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꼰대 시대의 형제애
[대구논단] 꼰대 시대의 형제애
  • 승인 2022.09.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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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TV에서 재벌 자녀 간의 추악한 욕망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신문에는, 부모 유산이나 부모 모시기, 제사 지내기 등의 문제로 형제 자매간에 치고받고, 고소하고, 끝내는 살인까지 하는 기사가 자주 보도된다. 명절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형제들이 모이는데 올해는 또 어떤 해괴한 일이 생길까? 저어된다.

그의 작은아버지는 대단한 분이시다. 그의 아버지께서 작은아버지 이야기를 하실 때가 있었다. 아버지는 독한 윤감에 걸렸었다. 그가 태어나기 전 일이다. 의술이 신통치 않던 시대라 병은 차도가 없고, 몸은 살갗이 겨우 뼈에 붙어 있을 정도였다. 동네에서 ‘몸보신을 해야 한다’고 수군거렸다. 작은 집에는 송아지만 한 누렁이가 있었다. 작은아버지는 거리낌 없이 누렁이를 잡아 소죽솥에 푹 고았다. 국물 한 숟가락 남기지 않고 모두 아버지께 드렸다.

“고기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먹고 싶었을꼬”

아버지는 회한에 잠기셨다. 작은아버지는 팔척장신에다 100kg이 넘는 거구이셨다. 고기라면 사양하지 않는데, 국 한 그릇 나누지 않은 것을 후회하셨다. 그는 평소 작은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여름 방학 때이다. 작은어머니가 무엇이 못마땅한지 볼멘소리를 했다. 이유를 물어보았다.

“얘야, 올해도 부산에서 아이들을 보내지 않는다는구나. 모기에게 물릴까 안 보낸다나, 그럼 우리 집 아이들은 모기에 다 물려 죽었겠다.”

작은어머니의 불만은 간단했다. 부산에는 시동생이 살고 있었다. 방학이 되었는데 조카들을 당신 집에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해 섭섭함이 컸다. 시댁 식구라면 기겁을 하는 요즈음 젊은이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부모들의 삶은 아랫대에도 세습(?)이 된다.

그는 도시에 사는 누나 집에서 고등학교에 다녔다. 하루는 매형이 술주정을 했다. 좀 심하다 할 정도였다. 하필 이 시간에 같은 지역에 사는 사촌 형님이 오셨다. 형님의 눈에서 불이 났다.

“아니, 처남 앞에서 무슨 짓이야, OO아, 우리 집에 가자. 보따리 싸라.”

형님은 매우 격정적이었다. 평소 사람 좋은 매형이 ‘처남과는 하등 관계없는 일’이라고 사과를 하고, 누나도 울면서 말렸으나, 형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는 그날부터 친누나 집에 살지 않고 사촌 형 집에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말이 안 되는 일이 3년 동안 일어났다. 사촌 형님과 함께한 나날은 재미있는 추억의 시간이었다. 사촌 형님은 그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 축하금으로 7천원을 주셨다. 1971년 당시 9급공무원 월급이 5~6천 원이었다. 그는 사촌 형님을 늘 가슴에 담고 산다.

부산에 막내 아버지가 살고 계셨다.

막내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 생신 때 매년 오셨다. 막내 아버지가 부산에서 그의 집까지 오려면 온종일 시간이 걸린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또 한 시간 이상을 걸어오고, 당시에는 교통이 불편하고, 환승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새벽 별 보고 집을 떠나, 초저녁달 보고 그의 집에 도착했다. 그는 늘 그런 막내 아버지가 고마웠다. 하루는 슬쩍 감사의 말을 건넸다.

“아재요, 그 먼 길을 어떻게 매년 오세요?”

“얘야, 이제 형님 생신에 오면, 몇 번 더 오겠나?” 막내 아버지의 얼굴에 유한한 삶의 애수가 묻어났다. ‘자네 형제들 우애, 참 보기 좋네’ 동네 노인들이 부러워했다. 막내 아버지는 3년을 더 오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막내 아버지는 5형제 중 유일하게 대도시 부산에 사셨다. 그 죄로 조카 6명이 서울 대학 간다고 각각 1년 이상씩은 막내 아버지 집에서 유학했다. 막내 어머니는 당신 자식도 4남매이다. 거기다 조카들까지 덮쳤으니, 자녀를 한둘 두고도 힘들어하는 주부들이 들으면 기겁할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했다. 그러나 서울 대학 간 조카는 한 명도 없다.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 조카들이다.

이제 가족 개념이 바뀌고 있다.

형제간의 분란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앞으로는 직계만 있고 방계가 없어질 것이다. 형, 동생, 고모, 삼촌, 조카, 사촌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나 홀로 크고, 강아지와 시간을 보낼 것이다. 동기간의 우애, 일가 화목 같은 단어는 사어(死語)가 될 것이다. 형제간에 재산을 다투는 스릴 있는 드라마가 없어져서, 사는 것이 밋밋할지도 모른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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