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복지논단] ‘흰지팡이날’과 시각장애인의 권리
[대구복지논단] ‘흰지팡이날’과 시각장애인의 권리
  • 승인 2022.10.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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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관수 대구광역시 시각장애인복지관 관장
10월 15일은 ‘흰지팡이날’이다.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각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해 지정한 날이다. 이는 안과 의사인 리처드 후버 박사가 시각장애인이 독립보행할 수 있도록, 최초로 고안한 흰지팡이의 상징적인 의미를 부각한 명칭이다. 1980년 10월 15일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WBU)가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신장하고 사회적인 관심을 이끌어 내자는 취지에서 선포하였다.

당시 선포된 흰지팡이 헌장에는 그 정신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첫째, 흰지팡이는 동정, 무능의 상징이 아니라 자립과 성취의 상징이다. 둘째, 흰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이 마음놓고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셋째, 시각장애인 관련 기관과 정부는, 이날을 기해 시각장애인의 완전한 사회통합과 올바른 인식 고취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헌장의 문장들만 보면, 참으로 금과옥조의 전형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흰지팡이 헌장이 공표된 지 42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각장애인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시각장애인 당사자로서 필자가 느끼는 바를 기술해본다.

필자는 매일 2시간가량의 흰지팡이 보행을 한다. 출퇴근시 지하철을 이용하고 교차로와 횡단보도 보행도 한다. 시민들과의 접촉이 일상적이다. 그러기에 시각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반응 역시 여과 없이 체감하고 있는 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각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은 긍정적인 변화로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필자가 흰지팡이로 보행할 때의 아이들의 반응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20년 전에는, 눈이 진짜 안 보이느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신기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더니 10년쯤 지나자, 유도블럭 위의 장애물을 알려주거나 슬그머니 치워주었다. 최근에는 아이들이 말을 걸고 다가와 도와주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인식의 긍정적인 변화는, 비단 아이들뿐만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흰지팡이 헌장이 추구하는 바와 같이, 그동안 이루어진 적극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장애교육의 성과로 판단된다. 동정의 대상으로 혀를 차는 반응들은 사라졌고, 동등하게 함께하려는 모습들이 역력하다. 지하철 승하차시에도, 도움을 적극적으로 제의하고 자리 안내도 매우 친절하다. 건네는 말투와 태도에서, 시각장애인을 한 사람의 시민으로 대하는 분위기가 확연하다.

그렇지만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이러한 긍정적인 인식 변화와는 달리, 시각장애인의 권리 보장은 미흡한 현실이다. 시각장애인의 이동권과 참정권 그리고 정보접근권 확보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버스 이용의 제한과 장애인콜택시의 부족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시각장애인이 혼자서 버스를 타기란, 숫제 그림의 떡이다. 불법 설치된 볼라드로 인한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참정권에 있어서도 시각장애인의 권리는 외면당하고 있다. 점자형 선거공보물의 부실로 인한 알권리 침해와 기표 자체의 어려움이 그것이다.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의 비합리적인 종합조사표 문항 역시 권리 보장을 가로막고 있는 요소이다.

한편 우리 사회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경제활동 비중이 폭증하였다. 그런데 웹접근성 부족으로 인한 시각장애인의 온라인 경제활동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일례로 대형 온라인쇼핑몰 접근성 미비와 관련해서는 현재 법적 소송으로까지 비화된 상태이다. 모바일환경의 베리어프리 미비 또한 새로운 차별을 만들고 있다. 스마트기기의 접근성 부족과 디지털뱅킹의 한계가 그것이다. 특히나 키오스크(무인결제기)의 확대에 따른 이용 제한과 터치 방식의 스마트월패드로 인한 이용 불가는, 시각장애인의 일상적 불편을 넘어 안전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한결 아름답고 동등해졌다. 그렇지만 시각장애인과 사이버 환경 사이는 오히려 멀어졌다. 풀터치 방식의 스마트기기와의 간극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는 가속 일로에 있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을 이렇듯 방치한다면, 그 차별 정도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차별이 사회적 고립으로 고착되기 전에, 차별이 회복 불능의 늪에 갇히기 전에, 정부와 기업은 각성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지금 이 순간이 최선의 타이밍이다. 장애인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충분한 환경이고 보면, 정부와 기업의 작은 관심만 투자된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각장애인 역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안전하고 품위있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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