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호 작가 展, 갤러리 PAL…수묵 개념 재정립 위해 ‘리퀴드 드로잉’ 실천
신영호 작가 展, 갤러리 PAL…수묵 개념 재정립 위해 ‘리퀴드 드로잉’ 실천
  • 황인옥
  • 승인 2022.09.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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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물감·드로잉은 표현’ 접근
“동양미술 전 세계인 공감 필요
수묵화도 현대미술서 정의를”
신영호작가-리퀴드드로잉
신영호 작가의 개인전인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전경.
신영호작-purple
신영호 작 ‘purple’

인류가 사용한 미술 재료 중에서 먹(墨)의 역사를 따를 안료가 있을까? 먹(墨)은 자그마치 3,0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먹은 동양에서 표현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였으며, 동양 정신성의 정수였다. 자연의 본질에 대한 사유나 세상을 바라보는 사의(寫意)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가장 주요한 재료로 먹이 위치한다.

먹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신영호 작가는 먹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먹으로 표현한 자신의 그림을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으로 명명(命名)하며, 먹을 물감이나 연필, 펜과 동등한 하나의 표현 재료로 인식한다. 이를 통해 수묵에 배어있는 전통적인 관념을 해체한다.

그는 “‘수묵을 21세기의 우리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는 이 시대 한국미술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라고 인식한다. 시대의 변화는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가기 때문에 전통 수묵도 현시대의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라며 예술가보다는 학자같은 태도로 수묵에 접근했다. 그는 작품활동과 함께 경북대 미술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신영호의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 연작 20여점이 갤러리 PAL에 걸렸다. 수묵과 담채로 ‘드로잉’한 작품들이다. 달항아리나 탑, 식물의 줄기, 기운을 연상하는 선(線) 등의 형상들은 그야말로 현대적인 드로잉이다. 이들 기물이나 자연물에 인장에 글씨를 새겨 찍는 방식으로 글씨나 또 다른 형상을 새겨 찍기도 하며 드로잉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그의 화면에서 그 어떤 수묵화의 경직된 방법론이나 구속력은 찾을 수 없다.

수묵을 기반으로 하지만 표현방식에서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작가 특유의 문제의식에 있다. 형상에 숨겨진 의미보다 단순한 표현 기법 중의 하나로 드로잉을 시도하지만, 그 이면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의도가 숨겨져 있다. 그는 수묵화의 해체라는 과제를 ‘드로잉’이라는 회화의 표현 양식 중의 하나로 상징화한다. 먹은 물감, 드로잉은 표현 방식으로 접근한 것.

“‘어떻게 유구한 역사에 의해 권위를 획득한 수묵을 드로잉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있는 그런 고정관념을 끌어내리고 싶은 것”이 그의 의도였다. 이른바 수묵이나 수묵화에 대한 개념의 재정립이었다.

문제의식은 선(線)을 통해 가시화된다. 그의 선은 전통회화의 해체에 관여한 드로잉의 일종으로만 기능한다. 동양의 정신성과 그 어떤 지점으로도 묶이지 않는다. 선을 통해 전통수묵이 가지는 완고한 틀을 깨고 싶어하는 의지의 반영이다. 그것이 먹을 통한 선의 해체로 드러난 것. “논란에 불씨를 지피는 작업일 수 있지만 이제는 수묵이나 수묵화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저의 작품이 그런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동양에서는 여전히 수묵화에서 격조를 경험한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굳어진 뿌리 깊은 인식에 의한 경험이다. 하지만 동양을 벗어나 현대미술의 범주로 범위를 넓혔을 때, 동양적인 인식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신 작가의 문제의식은 수묵의 확장성과 관련된다. 이제는 동양미술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이라는 경계로부터 자유로워 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가 “동양문화 밖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수묵화는 흑백화”일 뿐이라며 “수묵화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차이가 그 역사의 차이가 다르므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근대한국에서 수묵의 정신성에 대한 많은 담론이 존재했지만 보편적인 공감은 확보하지 못한 것 같아요. 이제는 수묵화도 현대미술이라는 큰 틀에서 정의되어야 하고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지속적으로 살아 있는 미술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체를 통한 개념 재정립을 목적으로 하지만, 그는 항상 고전에서 답을 찾으려는 태도를 취해왔다. 수묵화의 모필(毛筆)을 여전히 사용하는 것도 그의 그림이 수묵이라는 토대 위에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전통수묵화가 추구하는 거창한 관념과는 거리를 둔다. 단지 쓴다는 표현 방식 중의 하나로만 접근한다. 여기에는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서예와 회화 비교 연구’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의 이력이 배어있다.

“서예를 전공한 저의 이력을 발휘하여 그린다기보다 쓴다는 개념으로 기운을 모아 드로잉을 했어요. 이것이 저의 정체성이 배어있는 드로잉이죠.”

수묵이나 수묵화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그의 위치에서 더욱 절박하다. 그가 제자들에게 수묵화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는 수묵이 ‘고립’에서 ‘보편’으로 나아가기 위해 ‘비판’과 ‘수용’의 문제 이전에 개념정립부터 전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실천이 리퀴드 드로잉이었다.

“동시대적 개념을 정의하고 공유하는 것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이고, 동시대와 호흡하는 출발선이 될 것입니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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