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를 모르고 강자에 덤비는
어리석음 상징하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저항·담력·용기 상징
신사임당 ‘초충도’ 속 사마귀
장수·기쁨 의미하는 나비와
덩굴식물도 함께 그려져 있어
만대까지 자손이 번성하는
천양희(1942~ ) 시인의 ‘저항’이라는 제목의 시를 읽어보면
‘독수리는 바람의 저항이 없으면 날 수가 없고,
고래는 물결의 저항이 없으면 뜰 수가 없다.
사람은 어떻게 저항해야 살 수가 있냐.’
정말 자연재해 앞에는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마지막 구절이 재난민들의 한탄으로 느껴졌다.
‘저항’이라는 단어를 세기면서 우리 그림에 나오는 사마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마귀는 삼각형의 머리에 초록색의 앞다리가 낫처럼 구부러져 그냥 보기에도 무섭고 도전적으로 생겼는데 성질도 포악해서 물리거나, 앞다리 가시에 찔려 피를 볼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
사마귀는 영어로 ‘praying mantis’ 라고도 하는데 기도하는 사마귀라고도 불린다. 앞발을 모은 모습이 꼭 기도하는 모습처럼 보여 붙여진 별명인가보다. 다소곳이 모은 경건한 두 발은 먹이를 낚아채는 순간에 강력한 무기로 변한다. 웬만한 곤충과는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공격의 왕, 사마귀는 인간의 무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름하여 당랑권(螳螂拳), 필자처럼 무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예전 성룡의 무술영화에 등장하는 권법으로 사마귀처럼 손목을 꺾고 한쪽 발을 세운 모습이 좀 우스꽝스러운 자세였다.
중국 이야기 나왔으니... 사마귀에 대한 재미난 고사성어(故事成語)를 소개한다.
중국 잡가의 대표작으로 꼽는 <회남자(淮南子)>는 도가, 법가, 유가, 병가 등 여러 학설을 모아서 엮은 백과사전 같은 책으로 한나라 회남왕 유안이 펴낸 책이나. 이 책에 보면 <당랑거철(螳螂拒撤)>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齊)나라 왕족 장공(張公)이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향하는 중이었다. 백성들이 저만치 물러서 왕족의 수레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런데 희한하게 생긴 곤충 한 마리가 길 가운데에서 앞발을 치켜들고 수레바퀴를 칠 듯이 몸뚱이를 곧추세우고 있었다. 수레가 깔고 지나치려는 중간 장공(張公)이 급히 수레를 멈추게 하고 마부에게 물었다.
“도대체 저 벌레는 무엇이냐?”
“사마귀라고 하는 곤충입니다.”
“허허! 참으로 맹랑한 놈일세. 마치 수레랑 한판 붙어보자는 기세로구나.”
“저놈은 사냥꾼 같은 놈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줄 만 알지 물러설 줄 모르고 아무한테나 덤벼드는 습성이 있습니다.”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같은 녀석이구나.”
장공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레를 돌려서 피해 가라고 일렀다.
“저 벌레가 사람이었다면 반드시 천하에 비길 데 없는 용사였을 것이다. 저놈의 용기가 가상하다.” 마부가 사마귀를 비껴 수레를 몰았다.
이처럼 본래 <당랑거철(螳螂拒撤)>에서 사마귀는 군주의 경의를 받은 생물이다. 당시 군주의 경의는 군주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존대라고 할 수 있다.
<당랑거철(螳螂拒撤)>의 사마귀는 분수를 모르는 이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영웅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가 분수를 알고 처신을 삼가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대성(大盛)하기 위해서는 이 분수를 뛰어넘어 도전의식으로 부딪혀 나가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랑거철(螳螂拒撤)>은 물러설 줄 모르고, 자기 힘은 헤아리지 않은 채 강자(强者)에게 덤비는 사마귀의 습성처럼 분수를 모르고 일을 그르치는 어리석음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떠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물러설 줄 모르는 강인한 저항, 담력과 용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중국회화에서는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게 그려져 왔고 그중 대표작을 찾아보았다.
<그림1>중국 근 현대 화가 유규령(劉奎齡)은 서양 화법과 일본화풍의 영향을 융합하여 20세기 공필화조화의 새로운 양식을 창안하고 천진 화단의 공필화조 화풍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위 그림은 사마귀와 관련한 당랑포선(螳螂捕蟬)의 고사를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매미와 사마귀의 모습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그림2>우리 그림 속 사마귀를 살펴보자. 예전에는 이 무서운 사마귀가 그림의 소재가 되어야 하는지 사뭇 궁금했었다.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은 이이(李珥)의 어머니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여류화가이다.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났고 자수도 잘했다. 그림에 있어서 산수, 포도, 대나무, 매화, 그리고 화초와 벌레 등 다양한 분야의 소재를 즐겨 그렸다. 이 작품은 여덟 폭 병풍의 초충도 중 하나이다.
화면 전체에 나팔꽃과 여뀌와 같은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덩굴식물이다. 덩굴식물은 줄기가 곧게 자라는 다른 식물들과 달리 지면이나 다른 식물 등에 기대어 자라나는 식물을 일컫는다. 덩굴식물은 일반적으로 생장이 빠를 뿐 아니라 덩굴식물을 가리키는 한자어가 만대(曼代)인 까닭에 옛사람들은 덩굴식물이 상징하는 바를 만대(萬代)로 여기고 모든 것이 이어져 단절되지 않음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영적인 신비한 힘, 강인함을 의미하는 사마귀와 장수 또는 기쁨을 의미하는 나비와 함께 덩굴식물이 그려진 경우, 만대까지 자손이 강인하고 영적인 힘을 받으며 번성하는 기쁨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바위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모란꽃과 나비, 여치, 방아깨비, 사마귀 등이 함께 그려져 있다. 화면 오른쪽 바위와 풀숲 사이로 사마귀가 보이는가?
사마귀의 먹이 사냥에서 보이는 행동에서 고요함, 조용함, 평온, 인내, 균형의 모습이 보이며 행동개시의 시점이 확실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에서 묵상과 명상의 상징이 생성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그림에서 날갯짓을 하며 날아다니거나 먹이를 노리는 여러 움직임을 보이는 곤충들 사이에서 홀로 고요하게 움직임 없이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도록 사마귀를 그린 경우가 많은데 위 그림이 그러한 예이다.
민화에서는 사마귀 그림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민화의 특징과 관련이 깊다. 민화는 이상적인 정신적 향상보다는 세속에서의 행복한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민화는 세속적 욕망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드러낸 길상화(吉祥畵)이다. 따라서 사마귀 관련 주제처럼 어리석음을 꾸짖는다거나, 그 용기를 칭찬하는 식의 화제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다시 처음에 언급한 싯 구절로 돌아가 본다. 저항!
예전에 드라마 <대조영>이 생각났다. 당나라 군대의 포로가 된 대조영(최수종 역)이 굶주림과 온갖 고문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거인과도 같은 당나라 군대를 맞아 처절하게 싸워낸다. 아마도 내가 당나라 군인이었다면 그 대조영이 사마귀처럼 두려웠을 것이다. 그 저항의 힘으로 ‘발해’라는 나를 세워 200년간 존속했던 역사적 사실을 보면서 기후재난에 맞서 싸우고 이길 수는 없으나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 생각났다.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들고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그 길을 변함없이 걸어간다면 독수리나 고래처럼 날거나 뜨진 못해도 어제와 같은 오늘을 날마다 살 수 있지 않을까?
태풍에 많은 피해를 입으신 분들 힘 내십시오. 그리고 이겨내십시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