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미디어에 의한 환영적 믿음이 만드는 즐거움과 두려움
[대구논단] 미디어에 의한 환영적 믿음이 만드는 즐거움과 두려움
  • 승인 2022.09.04 22: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의진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영상 미디어 기술이 발전하며 인간은 감각적 환영에 의한 즐거움을 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영화를 보며 감동을 느끼고, VR게임을 하며 가슴을 졸이거나 흥분하기도 한다. 오늘은 인간이 어떻게 환영에 불과한 영상을 보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감정반응을 하며 즐길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 인간의 감정은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발생한다.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흥분과 기쁨이 솟구치는 것이며, 친구가 사고로 죽었다고 믿기 때문에 슬픔이 발생하는 것이다. 만일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믿음이 없다면 흥분과 기쁨이 발생할 이유가 없으며,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이 잘못 전해진 것이어서 친구가 죽었다는 믿음이 사라진다면 슬픔도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감정은 믿음에 의해서만 발생한다는 것은 반박하기 힘든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은 희한하게도 진짜라고 믿고 있지 않는 영상의 컨텐츠를 보며 온갖 감정반응을 뿜어내고 즐거워하거나 두려워하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 래드포드(Radford)는 인간이 믿음도 없는 허구의 컨텐츠를 보며 어떻게 감정반응을 보이는지 무척 궁금해 하며 1975년에 이에 관한 논문을 학술지에 제출하였다. 하지만 그 이유를 밝힐 수 없었던지 래드포드는 문제만 제기하고 결국 인간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모순적 존재“라며 논문을 결론짓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왜 그런지를 설명하는 이론들이 풍성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 중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을 하나 소개한다면, 인간은 두 종류의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해답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물 컵에 꽂혀있는 빨대는 굽었다는(굽어보인다는) 믿음과, 반대로 빨대는 실제로는 굽은 것이 아니라는 또 다른 믿음이 동시에 우리의 머리에 작동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빨대가 굽었다는 믿음은 시각적 환영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물 컵의 빨대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빨대가 굽었다고 믿지는 않지만 굽었다는 생각이 머리에 계속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빨대가 굽었다는 생각은 환영적 착각인데, 이를 환영에 의한 “감각믿음”이라며 믿음의 지위를 부여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러한 학자들은 미디어 영상의 내용들은 모두 환영적 감각믿음을 만든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짜 믿음이 아닌 환영적 착각에 의한 것일지라도 그것도 믿음이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마약에 의한 환영이나 꿈을 꾸는 동안의 환영은 인간의 감정을 촉발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꿈의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미디어 영상에 의한 가상현실은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동시에 또 하나의 감각믿음에 의해서 가상현실을 실제현실처럼 받아들이고 온갖 감정적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머나먼 미래에 어느 순간 현실세계를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 미디어가 발명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만일 그런 미디어가 나온다면 인간은 감각믿음을 바탕으로 미디어 컨텐츠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진짜 믿음을 바탕으로 격한 감정 속에 파묻힐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디어를 이용해 사람을 조작하려는 나쁜 의도도 생길 수 있으며, 현실에서 떠나 미디어 세상에서 살려는 미디어 “자연인”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완벽한 미디어가 발명되지 못한 현재 이 순간에도 이미 미디어를 이용해 사람들을 조작하려는 집단도 많으며, 현실도피 식으로 미디어의 가상현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환영적 믿음으로 인해 우리들은 즐거움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작되고 파괴되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늘을 보며 우리는 하늘이 파랗다고 감각적으로 믿는다. 현실세계에서 그러한 감각에 의한 믿음은 대체로 사실과 같다. 하지만 미디어를 사용하며 생기는 감각믿음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내용이다. 그렇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우리는 미디어 내용을 보며 발생하는 감각믿음을 바탕으로 감정반응을 보이며 즐거워하기도, 슬퍼하기도, 두려워하기도 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