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CEO 탐방]김숭열 아트랩네모 대표, 오래된 것, 사라져가는 흔적들 사진의 언어로 표현
[휴먼 CEO 탐방]김숭열 아트랩네모 대표, 오래된 것, 사라져가는 흔적들 사진의 언어로 표현
  • 채영택
  • 승인 2022.09.0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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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세 때 주부서 만학의 길 도전
사진작가·사업가로 끝없이 변신
사진 치료라는 독보적 영역 개척
주변 사라지는 것 기록으로 남겨
소외계층 위해 적극 봉사활동도
2020년 사진놀이치료協 설립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향유
아이들, 자신 미래를 찾는 여행
대학 다니며 철학적 소양 쌓아
김숭렬1
김숭열 아트랩네모 대표는 주부에서 사진작가, 대구사진영상연구원장, 한국사진놀이치료협회장, 아트랩네모 대표로 인생 2막을 새롭게 개척했다.

“자랄 때 제 꿈은 현모양처였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커지면서 잠자고 있던 저 자신의 자아가 꿈틀거렸습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이랄까 미련이 밀려들면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도전의 길에 늦은 때란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나이는 잊기로 하고 새로운 여정을 찾아 나섰습니다. 앞으로도 도전과 변신은 계속하고 싶습니다.”

김숭열 아트랩네모 대표(62)를 만났다. 52세의 나이에 주부에서 만학의 꿈을 펼치며 도전의 길에 나서 사진작가로, 사업가로 끝없이 변신 중인 CEO다.

대구 북구 신천동로에 있는 회사에는 김 대표의 작품 사진이 걸려 있다. 재래시장, 허름한 건물, 오래된 마을과 낡은 집기 등이 주제였다. ‘이런 것도 작품이 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감성이 섬세하다. 아련함도 묻어있다. 작품을 통해 본 작가의 이미지처럼 김 대표의 첫인상은 고향 언니처럼 푸근하고 사람 좋아 보인다.

김 대표는 주부에서 사진작가, 대구사진영상연구원장, 한국사진놀이치료협회장, 아트랩네모 대표로 인생 2막을 새롭게 개척했다. 그리고 변신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지위가 아니다. 10여년간 치열하게 걸어온 발자취다. 그녀는 사진으로 대화하고 소통하고 치료한다. 사진을 매체로 사업도 한다. 남다른 시각과 감성, 스토리텔링으로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고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한다. 사진 치료라는 창의적이고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했고, 사진으로 다양한 공모사업을 진행하며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진심이다.

-아트랩네모는 어떤 회사인가.

△아트랩네모는 사진영상과 문화예술을 융합해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문화예술교육 전문업체다. 2020년에 설립했다. 메세나 프로젝트(기업의 사회 환원 프로그램) 보급으로 기업과 사회의 상생, 청년예술가의 일자리 창출, 지역주민의 문화예술 체험 기회 제공으로 ‘즐거운 문화, 함께하는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사진을 매체로 공모사업 등 많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업 내용을 소개해 달라.

△2013년 대구사진치료연구소를 설립, 2016년 대구사진영상연구원으로 법인 전환, 2020년 한국사진놀이치료협회를 설립했다. 공모사업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아트랩네모를 통합·운영하고 있다. 현장 경험을 살려 직접 개발한 사진놀이치료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 분야와 협업해서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향유를 지향한다. 특히 문화예술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사진놀이교실, 사진놀이치료, 3D프린터, 드론(항공촬영), VR(가상현실) 등의 교육 환경 조성과 문화콘텐츠를 제공하고 재능 나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진놀이치료 프로그램은 어린이와 시니어를 대상으로 2018년부터 꿈다락토요학교(대구문화재단 공모사업) 지역아동센터 운영 결과물인 ‘속닥속닥 알콩달콩’ 전시회를 매년 열고 있다. 2020년 ‘사진으로 바라보는 우리 동네’(북구문화재단 어울아트센터 지역문화 활동가 양성 과정), ‘어르신과 함께하는 우리 동네 역사 만들기’(대구문화재단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교육사업), ‘탈학교, 탈 가정 북구 청소년센터 사진기반 통합예술프로그램’(한국문화예술교육 진흥재단 부처 간 문화예술사업) 등을 총괄 운영했다. 꿈다락토요학교의 통합예술교육프로그램 ‘상상오(悟)다’와 어린이사진놀이 공모전 등도 진행했다.

-사진을 찍다, 보다에서 소통하다, 치료하다의 영역을 개발했다. 사진놀이치료가 궁금하다.

