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상처 내고 원형 복구 작업무결점은 결점 속 잉태 돼 있어
두 상태 사이 접점 시각적 표현

거울에는 실물보다 더 화려하거나 예쁘게 비춰질 것을 기대하는 심리가 은밀하게 숨어있다. “착시나 왜곡을 기꺼이 용인하겠다”는 이 발칙한 심리는 거울 앞에선 자신의 모습에만 적용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거울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는 본성을 단 한 번도 거스른 적이 없다.
하지만 작가 김현일은 거울의 본성을 무참히 깨부수고 싶어한다. 그는 실제로 거울 표면에 상처를 낸 다음 깨진 부분의 표면을 다듬고, 표면의 일부를 긁거나 색을 칠하며 “현실을 비춘다”는 거울의 기능을 일부 파괴한다.
거울에 상처를 내고 원형을 복구하려 애쓰지만 생채기 나기 이전의 완전한 상태로의 복원은 불가능하다. 그런 상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거울 전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모아진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거울은 깨졌어. 그래서 거울의 기능을 상실했어”라고 단정 짓는다. 결점에서 부정적인 징후를 발견하는 심리의 작용 때문이다.
작가는 “상처내고 보수하는 반복된 과정을 통해 거울의 기능을 일부 복원했지만 사람들은 ‘거울은 깨졌고, 거울 자체의 기능을 온전히 상실했다’고 단정 짓는다”며 금이 간 거울을 향한 사람들의 인식상태를 설명했다.
그는 거울 외에도 깨지거나 부서지거나 찢어진 다양한 사물들도 작업의 소재로 활용한다. 주로 ‘결점’이 있는 사물들이다.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결점’은 ‘부정’으로 인식되지만 그러한 일반적인 편견에 경도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작은 파문이라도 일으키려 기를 쓴다.
여기에는 “긍정과 부정, 안정과 불안정, 추와 미, 불쾌와 유쾌, 우연과 필연, 불확실성과 확실성, 완전과 불완전이라는 완벽한 이분법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언제든 부서질 있고, 찢겨질 수 있죠. 이 둘을 이분법으로 단정적으로 나누는 것은 어렵습니다. 무결점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 결점 속에 잉태되어 있으니까요.”
사물에 균열을 내고 보완하는 그의 작업방식에서 “청년 특유의 반항인가?”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의 작업은 대단히 사유적이다. 사물을 파손하고 복원하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긴장감을 부추기고, 그런 상태를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비판과 결부시킨다.
그는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단정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두 상태를 동시에 드러내며 둘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허용하려는 입장을 취한다. 우리 사회의 팽배한 이분법적 사고는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분법적 태도는 그의 작업에서 모호한 지점, 즉 접점을 드러내는 것으로 시각화된다. 거울 등의 사물을 파손하고 보수하는 행위를 통해 모순과 비모순의 균형을 드러내는 식이다. 이는 곧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음을 강변하는 그의 시각적인 표현이다.
균형은 위태로운 삶을 안정으로 인도하는 긍정의 개념이다. 하지만 그런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많은 사유와 경험이 없다면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경지다. 작가 역시 균형된 상태가 결코 쉽지 않음을 이해하지만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만큼 가치로운 상태라는 자각이 있었다.
미술이 관람객고의 소통없이 존재할 수 없다고 전제할 때, 모순과 비모순의 공존으로 긴장감을 촉발하며 그가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는 “개인의 자율적인 상상이나 생각을 끌어올리”는 데 촛점을 맞춘다. “낯설고 무의미한 모호한 결과를 통해 우리가 보는 대로 고정될 수 없는 세계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드러난 익숙하지 않은 모호한 상태의 긴장감을 통해 모순과 비모순이 공존한다는 것을 환기하며 사람들의 상상을 확장시키고 싶었어요.”
김현일이 참여하는 수창청춘맨숀 레지던시창작랩 성과전은 1일부터 3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