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결핍이 필요하다
[의료칼럼] 결핍이 필요하다
  • 승인 2022.09.1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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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수 대구시의사회 재무이사 임연수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경우 두부, 계란, 김, 햄만 먹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부드러운 음식만 먹고 야채는 아예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서인데 원래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는 건 맛있어서가 아니라 자꾸 먹다 보니 익숙해져서 맛있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편식이 많아진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워낙 다양한 음식들이 많아서 골라 먹어서일 수도 있겠고 아주 어린 유아의 경우 액체 분유에서 고체로 넘어가는 이행기 즉 이유식 시기에 씹는 연습이 안되어서다. 덩어리 음식을 뱉어내면 다음으로 미루고, 또 아이 입장에서는 안 먹던 음식이다 보니 계속 적응이 안되고 엄마는 ‘그럼 이거 분유라도 먹어’를 반복하면 새로운 음식을 접할 기회가 없어진다. 계모는 끼니 때가 되어도 밥을 안 차려주지만 엄마는 밥을 차려주었는데 아이가 안 먹은 것이다. 밥을 안 먹으면 본인이 배가 고프고 아쉬워야 하는데 엄마가 더 속상하고 맘이 아프다. 아이 입장에서 아쉬운 적이 없다 보니 개선의 의지도 없어진 것이다.

아주 어린 아기의 경우 아이가 울면 당장 달려가서 안아서 달래기보다는 일단 아이 눈앞에 나타나 안심을 시켜주는 반응을 보이고(첫 번째가 시각 자극) 말로 달래고(청각 자극) 쪽쪽이등을 주어(촉각 자극)보고 그래도 안되면 안아서 달래는 방식을 사용해 보라고 권한다. 최소한의 자극으로 자신의 감정을 달래보는 연습이 필요해서이다. 안아주면 가장 쉽게 달래지겠지만 처음부터 안아서 달래는 버릇을 들이면 다음부터는 안아주는 것 이상의 자극이 필요하고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할 수 있다. 반응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반응은 즉각 해주되 스스로의 능력을 키워보는 연습을 시켜보라는 말이다. 2개월 때 수면 교육을 시작한다. 등을 바닥에 붙이고 스스로 자는 연습을 처음부터 해서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힘들 때, 스트레스로 잠이 안 올 때 스스로 자는 연습이 된 아이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즉, 안겨서 젖병을 물고 잤던 아이들의 차이가 분명히 나타난다. 아이가 우는데 어떻해요 라고 물어보는 엄마가 많은데, 10개월을 엄마 배에 매달려서 살았던 아이니까 당연히 안아주면 좋고 구강기라 입이 만족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나이라서 그렇지만 조금씩 이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알려주라고 한다. 늦게 하면 좋을 거 같지만 처음부터 길을 잘 들어서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려면 왔던 길을 다시 가야 해서 시간도 노력도 더 많이 들 수 있다. 첫 단추가 중요하듯이 처음이 중요하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외할머니 동생과 같이 살게 된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엄마는 자신의 잘못으로 아이가 입을 상처를 염려해, 해달라는 것은 웬만하면 해주려 하였고 할머니도 중학교 때까지 밥도 먹여주다시피 키운 아이가 있었다. 신상 스마트폰도 사주고 컴퓨터 게임도 좋아하니까 새 컴퓨터로 바꿔주었는데 그 요구가 날이 갈수록 커져 전자기기 사양도 업그레이드가 되어 엄마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고, 아이는 예전에는 사주다가 왜 안되냐며 폭력을 쓰는 사태에까지 이른 경우가 있었다. 할머니를 볼 때마다 할머니 조금 아쉽게 키우세요 배고프면 지가 찾아먹게 놔 두세요를 주문처럼 외웠지만 그때는 안 듣다가 일이 커지고 나서 진작에 들을 걸 그랬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아쉬워 봐야 우물도 스스로 파고 아쉬워 봐야 얻고 나서 고마운 것도 알 수 있는데 요새는 웬만하면 다 들어주는 경우가 많아서 스스로 개선의 의지가 없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거 좋은 거에 자꾸 욕심이 생기고 자꾸 주변과 비교만 하는 경우가 늘 수밖에 없어진다.

스스로 하는 연습도 어릴 때부터 몸에 붙어 있어야 나중에 커서도 내 옷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무엇이든 스스로 해 보게 된다. 엄마가 다 해준 아이들이 무슨 일만 생기면 “엄마”를 외치는 이유를 생각해 보고 약간의 결핍이 필요한 때임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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