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선인들, 태양을 향한 간절한 마음 담아 암각화 새겨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선인들, 태양을 향한 간절한 마음 담아 암각화 새겨
  • 김종현
  • 승인 2022.09.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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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달구벌 선인들은 동짓날 뭘 했을까?
동식물로부터 액막이 위해 팥죽 먹어
산꼭대기 큰 바위에다가 ‘해 묶기’ 제전
서양서도 햇돌 모시는 백석사상 존재
카자흐스탄 등지서도 백석문화 남아
종택·서원서 사당에 동지차례 올려
삼두취부적은 ‘열린 생각하자’는 의미
국가조정, 대신들에 동지책력 하사
기업체서도 유명 탤런트 ‘달력마케팅’
서양의 쌍두취가 우리나라에서는 삼두취 즉 해동청이다. 그림 이대영
서양의 쌍두취가 우리나라에서는 삼두취 즉 해동청이다. 그림 이대영

 

◇채종등유·동지팥죽 등 다양한 동짓날 맞이

어릴 때 시골 두메산촌 어머님께서는 동짓날을 위해서 평소에 많은 준비를 했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면 Ⅰ) 동짓날 온 집안을 밝히기 위해 예쁜 꽃(유채꽃, 달맞이꽃, 제비꽃, 맨드라미꽃, 모감주꽃 등)의 씨앗을 모았다가 기름을 짜서 등불을 밝히는 채종등유(菜種燈油), Ⅱ) 지난 한해 모든 액땜과 새해액막이를 위해 동지팥죽거리(冬至豆粥), Ⅲ) 안방의 삼신할머니, 앞마루의 성주대감, 부엌의 조왕신, 쇠마구간의 축신 등에게 꽃씨기름 등불(花種油燈)을 밝히면서 드릴 먹거리 제물, Ⅳ) 동네 웃어른들이 두고 잡수실 건어물과 마른 과실 같은 동지하례예물, Ⅴ) 풍년 기원의 동지마당 윷놀이를 위해 싸리나무윷가락(矢柶)과 윷판을 마련했다. 한편, 할아버지께서는 동짓날에 꼭 두 가지를 했다.

하나는 자식들에게 조선시대 벼슬명칭을 적어 못 배운 원함을 그린 승경도(陞卿圖) 놀이판을 그려서 친구들과 윷가락으로 벼슬 따먹기 놀이(陞卿戱)를 했다. 다른 하나는 가장 긴요한 겨울채비인 문을 바르고, 남은 자투리 창호지를 맞붙여 희미하게 간 먹물로 81(9×9)개의 매화꽃 밑그림(watermark, 일명 九九消寒圖)을 그렸다. 엄동설한에 추위와 배 고품을 잊고자 꼭 손자의 손목을 잡고 매화꽃 하나씩 붉은색으로 입혔다. 이렇게 사랑채 벽에 붙어 있는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에 매화가 만발하면 창밖 뜰에서도 매화는 화창하게 피었다.

그런데, 선사시대 달구벌에 살았던 선인들은 무엇을 했을까? 맹수나 맹독을 가진 동식물로부터 액막이를 위해 팥죽을 끓어 먹었으며(冬至時食), 쥐구멍에도 볕드는 날의 고도가 낮은 따사로운 햇볕에 아쉬움을 기념하기 위해 높은 산꼭대기 큰 바위에다가 해 묶기(縛日, Tying sun to rock)제전을 갖기도 했다. 신석기시대부터 신라초기까지 달구벌에선 팔공산, 비슬산 등지에서 박일제전(縛日祭典)을 했다. 현존하는 박일유적(縛日遺蹟)으로는 페루 마추픽추 태양신전의 ‘인티 우아타나(Inti Huatana)’라는 바위가 있다.

