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짐 내리고 남루를 뉘는 저녁
숭숭 구멍 뚫려 찬바람 나들던 속내
어머니
다 읽으시고 촛불 밝혀 두셨습니까
어둠의 이마를 짚고
외시는 저 천수경
밴댕이 속 이 고삐, 그 품에 풀어놓습니다
흰 새벽
등대로 서신
어머니의 바다에
때 절은 손과 발
가시 박힌 눈자위도
하늘 못에 헹구어 또 아침을 여시겠지요
어머니
날개깃 접고 내일을 기다릴게요
새날이 밝아오고 다시 천길 쑥구렁
멀어진 길 위에서 내 발걸음 뒤틀려도
언제나
날 맞아
손잡아 주실
당신이잖아요 어머니
◇곽홍란= <조선일보 신춘문예>,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동시집 『글쎄, 그게 뭘까』, 시집『직선을 버린다』,『환승역, 고흐』, 소리시집『내 영혼의 보석상자』등. 아카리더, 형상시학, 노을강시학 동인
<해설>
원래 삶은 단순하지만, 인간이 복잡하게 만든다. 모든 것은 단순한 게 늘 옳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옳고 그름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자유 의지)을 주었다. 하늘이 창조한 물건은 모가 난 것이 없다.
마음속에 쓰지 못한 글자와 허공의 소리 없는 글들이 날마다 몇 권의 책이 되지만, 근사한 생각은 하룻밤만 자고 나면 싹 바뀐다. 그 말의 대부분은 근거가 없어도 이치는 붙어 있었다. 절정보다 더 아름다운 건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일 수도 있다.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우리는 살아가는 동력을 얻는다.
생각을 넘어설 수는 없어 누구든 자신의 생각 속에 갇혀있다. 사람의 크기는 생각의 크기이다. 자기긍정은 도덕의 문제를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삶을 설정하는 조건이다.​미치면 이기고 지치면 진다. 지독하게 중독되어 고독하게 길을 가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기회가 온다. 내 것이 아니면 버리고 가질 수 없으면 잊어야 한다.
힘은 언제나 자기 안에 있다. 그래서 '힘내라'고 하지 '내 힘 받아라'하지 않는다. 웃어라. 온 세상에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고요히 침묵의 자신과 얼굴을 마주하면, 이 고요와 넘치는 환희 속에서 생명의 찬가로 지속되는 평안을 느낄 수 있다.
-성군경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