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종람시속(縱覽時俗)
[목요칼럼] 종람시속(縱覽時俗)
  • 승인 2022.09.2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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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형 객원논설위원 행정학 박사

민족 최대 명절중의 하나인 추석이 지난지도 10여일이 지났다. 이번 추석의 최대 화두는 아마 '차례상 차리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가운데 유학의 본산이라고 하는 성균관의 의례정립위원회가 전통명절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차례 상 표준화 방안'을 발표한 것은 명절마다 가족 간에 불화의 원인이 되는 의례(儀禮)에 한 획을 긋는 발표였다.

그동안 대부분의 가정에서 추석과 설날 등 명절의 차례상과 조상이 돌아가신날 지내는 제사상 차림을 구분하지 않고, 설 차례에 뫼(밥)대신 떡국을 올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똑같은 기준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사노동의 분담과 음식의 가짓수와 배치 등에서 논란이 일어났고, 심한 경우 소위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가정불화가 발생하여 이혼율이 증가하는 등 반갑고 즐거워야 할 명절이 지겹고 두려운 명절이 되는 등의 현실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계기삼아 '제례문화 바로알기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성균관에서 발표한 '차례상 표준화 방안'은 차례와 관련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의례 전문가의 협의를 거쳐 마련되었다고 한다. 즉 만 20세 이상 국민과 유림 관계자를 구분하여 차례의 개선점, 차례를 지낼 때 모시는 조상의 범위, 차례 음식의 가짓수, 차례준비에 소요되는 적정 비용, 차례에 참석하는 기준 등에 대한 인식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의례전문가와 협의를 거쳐 제시한 것이다. 비록 늦어지만 매우 시의적절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동안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하는 추석과 설을 맞이하게 되면 도시화의 바람으로 수도권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한 아름의 선물을 들고 고향을 찾아 국민 대이동이 일어나고, 고속도로에서는 차량의 정체로 하염없이 차량 안에서 기다리는 고통도 고향을 찾아간다는 즐거움에 기꺼이 감수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나 명절이 끝나고 나면 사회 곳곳에서 고향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가정불화가 생겨나 명절증후군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명절증후군은 과도한 가사 노동과 스트레스로 어지럼증, 두통, 식욕부진, 소화불량, 피로감 등 신체적 증상이나 짜증, 우울, 불안, 무기력, 집중력 저하 등 정신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차례나 제례 문화에 대한 시대의 변화에 맞는 표준안이 제시되었다는 점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이 반갑고 즐겁지 아니하고, 지겹고 두려운 명절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차례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역할분담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음식 장을 보는 것부터 장만하고 뒤처리까지 모두 여성에게 집중되고, 남성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나 지인들과 담소나 나누면서 뒷짐을 지고 있었던 것이 아마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한다. 이런 현상을 가정의 경제를 모두 남성이 책임지고 있던 시절의 여성들은 숙명처럼 받아들였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남성들과 똑같이 교육을 받고 맞벌이를 통해 가정경제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시대의 여성들에게는 너무나 불평등한 것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지난 70년대 이후 정부의 강력한 가족계획정책으로 형제자매가 없는 여성들에게서는 명절날 홀로 지내는 부모님을 생각할 때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해될 수 없는 일이고, 이런 불만이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삭이게 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명절증후군이다.

사실 필자의 짧은 견문으로는 60년대만 하여도 차례나 제사를 위해 장을 보거나 제상에 올릴 밤을 깎는 것은 남성들의 몫이었고, 여성의 역할은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오늘날과 같이 차례나 제사준비 모두 여성에게 일임한 것이 아니라 남녀가 함께 준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것이 70년대 이후 우리의 삶이 풍족짐과 동시에 모두 여성의 몫으로 변하였고, 차례나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의 가짓수도 많아졌으며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노동 강도도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종람시속(縱覽時俗)이라 모든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풍속도 변해가야 한다. 그 현상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자식들의 장거리 이동이 불편하다며 역귀성하는 부모들이 증가하였고, 4대 봉사한다고 일 년에 10번 가까이 제사를 모시던 것을 한 번에 합쳐서 지내며, 한 자녀인 부모들을 위해 추석과 설날에는 시댁과 친정을 번갈아 방문할 뿐만 아니라 차례상과 제사상 준비를 전문업체에 위탁하거나 부부가 함께하는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풍속과는 많이 변하고 있다.

유교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조선초기의 예법과 후기의 예법이 다르듯이 모든 예법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도 "차례나 제사는 조상을 사모하는 후손들의 정성이 담긴 의식으로서 이로 인해 고통 받거나 가족 사이의 불화가 초래된다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고 강조한 바와 같이 그동안 명절 때만 되면 가족 간 불화의 원인이 되곤 했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제례 문화를 개선하는 방향을 제시한 성균관의 표준안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따라서 이번 성균관의 표준안을 계기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자의 형편에 따라 오늘의 자신들이 있게 만든 조상을 기리는 정신만은 변함없이 간직하면서, 그 형식이나 절차는 변화시켜 가족들이 화합하고 즐겁고 기다려지는 새로운 차례나 제례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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