신천변 구릉지에 살았던 선인들은 태양이 잘 보이는 곳에 있는 바위에 태양(紫微垣)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깊게 여러 개(2~10)의 동그라미로 암각화를 그려 새겼다(劃日祭典). 나중에는 사천성 강족(羌族)의 전통으로 이어오는 것인데 햇살이 반사하는 흰색 돌을 ‘햇돌(白日石)’이라고 하여 동네어귀 혹은 지붕 위에다 모셨다(創日祭典).

물론 요한계시록을 보면, 서양에서도 햇돌을 모시는 백석사상(白石思想)이 있었다. 즉 “이기는 그에게 내가 감추었던 만나(manna)를 주고, 또한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할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사천성 강족의 전통문화 혹은 천산산맥 주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도 백석문화가 아직도 남아있다. 우리나라는 백두산과 백석대학, 흰돌 마을(白石洞), 흰바위(白巖), 흰 돌(素石)등 명칭이 지명(地名)과 인명(人名)에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산명으로는 네팔의 히말라야산(白頭山, Himalayas), 일본 대마도의 시라다케(白岳, 對馬島), 우리나라 백두산(白頭山, 일명 長白山) 등이 있다.

동짓날 할머니께서는 붉은 팥주머니(赤豆囊)를 만들어 동서남북 나뭇가지에 가족 수만큼 액막이걸이를 했다. 고대기록을 보면 제천제조(祭天祭祖)의 행사도 있었다. 현재도 지구촌 북반구의 일반적인 현상인데 동지해돋이 방향(冬至日出向)으로 안치된 문화유적들이 대부분이다. 토함산석굴암의 본존불도 팔공산 관암석불도 동지 일출방향과 같다. 동서양 고대신앙유물(유적)의 대부분은 동지일출향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북반구에 있는 그리스, 이탈리아신전과 동양사찰에서도 이런 현상을 흔히 볼 수 있다.



◇독수리가 나쁜 새를 잡아먹듯 ‘쌍두취 깃발아래’

동지에 대한 고문헌을 살펴보면 당나라 두보의 ‘작은 동지날(小至)’라는 시에선 “동짓날에 태양이 되살아나서 봄이 또한 온다지(冬至陽生春又來).”라고 노래했고, 송나라 원숙(袁淑)의 ‘동짓날을 읊으며’라는 시에선 “이어진 별자린 태초부터 이어졌으니, 아름다운 동짓날 해 머리를 맞게 되었다네(連星貫初曆, 永月臨首歲).”라고 적고 있다.

조선시대 문인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이 쓴 양곡집(陽谷集)에 나오는 ‘동짓날 밤에 내리는 눈(冬至夜雪)’에서 “동지가 드는 한밤중 자정, 한 자나 깊이 눈 내려 쌓였다네. 만물을 회생시키는 봄기운이 넘쳐 나네(冬至子之半, 雪花盈尺深, 津津回物意).” 이 시 구절이 송나라의 소옹(邵雍, 宋國人, 1012~1077)의 ‘동지음(冬至吟)’ “동짓날 자정, 천심은 변함없는데. 일양이 막 일어나고, 만물이 아직 소생하기 이전(冬至子之半, 天心無改移, 一陽初起處, 萬物未生時).”과 흡사하다.