△사진놀이치료는 사진과 여러 장르의 예술을 통합한 교육프로그램이다. 사진을 찍고, 감상하고,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특징이다. 프로그램의 주요 과정인 ‘상상 오(悟)다’는 듣다·보다·말하다·알다·찾다의 5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바른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을 알아가고, 사회와 협동하여 자신의 미래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게 된다. 사진 놀이치료는 현재 사진기반 통합예술교육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에 개발한 포토보이스 프로그램은 사진으로 단체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우리 지역의 현안을 기관과 협력해서 사진으로 찍어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찾아내서 건의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 현재 홀몸 어르신 대상으로 친구 맺어주기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강사 양성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2013 한국 전문언론인협회 사진작가 부문 자랑스러운 문화인 수상 등 사진작가로 유명하다.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시작은 미미했다. 남편의 권유였다. 사실 사진 찍는 것보다 카메라라는 기계를 다루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남편은 기계치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모든 기계를 다루게 되었고 소질이 좀 있는 것 같았다. 카메라라는 기계적인 메커니즘에 관심이 있다 보니 카메라를 통해 찍는 기술에도 익숙했다. 사진을 찍은 후 보정작업으로 포토샵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재미있게 놀았다는 표현이 맞다. 2016년 남편과 아이가 일본으로 유학 갔다. 내가 남편 회사(청우물류) 대표로 일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컴퓨터는 신세계였다. 모든 일이 빠르고 정확했다. 5년 후 남편이 돌아왔다. 그동안 떨어져 지낸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남편과 함께 여행을 다녔다. 사진을 찍었고 포토샵, 일러스트 작업으로 나만의 감성을 담았다. 적성에 맞아서 꾸준히 하게 되었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작품의 주제가 시장 풍경, 허름한 건물 등 보편적인 미를 추구하지는 않더라. 작품 세계가 궁금하다.

△나의 사진 주제는 사라져가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다. 시장 풍경은 전국 72개 재래시장을 다니며 찍어서 하나의 이미지로 연출했다. 각각 다른 시장 풍경을 여러 장 겹치면 거의 비슷한 형태로 나타났다. 아치형 지붕은 그 시대의 시장 형태와 유행을 보여준다. 획일적인 유행을 꼬집은 것이다. 시장 풍경은 자라면서 한 번도 내 의지대로, 내 삶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방관자적인 태도로 살아온 나의 내면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사라져가는 시외버스 정류장 작업도 했다. 지금은 마을에 빠져있다. 마을문화 공모사업에 참여하면서 마을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래된 것, 사라져가는 흔적을 사진의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 김 대표는 만학도로, 작가로, 대표로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배경이 되는 인생 히스토리가 궁금하다

△고향은 상주시 내서면이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고 집안 환경은 평범했다. 막내라서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애살맞게 뭔가를 했던 기억이 없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아버지께서 중학교 때 부천에 사는 오빠네로 유학을 보냈다. 가기 싫어서 온종일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25살에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아이 키우는 평범한 주부였다. 40대 중반, 남편과 아이의 일본 유학은 내 인생의 전환기였다. 남편이 기반을 다잡은 회사였지만 그때부터 택배 사업이 시작되었다. 회사가 더욱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운수회사는 허가제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차고지가 있는 청송에 차를 등록하러 다닐 정도로 바빴다. 차주에게 마음으로 대하니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왔다. 차주 한 명 한 명이 모두 우리 회사의 홍보대사였다. 정신없이 바빴다. 회사가 커지고 직원이 늘어나면서 개인적인 여유가 생길 무렵에 남편이 돌아왔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놓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 시간을 나의 시간으로 잡은 것 같다. 이제는 내조보다 남편의 외조를 받고 있다. (웃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대학·대학원 다니며 공부하던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사진뿐만 아니라 인문학, 철학적 소양도 쌓는 계기였다. 나도 몰랐던 새로운 나를 발견한 시간이었다. 2007년 대구예술대 사진영상학과 입학, 2011년 홍익대 대학원 사진 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학과 때와 달리 그곳에는 사진 현업에 종사하는 프로들이 대거 모여 있었다. 그들과 경쟁하자니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원 없이 공부한 시기였다. 열심히 하다 보니 100점도 맞았다. 내친김에 경일대 대학원 사진영상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현장에서 진행했던 교육프로그램을 학문적으로 깊이 있게 접근하여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였다.

-대단하다. 자신만의 영역을 개발하면서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달려왔다. 성과도 많았지만, 체력에 무리였을 것 같은데.

△맞다. 병이 나더라. 아프고 난 후에야 비로소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다 내려놓은 시기였다. 그러나 엄마와 부모라는 자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없는 자리라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은 아이에게 일을 전수하며 쉬엄쉬엄 즐기고 있다.

-남은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내 머릿속이 나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늘 새로운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다. 남은 과제는 시니어들을 위한 웰에이징(Well-Aging, 건강한 노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봉사하고 싶다.

강은주 편집위원 tracy@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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