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작가 “신전으로 가는 길은 ‘깨어있는 삶’ 은유적 표현”
이해진 작가 “신전으로 가는 길은 ‘깨어있는 삶’ 은유적 표현”
  • 황인옥
  • 승인 2022.09.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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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창청춘맨숀 레지던시창작랩 성과전…30일까지
신전 속 동물, 윤회 몸짓 일 수도
제 그림이 신전 향한 출발선 되길
철학적 사유 통해 위로 받았으면
이해진 작
이해진 작

이해진 작가의 어머니는 어린 딸을 강하게 키우고 싶어 했던 것이 분명하다. 일찍부터 딸에게 “큰 기쁨 뒤에는 반드시 그 만큼의 슬픔이 온다”고 가르쳤다.

사사건건 일희일비 (一喜一悲) 하기보다 긴 안목으로 마음의 큰 동요 없이 처연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 하나였다. 어린 딸이 그 말의 의미를 십분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았겠지만 그녀는 게의 치 않고 딸에게 우주의 섭리를 끊임없이 속삭였다. 그런 행동 뒤에는 딸이 일찍부터 사유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그녀의 큰 계획은 벌써 씨앗을 틔우는 듯 하다. 딸의 작업 전반에 삶과 죽음, 현실과 초현실 등의 사유적인 주제들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죽음이 피부로 와 닿기에 청춘인 딸의 입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흘러나왔다.

“제 나이에는 삶이 영원할 것 같고 죽음은 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지만 문득 문득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신전 같은 곳을 가면 죽음을 더 가까이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사유를 촉발하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는 공간에 주목한다. 신전이나 역사적인 장소에 새겨진 시간의 겹이나 사유의 지점들을 수집하여 회화로 기록한다.

실제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공간 속 기억들을 중첩하기도 하며 제3의 공간으로 구축한다. 최근에서 이전 작업들을 다시 꺼내 사유적인 주제들로 덧입히기도 한다.

“우리가 신전에 가면 마음을 깨끗이 하고 사유를 하게 되잖아요. 신전의 사유나 명상, 삶이나 죽음을 은유하는 하나의 상징물로 활용하고 있어요.”

사유를 구체화하는 주제는 ‘신전으로 가는 길’. 신전은 은유를 위한 상징적인 촉매제로 채택된다.

그의 화면은 죽음을 상징하는 불꽃같은 아지랑이와 죽음 너머의 세계, 즉 완전히 평온한 공간을 의미하는 신전 등으로 구성된다. 신전의 느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지점을 무중력 상태인 초현실로 표현하기도 한다. 신전을 찾아 뛰어다니는 말이나 양을 닮은 초식동물들이 초현실적인 공간의 적막을 깬다.

이들 동물들은 죽음이라는 육식을 피해 달리는 작가 자신이자 이 제상과 저세상 사이를 윤회하는 일종의 몸짓이기도 하다.

“우리 삶에서 오는 모든 것들을 피하고자 하는 가련한 동물들의 모습을 그리다 보니, 문득 그 모습 자체도 아름다워 보였어요.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힘, 그것이 사유인 것 같아요.”

시류와 욕망에 딸려가는 삶이 행복의 지름길 같지만 내면이 허허로우면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구나 깨어있는 삶을 살기는 어렵다. ‘신전으로 가는 길’은 ‘깨어있는 삶’, ‘사유하는 삶’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작가에게 그 길은 숭고함의 길이자 도달하고픈 종착지다.

신전이나 현실 너머의 존재들을 통해 자신의 의식이 어렵사리 깨어났듯, 그 이미지들이 누군가의 의식 또한 일깨우기를 바란다. 자신의 작업이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제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이 잠시라도 무의식중에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기를 바래요. 그리고는 제가 깨닫고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들을 각자 나름의 생각으로 정리도 하면 더 좋고요.”

사유의 대상이 꼭 신전일 이유는 없다. 자연스럽게 사유의 장으로 연결되는 장소나 대상이면 무엇이든 무관하다. 사람마다 가지는 신전의 형태도 다양하고, 기원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비록 화면에 구축해 놓은 신전이 작가의 마음이 기댈 수 있는 이미지의 표상으로 채택됐지만 누군가의 신전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각자의 신전으로 향하는 출발선이 되기를 희망한다.

“모든 분들이 똑같은 이미지의 신전을 기억하거나 기원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살아가면서 철학적인 사유들이 중요하며, 그것을 통해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작업은 그 단초를 제공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해진 작가가 참여하는 수창청춘맨숀 레지던시창작랩 성과전은 3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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