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선 ‘플랜(PLAN)75’가 화제이다. 올해 칸영화제 수상작인데 설정이 섬뜩하다. ‘플랜75’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 SNS를 통해 우리 사회와 노인들 간에서도 많이 회자 되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저출산 고령화가 한층 진행된 가까운 장래의 일본에서 만75세부터 생사의 선택권을 주는 제도인 ‘플랜75’가 국회를 통과한다. 후속적으로 공무원들은 노인들에게 죽음을 권장하는 역할을 하고,‘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 좋다’는 공익 광고도 나온다. 죽음을 국가에 신청하면 국가가 이를 시행해 주는 ‘플랜75’라는 이름의 제도에 대해서 처음엔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일본 사회는 차츰 이를 받아들인다. 나아가 정부는 ‘플랜75’가 호조를 보이면 ‘플랜65’도 검토할 예정이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이런 사회를 방치하면 다음 순번은 ‘당신’이 될 것이란 경고를 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또한 영화에서는 “일본의 미래를 위해 노인들은 사라져야 한다. 일본은 원래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라 아닌가” 하는 끔찍한 주장들도 나온다.
이러한 ‘플랜75’의 이야기는 일본에서나 나올 법한 상상력일까? 도대체 이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일본은 역사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회가 자의든 타의든 걸러내는 독특한 사회적 시스템을 갖고 있다. 영화와 유사한 주장과 이야기는 일본 고대 설화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의 어떤 번국의 번주는 전쟁이 오래갈 것임을 직감하고 무사들의 식량을 비축하기로 결정한다. 그 방법으로 ‘60세가 넘는 노인이 집에 거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포고령을 내린다. 가족들은 노인을 산속에 버려야 했다. 그 후 사람들은 늙은 부모를 산에 내다 버린 그 산을 ‘우바스테야마’라 불렀다” 바로 이 ‘노인유기설화’의 풍속을 다룬 영화가 이마무라 쇼헤이의 1983년 작 ‘나라야마 부시코’이다. 이 두 영화의 역사의 시간은 달라도 노인 학대의 정서가 묘하게 연결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플랜75’의 일본 사회 배경의 정확한 연도는 드러나지 않지만, 단카이 세대가 75세로 진입하는 3년 후인 2025년을 암시하고 있다. 일본은 2025년이 되면 인구 5명 중 1명이 75세의 후기고령자가 되는 초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의료비와 사회보장비 부담의 폭증이 예상되고, 부족한 노동력은 더욱 감소해 경제가 활력을 잃게 되고, 노인으로 가득한 일본은 활기와 매력을 잃은 나라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깔려있다. ‘플랜75’는 일본 사회가 ‘2025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던지는 상상의 극약 처방전이라 봐야 할까? 영화에는 일본 초고령화 사회의 암울함 속에서도 늦었지만 이를 미리 진단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길 바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일본 고령화율은 2020년 기준 29.1%, 2030년이 되면 10명 중 3명이 65세 이상이 되고, 2045년에는 37.0%에 이르게 된다. 노후난민, 구매난민, 간병지옥·살인, 고독사, 노후파산, 하류노인 등의 용어는 모두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한편, 우리나라 고령화율과 상황은 더 심각하고 만만치 않다. 2022년 2월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894만 명으로 전국대비 17.3%이다. 특히 2025년에는 고령화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되고, 2045년에는 37%가 되고, 2065년까지 계속 증가해 42.5%까지 증가함으로써 일본의 최단기간, 최대속도의 고령화 기록을 깰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한국은 브레이크 없이 초고령사회로 달려가고 있는 현실적 상황을 막을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모든 일에는 전조와 축적의 세월이 있다. 현재 일본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인 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복사판처럼 재현되고 있으며 향후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는 ‘플랜75’의 사회를 방치할 것인가? 결코 ‘플랜75’의 국가나 국민이 되어서도,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거나 방임하거나, 걸러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축적되어 서도 안될 것이다. ‘플랜75’와 같은 상황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초고령사회 문제에 직면해야 하는 시급함과 절박함을 가져야 한다. 그 시급함·절박함의 답은, 인간의 존엄함과 노년의 삶이 존중되고,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는‘성숙한 공동체 의식과 문화’만이 ‘플랜75’라는 야만의 상상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여 대응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플랜75’의 이야기는 일본에서나 나올 법한 상상력일까? 도대체 이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일본은 역사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회가 자의든 타의든 걸러내는 독특한 사회적 시스템을 갖고 있다. 영화와 유사한 주장과 이야기는 일본 고대 설화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의 어떤 번국의 번주는 전쟁이 오래갈 것임을 직감하고 무사들의 식량을 비축하기로 결정한다. 그 방법으로 ‘60세가 넘는 노인이 집에 거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포고령을 내린다. 가족들은 노인을 산속에 버려야 했다. 그 후 사람들은 늙은 부모를 산에 내다 버린 그 산을 ‘우바스테야마’라 불렀다” 바로 이 ‘노인유기설화’의 풍속을 다룬 영화가 이마무라 쇼헤이의 1983년 작 ‘나라야마 부시코’이다. 이 두 영화의 역사의 시간은 달라도 노인 학대의 정서가 묘하게 연결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플랜75’의 일본 사회 배경의 정확한 연도는 드러나지 않지만, 단카이 세대가 75세로 진입하는 3년 후인 2025년을 암시하고 있다. 일본은 2025년이 되면 인구 5명 중 1명이 75세의 후기고령자가 되는 초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의료비와 사회보장비 부담의 폭증이 예상되고, 부족한 노동력은 더욱 감소해 경제가 활력을 잃게 되고, 노인으로 가득한 일본은 활기와 매력을 잃은 나라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깔려있다. ‘플랜75’는 일본 사회가 ‘2025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던지는 상상의 극약 처방전이라 봐야 할까? 영화에는 일본 초고령화 사회의 암울함 속에서도 늦었지만 이를 미리 진단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길 바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일본 고령화율은 2020년 기준 29.1%, 2030년이 되면 10명 중 3명이 65세 이상이 되고, 2045년에는 37.0%에 이르게 된다. 노후난민, 구매난민, 간병지옥·살인, 고독사, 노후파산, 하류노인 등의 용어는 모두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한편, 우리나라 고령화율과 상황은 더 심각하고 만만치 않다. 2022년 2월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894만 명으로 전국대비 17.3%이다. 특히 2025년에는 고령화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되고, 2045년에는 37%가 되고, 2065년까지 계속 증가해 42.5%까지 증가함으로써 일본의 최단기간, 최대속도의 고령화 기록을 깰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한국은 브레이크 없이 초고령사회로 달려가고 있는 현실적 상황을 막을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모든 일에는 전조와 축적의 세월이 있다. 현재 일본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인 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복사판처럼 재현되고 있으며 향후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는 ‘플랜75’의 사회를 방치할 것인가? 결코 ‘플랜75’의 국가나 국민이 되어서도,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거나 방임하거나, 걸러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축적되어 서도 안될 것이다. ‘플랜75’와 같은 상황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초고령사회 문제에 직면해야 하는 시급함과 절박함을 가져야 한다. 그 시급함·절박함의 답은, 인간의 존엄함과 노년의 삶이 존중되고,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는‘성숙한 공동체 의식과 문화’만이 ‘플랜75’라는 야만의 상상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여 대응해나가야 한다.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