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채연 수창청춘맨숀 레지던시 창작랩 성과전…30일까지
작가 김채연 수창청춘맨숀 레지던시 창작랩 성과전…30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2.09.0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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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우기’ 통해 치유받듯이 현대인들도…”
불행 반복 돼 ‘기록’으로 버텨
버려진 박스에 그림 그리기도
일상은 매일 주어지는 ‘선물’
외면받는 잡초 생명력에 위안
김채연작-우기
김채연 작 ‘우기’

거대한 폭포수의 하얀 포말이 잿빛 사위(四圍)를 몰아낸다. 폭포 수 위의 두 캐릭터가 폭포수 아래로 떨어지는 거대한 물줄기를 온 몸으로 맞서고 있는 또 다른 캐릭터를 우울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폭포수의 잿빛 풍경은 몰려드는 하늘 위 구름, 우울한 캐릭터들과 만나며 묘한 동질감으로 어우러진다. 김채연 작가의 ‘우기(雨氣)’다. 짝짝이 이빨과 도톰한 볼살을 한 ‘우기’는 작가 자신이다. 그는 내면의 심리와 행위의 흐름을 따라가는 ‘우기’ 캐릭터를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구축해 오고 있다. 그에게 우기는 ‘우기’는 또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고, 외부를 향해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또 다른 자아이다.

‘우기’는 비가 내리기 직전의 우울한 기운을 의미한다. ‘우기’가 작가의 또 다른 자아임을 감안하면, 그의 내면은 우울한 상태다. 이 땅의 청춘들이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지만 그래도 청춘이다. 한창 꿈을 펼쳐야 하는 그가 왜 그토록 우울해야 할까? 작가는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며 “운이 좋지 않았다”고 확정적으로 말했다. “안 좋은 일들이 내게만 일어났다. 남들은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상처럼 다가왔다”고.

좋지 않은 경험을 반복할 경우 심리적인 위축은 피할 수 없다. 작가 역시 그랬다. 언제부턴가 불행한 일이 닥쳐올 때면 잘 풀리던 일마저 망가져 버리는 경우까지 치달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마치 ‘필연적인 규칙’처럼 굳어지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에게 닥쳐온 일들을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헤어 나오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기록이었다.

절망의 순간에 체념하듯 시도한 ‘기록’이었는데, 의외로 그는 ‘기록’이라는 행위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했다. ‘기록’을 하면서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게 됐기 때문이다. 참으로 불행 중 다행이었다. “기록을 하면서 사유의 세계로 빠져 들었고, 사유가 깊어지면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새삼 깨닫게 됐어요.”

기록을 통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겨났다. 찢어진 박스, 버려진 나무판과 종이조각,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작은 생명의 흔적들이 새롭게 눈과 마음에 꽂혀들었다. 소외된 존재들에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환기하기 시작한 것.

“소외된 존재들에 마음을 주기 시작하면서 특별한 선물만 행복이라고 느꼈던 시각에 변화가 찾아왔죠. 별똥별과 무지개는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선물이지만 일상은 매일 매일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

작가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우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일반적인 개념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세상의 수많은 우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 뿐만 아니라 수많은 현대인들이 외로움과 고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인지한 것. 그들 역시 저 마다의 결을 가진 우기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우기’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순화하고 치유 받을 수 있었듯, 현대인도 우기를 통해 일상 속 무수한 감정들을 위로 받기를 바라며 우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기는 회화, 설치, 일러스트, 무빙이미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변함없이 견지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연이다. 그는 늘 우기를 자연과 결부시킨다. 풀 속에 있는 우기, 하늘을 바라보는 우기, 산길을 걷는 우기 등이 대표적이다. 자연 속에 버려진 박스를 가져와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이 역시 박스에 스며있는 자연의 흔적을 느끼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 만큼 그가 자연에 기대는 마음은 크다.

화면 속 자연의 모습은 그의 내면에 대한 반영인 만큼 꽤나 척박하다. 잡초라는 미명하에 외면 받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나아가는 자연의 생명력에 감회된 결과다. 그 이면에는 자연의 생명력을 배우고 싶어하는 작가의 마음이 자리한다. “저와 비슷한 척박한 환경에 놓여 있지만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자연의 생명력에서 많은 위안을 받고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비록 힘든 상황이지만 어둠을 밝히는 희미한 불빛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김채연 작가가 참여하는 수창청춘맨숀 레지던시창작랩 성과전은 3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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