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위로’와 ‘응원’의 힘
[치유의 인문학] ‘위로’와 ‘응원’의 힘
  • 승인 2022.09.2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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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상담 선생님입니까? 제발 저 좀 살려 주이소~!”/ “우찌 살아야 할지 도저히 답이 없심더~!”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 5시. 밤을 꼬박 새운 상담사에게 새벽닭이 울 때쯤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힘겨운 상대다. 하지만 정신이 번쩍 드는 첫 마디에 위험을 직감하고 자세를 바로 했다. 새벽 전화는 긴급을 요하는 사연들이 많았던 몸의 경험치 때문이다.

“많이 힘드시죠? 지금 어떤 상황인지 천천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죽고 싶어요! 너무 답답해서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는 겁니다.”

2020년 2월 18일 신천지 대구교회 관련 코로나 19 확진자가 처음 발견된 뒤 한 달 만에 대구·경북 지역의 확진자가 8,000명으로 불어났다. 심각한 우울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을 위해 대구가톨릭대학병원에 급히 통합심리지원단이 꾸려졌다. 새벽의 전화는 지원단으로 자청해서 간 바로 그곳에서 받은 전화였다.

전화기 너머로 술 내음이 진하게 풍겼다. 혀가 꼬여 횡설수설하는 가운데에서도 삶의 고단함은 선명하게 읽혔다. 투박하면서 직설적인 화법은 순수하지만 한계에 도달한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특이한 언어적 형태다. 코로나로 일하던 곳에서 나오게 되었고 현재 원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오빠가 같은 원룸에 거주하고 있고 자신이 삼시세끼를 챙기고는 있는데 너무 힘들고 지쳤다는 뭉크 같은 절규.

긴급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간단한 소재파악을 하고 바로 상담에 들어갔다. 짧은 전화 대화만으로 내담자의 장점과 강점을 신속히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내담자를 안심시킬 피드백까지 주어야 한다. 짧으면 10분 길어도 30분을 넘기면 안 된다. 너무 시간이 길어지면 기다리는 동안 다른 생명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생존의 이유’를 찾아 드리는 미션은 고도의 집중이 요구된다.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내담자의 호흡 소리는 물론이고 거칠게 내뱉는 언어들의 상징까지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이롭게 하고 나아가 생명까지 구할 수 있음은 분명 신이 허락한 가장 신성한 일이다. 구원을 간청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드리는 행위가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알기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 생각을 부드럽게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공감’과 ‘이해’다.

부정 생각을 긍정으로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감사’와 ‘희망’이다.

“아까 50대 후반이라고 하셨는데 농담이시죠? 제가 듣기로는 분명 40대 중반 같은데요?”/ “50대 후반 맞아요. 내년에 딱 60됩니다.”/ “우리 선생님은 목소리에 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치유의 목소리를 가졌어요. 우리는 이런 목소리를 천상의 보이스라고 하거든요.”

좋은 목소리와 에너지를 가졌다는 내 칭찬에 내담자는 한껏 고무되었다. 방금 전까지 죽겠다고 울고불고한 사람이 맞나 생각이 들 정도로 활력이 넘쳤다. 한때 꽃집을 운영했고 장사도 꽤 되었단다. 물론 실패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리고 최근까지 단 한 번도 누구에게 긍정의 지지를 받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낮은 자존감, 보이지 않는 미래. 술김에 전화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 전화했는데 너무 너무 위로가 된다며 한동안 전화를 끊지 않았다. 마음 근육이 반짝반짝 빛나는 게 보였다. 살겠구나!

극단적 생각을 부드럽게 풀어드리고 부정 생각을 긍정마인드로 바꾸는 일은 많은 돈도 시간도 들지 않는다. 그분이 내는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며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행복한 유머와 응원을 보내주면 되는 일이었다. 외로움! 어쩌면 그분은 그날 새벽 미치도록 사람 향기를 맡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미치도록 누군가에게 위로와 응원을 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괜찮다! 괜찮다! 내 니 마음 다 안다”

심중 깊은 외할머니가 삶에 힘들어하는 손녀의 어깨를 도닥이며 함께 눈물 흘리며 건네는 이 한마디가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마음의 근육은 응원과 지지를 먹고 성장한다. 힘들고 외로운 시절이다. 날카롭고 가시 돋친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만큼은 응원과 위로를 아끼지 말자. 돈 안 든다.

울며 걸려온 전화를 웃으며 끊었다.

그날 나는 내가 가진 ‘위로’와 ‘응원’의 힘으로 한 생명을 구했다. 한 생명이 가진 우주를 구했다. 가슴 벅찬 그 날의 기억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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