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표정 짓는 여인, 진짜 속내는…갤러리 DO’NO 최애리 개인전
담담한 표정 짓는 여인, 진짜 속내는…갤러리 DO’NO 최애리 개인전
  • 황인옥
  • 승인 2022.09.1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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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선과 2~3개 색 사용
캐리커쳐·팝아트적 스타일
있는 듯 없는 듯…멍한 표정
현실과 본질 사이 순수 갈망
최애리작-달의여인-연작
최애리 작 ‘달의 여인’ 연작

최애리 작
최애리 작

단 한 줄의 시(詩)로 우주의 심연을 유영하고, 몇 가닥의 선(線)으로 만상(萬象)의 혼을 품을 수 있다면 가히 신선의 경지다. 백 마디의 말이나 화려한 장신구의 치장보다 정곡을 찌르는 간결한 긴장감에 확 빨려들 많은 이유는 장막을 걷어내고 본질에 다가간 때문이다.

최애리 작가가 간결한 선의 유희로 그려낸 여인들이 무념무상인 이유는 본질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감거나 뜨고 있는 여인의 눈에서 희노애락의 말초적인 감정을 걷어낸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중의적인 표정은 그의 의식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정확히 말해준다. 그는 현실과 본질 사이에서 본질의 순수를 갈망한다. 그 갈망의 시각적 드러남인 화면 속 여인을 작가는 “원초적”이라고 언급했다.

대학원에서 비구상을 전공 했을 때부터 인물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그의 인물은 추상에 가까웠다. 흔히 생각하는 모나리자 같은 정통 인물보다 누드 드로잉으로 변형된 인물이 주를 이루었다. “누드 드로잉은 그림의 출발이자 완결이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손에서 놓은 적이 없어요.”

10여년간 천착하고 있는 여인은 ‘선·유’ 연작, 캐리커쳐와의 만남으로 태어난 결실이다. 선의 유희가 돋보이는 팝아트적인 작업이다. 인사동 전시 때 우연히 캐리커쳐를 접하고, 캐리커쳐를 독학하면서 찾아온 변화다. 유려한 여인의 예술적인 인체 선과 캐리커쳐의 직관적인 선이 만나면서 세상 어디에 없는 작가만의 여인상이 탄생했다. 선적인 요소들은 물감을 칠한 후 스크래치 기법으로 긁어내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비구상에서 인물을 빼오면서 그대로 하기는 싫었어요. 좀 더 재미있고 해학적으로 빼냈으면 했죠. 캐리커쳐가 그 고민을 해결해 주었어요.”

캐리커쳐에 빠져든 이유는 “직관으로 잡아내는 간결한 선의 미학에 매료”된 때문이다. 지금은 대구 팔공산 작업실에서 캐리커쳐 강좌까지 진행할 정도로 캐리커쳐 확산에도 힘쓰고 있다.

유려한 선과 직관적인 선은 대척점에 있다. 전자는 현실, 후자는 본질에 뿌리를 둔다. 그는 이 두 세계에서 어느 한 쪽에 더 많은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정확히 경계 지점에서 양 단을 아우른다. 본질을 지향하되,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자신의 처지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있는 듯 없는 듯한 모호한 표정의 여인이 탄생한다. “보이는 표면과 그 이면의 경계 부분에서 내면에 투영되는 선을 순수함 그 자체로 무념무상으로 평소 길들여진 붓의 손놀림으로 표출하고 있어요.”

장막을 걷어내고 진실한 본질과 마주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장치는 단순화다. 최대한의 단순하고 간결한 선의 결합으로 원초적인 표정을 잡아낸다. 색 또한 간결하다. 두 세 개의 색으로 인물의 분위기를 잡아낸다. “선과 색의 보폭을 맞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지만 단순화 속에는 그가 전하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 “비우기”다.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면서 단순함을 가지고 싶었고, 사람들에게도 단순함을 전하고 싶었다.

“요즘은 많은 이야기들을 앞다투어 하는 시대인데, 저는 오히려 들어내고 비워내고 싶었어요. 단순함이 주는 강한 힘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어요”

단순함 속에서 돋보이는 치장들도 없지 않다. 여인의 포즈와 머리카락의 선들이 유려하다. 한 손을 턱에 궤거나, 팔짱을 끼거나 합장을 하는 포즈에서 당당함이 묻어한다. 포즈는 “광고 모델들에게서 차용한 것”이다. 머리카락은 표정을 걷어낸 얼굴 대신 표정을 담당하는매개다. 머리카락의 선들에서 여인의 감정상태가 살포시 비집고 나온다. 감추어도 감출 수 없는 내면의 감정들을 풀숲처럼 자유로운 머리카락의 흔들림으로 드러낸다. “무념무상의 세계를 얼굴에서 드러냈다면, 머리카락은 더 다양한 직관의 세계인 만다라의 세상을 표현하려 했어요.”

최근에는 변화도 모색했다. 개량 한복을 입은 당당한 소녀를 등장시켰다. 작품명 ‘달의 여인’이다. 대여한 한복을 입고 관광지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문화를 접하고 시작한 작업이다. 단아한 한복 뒤에 순종적인 삶을 강요받았던 조선시대 여인의 모습 대신, 개량 한복을 입은 당당하고 발랄한 현대의 소녀를 그렸다. 이야기를 절제했던 전작들에 비해 다양한 이야기도 자박거린다. “디지털 시대에 그 옛날 아날로그 시대를 상상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가 소녀에게 개량 한복을 입히고 이야기에 적극적인 이유다.

신작에서 “달에 사는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는 전설을 차용한 것은 그 옛날 선조들의 자연 존중적인 태도에 대한 수용이다. 소녀와 함께 전설 속 토끼나 구름 등의 조연들을 등장시키면서 화면의 상상력은 사뭇 커졌다. 구름이나 토끼가 당차면서도 해학적인 소녀와 어우러지며 생기를 더한다. “조상들이 구름이나 토끼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긴 것처럼 저 역시 그들처럼 그림에 행운의 아우라를 들여놓고 싶었어요.” 최애리의 ‘달의 여인’전은 16일까지 갤러리 DO’NO(대구 수성구 청수로 12-12)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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