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는, ‘운경유 夜(야)외음악회’
[화요칼럼]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는, ‘운경유 夜(야)외음악회’
  • 승인 2022.09.1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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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너는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해야만 한다/ 네가 본 멋진 요트와 배들,/ 이들 중 하나만 먼 여행을 앞두고 있고/ 나머지에겐 소금기 가득한 망각만이 기다린다/ 너는 갈 곳도 없이 걷고 있는 난민들을 보았고/ 처형자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것도 들었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해야만 한다

-아담 자가예프스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 부분



가을이 온다는 것은 기쁨이고, 가을이 내게로 온다는 것은 기적이다. 힘겹도록 유별나게 여름을 건너오는 내게 가을맞이는 입추 이전부터 시작된다. 가방 속에는 자연스럽게 시집 한 권이 들어앉는다. 릴케는 시 ‘가을날’에서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결실과 조락의 계절을 통해 투시한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날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시적화자의 고뇌는 그만의 것이 아니다. 계절의 경건성과 구도 정신은 우리 일상의 평이함 속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풍성함과 황폐함,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의 괴리를 이중적 속성을 대비시켜 표현하고 있다. 특히 봄과 여름에는 만물을 생성·성장시키고 가을이라는 결실을 맺게 하는 신의 은총과 겨울이라는 황폐함을 앞두고 불안감에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저물녘, 릴케의 ‘가을날’을 조곤조곤 음미하며 ‘중산공원’으로 접어들었다. 이곳은 대한민국의 기업 1번지를 넘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의 모태가 된 제일합섬이 있던 자리다. 중산공원은 느티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걸으며, 호수를 품은 공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산책로로 조성되었다. 거기다 가끔은 작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바로 오늘이 그날이다. 공원 인근에 자리한 운경재단(이사장, 곽동환), 대구시지노인전문병원에서 마련한 주민과 함께 하는 ‘夜(야)외음악회’로 ‘유(遊)앙상블합창단’과 ‘유(遊)챔버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다.

음악회는 장기간 코로나19로 인해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공연이기도 하지만 주최 측인 시지노인전문병원에서는 시작 전, 주민들의 건강 관리를 위한 혈당과 혈압체크, 체성분 분석 등 무료 건강 검진 부스를 운영하는 이벤트도 마련하였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인근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음악이 흐르는 저녁을 만들었고, 참여자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앵콜 세레를 보냈다. ‘좋아요’라는 마음의 표현인 듯 공연 중 주민들 사이에선 하나둘 스마트 폰 후레쉬가 반짝였다. 앵콜곡에 이르러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노래의 진행에 따라 불빛은 꽃밭으로 변했고, 어둠은 합창으로 환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공연 후 “우리 병원 그리고 운경재단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더욱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관계자는 밝혔다. 그 다짐은 내게로 전이되어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는 시구(詩句)로 새겨진다.

미국 9·11테러 직후 상처 입은 전 세계인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는 폴란드 르부프에서 1945년에 태어났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국토를 소비에트에게 빼앗기고 고향에서 내쫓겨 실향민이 되었다. 엄청난 상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을 향해 찬미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권면한다.

과연 그 누가 망가지고 부서지고 훼손된 세계를 어떻게 찬미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는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진 절망 앞에서도 아름다운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자고 말한다. 풍요로운 대지, 한가로운 여름날, 화려하게 울려 퍼지던 음악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빛나는 순간들, 도토리를 줍던 일. 그러한 기억들이 있는 한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훼손된 것들을 애도하는, ‘폐허의 시인’은 덧붙인다. “당신은 훼손된 세상을 찬미해야 합니다.” 비록 폐허 속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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