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 대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결혼이야기] 대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 승인 2022.09.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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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리스토리 결혼 정보 회사 대표·교육학 박사
급변하는 산업화 시대에 외로운 현대인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군중 속의 고독이다. 인간들은 익명의 세계인 SNS에서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지지나 위로를 받고 팔로우 숫자를 확인하며 안도한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취미생활이나 쇼핑을 하고 때로는 먹방을 즐긴다. 특정가수의 덕후(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 말 '오타쿠(御宅)'의 한국식 발음 '오덕후'의 줄임말)가 되어 새로운 인맥을 형성하며 그곳에서 외로움을 해소하기도 한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뭔가로 계속 채우고자 애쓴다. 채우면 채울수록 공허와 부족함을 느낀다. 소셜 네트워크와 다양한 인간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허하다.

60대 후반의 여성이 전화 상담을 했다. 사십여 년을 혼자 살다가 왜 늦은 나이에 배우자를 찾는지 궁금했다. 나이와 경제력, 이혼과 사별 여부, 자녀 양육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마지막에 학력을 물었더니 "이 나이에 그까짓 학력이 필요하나요? 적당한 대학 나왔어요. 건강하고 성실하고 대화가 통하면 되지요. 그리고 나는 상대방에게 의지할 일도 없고 생활비도 서로 반반씩 부담하고 맛난 거나 먹고 여행이나 같이 갈수 있으면 돼요. 크게 바라는 거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서울에서 중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다가 명예퇴직한 엘리트 여성이었다. 퇴직 후 경북에서도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M 읍으로 여행 왔다가 풍광과 분위기에 반해서 서울의 값비싼 아파트를 팔고 땅을 사서 귀농했다. 결혼생활 1년 반 만에 어떤 사연으로 딸아이 하나 낳고 이혼을 했다 한다. 딸은 할머니 손에 길러지고 모녀간에 지금까지 내왕이 없다 한다. 자연친화적인 시골의 삶이 좋았지만 외로움 때문에 동반자가 필요했다. 친구들이 없냐고 했더니 그녀가 마을에서 두 번째로 어리다고 했다. 다들 팔순이 넘은 노인들이라 진정한 대화가 되지 않았다. "형님 오늘 날씨가 왜 이리 궂어요? 점심은 뭐 잡수셨어요?" 이런 일상적인 대화만 나눌 수 있었다. 사람이 없어 외로운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이 선생님과 이렇게 대화만 해도 속이 뻥 터졌어요 남자친구가 없으면 여자친구라도 뜻이 맞는 친구가 있어서 노후를 외롭지 않게 보냈으면 좋겠어요." 그녀와의 대화 속에 짙은 외로움이 구석구석 묻어났다.




현대인은 외롭다.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애완견을 자식처럼 동반자처럼 사랑한다. 그녀에게도 TV 시청이 유일한 외로움을 극복하는 출구였다. 심지어 TV 속의 인물들과 대화를 주고 받는 솔로들도 있다. 일본에서의 경우도 히키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의 문제로 정부가 고심을 하고 있다. 그들은 고독과 외로움 때문에 사회문제를 일으킨다. 한국사회도 은둔형 외톨이 들이 증가 추세라 하니 걱정이다.
사십 대 초반의 초등학교 여교사는 솔직히 혼자 사는 게 불편한 건 없지만 그녀 역시 외롭다고 했다. 내성적인 성격의 그녀는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는 무미건조한 일상에 익숙해 있었다. 명절 때는 부모님이나 친척들의 눈을 피해 혼자 영화관에 가거나 사우나에서 시간을 보냈다. 눈높이를 낮추더라도 올해가 가기 전에 남자 친구를 만나길 원했다. 어쩌면 결혼과 연애가 외로움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였다.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인간관계는 일방적인 통행이 될 수 없다. 결혼하면 상대가 나를 위해 헌신하고 나만 바라보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다해준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상대방의 생각이나 태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내게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그것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공감능력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결혼을 생각하면 그것은 이기적이다. 심지어 미래의 인간은 외로움 때문에 로봇과도 자연스럽게 결혼한다고 미래학자들은 말한다.

타이완의 유명한 소설가이면서 시인인 장 쉰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소통의 부재에서 고독이 시작된다. 언어가 소통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 언어는 그저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로봇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없다. 함께 대화하고 함께 밥 먹고 함께 걸어갈 그 누군가의 존재는 서로에게 건강한 삶의 에너지다. 대화가 그리운 사람들끼리 만나서 마음을 공유하고 진실의 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동반자가 있는 삶이 필요하다.
이 가을엔 수많은 솔로들이 서로 외로움을 달래주고 사랑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만나서 축복받는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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