다 가요. 엿하고 홍삼 젤리 한 팩에 2천 원.”(어느 엿 장수)

“선산장하고 여기 근처 구미 안에 있는 시장을 돌고 있어요. 여기 거의 대부분이 그래요. 여기 사람들도 멀리 가는 경우도 있어요. 예천, 문경 이런 데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보면 대개 대구에서 여기 구미 일대를 돌죠. 또 반대로 그쪽에서 오는 사람들도 많고. 나는 18년 정도 장사를 하고 있어요. 저기가 본장, 여기를 겉장이라 그래요. 십몇 년 전에 사거리 거기서부터 본장이었는데 그 후에 이렇게 커져 버린 거지.”(악세사리점 사장)

‘온 데로 다 간다’던 엿장수 아저씨는 이날 안 나오셨는지 보이질 않았다. 인터뷰하는 동안 나에게 연신 부채질을 해주시던 악세사리점 사장님의 인심에 전통시장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분 말씀으로는 완전교에서 수문교까지 본래 있던 장이라 ‘본장’, 그 외로 확장되어 펼쳐지는 곳을 ‘겉장’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해평면 낙산리에서 사시면서 직접 농사지어 5일장마다 나오신다는 채소전 할머니는 빨간 소쿠리에 담긴 호박잎을 가리키며, “쪄서 된장찌개에 밥 싸서 먹으면 맛나다”고 권하셔서 필자는 냉큼 한 소쿠리를 샀다. 선산장의 명물인 대왕 꽈배기, 식혜/우뭇가사리, 염통 꼬치, 족발 외에도 생닭, 농기구, 채소/과일, 어물, 의류, 뻥튀기 등등 다양한 먹거리, 볼거리에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었다. 이는 오감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선산5일장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산시장의 가치와 기록의 필요성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옛것’이 ‘힙’하고 그것이 최신 유행이 되는 뉴트로 트렌드 현상이 있다. 주말 선산장이 설 때면 외진 시골 장터에 “사람들이 이처럼 많이 몰리는 걸 보면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지역 어르신의 의구심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기성세대가 어릴 적 유행한 문화에 대한 향수로 소비하는 현상을 레트로라 한다면, 뉴트로는 과거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흥미를 느끼며 새로운 문화로 소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들이 관심과 흥미를 가질 만한 선산장만의 매력요소가 있음을 의미한다. 선산5일장이 갖는 매력요소인 복고풍과 현대식 상설 선산봉황시장이 갖는 특이성은 선산만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경험들을 구술사, 일상사, 생애사와 같은 형태로 아카이빙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지역민들의 기억과 일상을 통해 지역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 소소한 개개인의 일상 기록은 우리가 살아온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급속한 변화를 거듭해온 구미 지역에서도 비공식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이지만 그것들을 발굴하고 기록할만한 가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선산시장과 같은 전통시장의 사람들 이야기가 이에 해당한다. 시장 상인들, 노포점 주인, 사라져 가는 가게, 5일장 장꾼들의 이야기들 또한 우리의 미래 유산이자 지역 문화일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발견되고 지역의 정체성을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글=양은선 (마을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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