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를 찾아서] 낮잠
[좋은시를 찾아서] 낮잠
  • 승인 2022.09.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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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조 시인

담장 위를 훌쩍 넘어온

꼭대기 간지러운 미루나무 그림자가

닭장 둥지 알 품듯 구름을 품어

저절로 낮달은 부풀어 올랐다

삽살개 귀 베고 눕자고 졸랐다

모녀 누운 대청마루에 와서

감나무에 붙은 매미 향해 드러내는 늙은 치아

살며시 손부채 내려놓은 나는

나무의 뿌리처럼 잠들 것이다

마당에 파놓은 작은 연못

늘어선 갈대 속에 눈감은 송사리들

통통한 아랫배 속에도 들어가 볼 것이다

낮달이 가끔 기웃거려 삐꺽거리는 봉창

제풀에 놀란 삽살개는 꼬리를 감추기도 했지만

사랑채 할아버지 목침 뒤집히는 소리는

용캐도 아는 것처럼

누구도 방해하지 않을 내 낮잠은

털갈이하는 삽살개

가려운 등도 살살 긁어 주리라

◇곽태조= 1933년 경북 선산 출생, <수필춘추>와 <문장>에서 수필과 시로 등단, 수필집 <그 때> 발간, 경상북도교육청 장학사, 장학관, 김천시교육장 역임, 현 대구문인협회 회원.

<해설> 한 편의 동화를 상상하는 듯한 그림이 그려진다. 낮잠 속에 송사리들의 통통한 아랫배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정도의 낮잠이라면 흔쾌히 나무의 뿌리처럼 깊이 잠들어도 좋으리라. 여유로운 한 낮의 기분 좋은 낮잠은 치열한 삶 속에서 가장 유쾌한 시간일 수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힘을 빼고 스르르 스며드는 나만의 가장 행복한 시간, 그것이 삽살개의 등을 긁을 수 있는 느긋함이 아닐까? 낮잠은 단순한 낮잠이 아닌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마음으로 가기 위한, 생의 무거움을 내려놓는 연습의 한 부분 일수도 있겠다.

-김인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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