이외에도 잡다한 세시풍속을 살펴보면, Ⅰ) 동지첨치(冬至添齒)라고 동지팥죽으로 나이를 먹는다. Ⅱ) 일반백성들은 동지고사로, 팥죽을 집안팎으로 뿌렸으며, 신이 있는 곳마다 기름불을 밝혀 액막이 고사를 지냈다. 또한 종택 혹은 서원 등에선 사당에다가 동지차례를 올렸다. Ⅲ) 동지불공은 팥죽공양물로 새해 발원을 드린다. Ⅳ) 국가에서는 동지하례를 위해 중국에 사신을 보냈다. Ⅴ) 동지헌말(冬至獻襪)은 며느리들이 시부모님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면서 버선(洋襪)을 만들어 드리는 풍습이 있었다. Ⅵ) 동지부적은 독성이 강력한 황화수은(HgS)인 경면주사(鏡面朱砂)로 삼재부적인 3두 1족의 송골매를 그려서 기둥(벽) 혹은 문설주 등에 붙여 액막이를 했다. 뱀에 물림(蛇吻)을 막고자 뱀 사자(蛇)를 써서 거꾸로 붙여 뱀이 숨막혀 죽도록 했다. 독수리가 새를 잡아먹듯이 벽사동물로 독수리를 사용했다. 과거 로마, 오스트리아, 제정러시아 및 미국 등 서양대제국들이 쌍두취(雙頭鷲, double-head eagle)깃발을 휘날리면서 몽쳤다. 1867년 요셉 프란츠 바그너(Josef Franz Wagner, 1856~1908)는 ‘쌍두취 깃발 아래(Under the Double Eagle)’ 행진곡을 작곡했으며, 오늘날 미군행진곡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불여튼튼으로 “교활한 토끼는 굴 3개를 판다(狡兎三堀).”등의 지혜를 활용했다. 신라 비단장수가 동방박사 3인으로 성경에 기록되었듯이 ‘세 사람이면 반드시 살 길이 있다(三人行必有我生)’고 믿었다.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는 세론을 형성하는데 ‘3명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三人成虎)’는 사회학적인 현상까지도 이용했다. 우리나라의 삼두취부적이 의미하는 건 “모든 가능성에 열린 생각을 하자.” 혹은 “남보다 더 많은 생각과 영리하게 대응하자.”로 해석이 된다.

한반도에서 살았던 송골매를 중국에선 해동청골, 줄여서 해청(海靑) 혹은 해동청(海東靑)이라고 했다. 삼국사기에 김후직(金后稷)은 지증왕에게 “개와 매를 풀어놓아, 토끼를 쫓도록 하고, 말을 몰아 산야를 달리는 것(放鷹犬, 逐雉兎, 奔馳山野)”을 경계하라고 충언한 기록이 나오고 있다. 고려 때 원나라에 세공했던 해동청골이 너무 영리해서 머리가 3개나 된다고 했다. 그래서 원나라에서 해동청을 삼두일족응(三頭一足鷹) 혹은 삼두일족조(三頭一足鳥)라고 했다. 경남유형문화재로 등록된 심원권(沈遠權, 1850~1933)의 64권의 농촌일기에서도 “세 머리와 한 다리의 송골매를 그렸다(作三頭一足鷹).”는 일기를 볼 수 있다. 어릴 때는 한자음은 모르고 ‘삼두매’라고 했다. 오늘날 진돗개가 너무 영리해 맹인안내견으로는 인기가 만점이다. 그러나 2011년 LA경찰청에 경찰견으로 훈련시키다가 지시에 따르기보다 스스로 종합적으로 판단하기에 곧 바로 중단했다.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과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돗개를 옛날 표현으로 하자면 ‘삼두견(三頭犬)’이다.

동짓날 이야기를 이어가면, 국가조정에서는 대신들에게 동지책력(冬至冊曆)을 하사했다. 1990년대까지 지역출신 국회의원들은 유권자들에게 1장짜리 정치연력(政治年曆)을 배송했다. 상호금고(농협, 은행, 새마을금고 등)에서도 홍보용 금융달력, 기업체에서는 목돈을 들여 유명배우 혹은 탤런트를 모델로 촬영한 12장짜리 탤런트달력(talent calendar)을 매체로 아직까지도 달력마케팅(Calendar Marketing)을 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높은 달력은 주류업체가 발행하는 섹시한 여성)의 야한 모습으로 술(맛) 당기게 하는 달력이었다. 1990년 이전 고교 남학생들은 책상머리에 핀업걸 달력(pin-up girl calendar) 하나쯤은 붙이거나 책갈피속에 감춰갖고 다녔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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