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2022 추석
[대구논단] 2022 추석
  • 승인 2022.10.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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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대구 사람들의 추석은 중앙고속도로에서 시작(?)된다. 가을날 중앙고속도로를 탄다. 차가 막힌다. ‘어느 누가 사고를 쳤군’ 중얼거리며 앞 차 꽁무니만 보고 기어간다. 꽤 먼 거리를 왔는가 싶은데도 정체는 풀리지 않는다. 원인을 몰라 궁금해하다 트렁크에 예초기를 실은 차를 보았다. ‘아, 추석이 얼마 안 남았구나.’ 추석을 앞두고 토, 일요일에 의성으로 안동, 영주로 고향 산천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조선 동인의, 남인의 후예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올해에는 차가 좀 뜸한 것 같다. 코로나 2년 동안에는 펜더믹 탓이려니 하였지만, 코로나 통금도 해제되었는데 코로나 핑계만 될 수 없다.

조상 산소 벌초에 지극정성인 후배가 있다. 그는 추석 무렵이 되면 산소에 가느라 무척 바쁘다. 공직에 근무하는 탓에 몇 주, 주말은 반납이다. 올해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통화를 했다.

“벌초는 어찌 되었나?”

“전번 주에 의성 가서 아버지, 어머니 산소는 마쳤고, 오늘은 안동에 가려고해요” 문중 산소에 가는 모양이다.

“또 제수씨하고, 형하고 같이 가겠네”

“집에서는 갑자기 배가 아프다나요, 형수도 갑자기 몸이 안 좋고, 머스마 둘이만 가요.

“안으로 두 분 모두 갑자기 아프다고? 허허, 참….”

이 부부들은 펜더믹 전까지만 해도 벌초에 열심이었다. 공무원 부부인 형제는, 안팎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오히려 제수씨들이 서둘렀다. 도시락과 간식을 차에 싣고, 조상 산소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팬데믹 인심이 사람을 변하게 한 것인가?

요사이 벌초 이야기가 구구절절하다.

80대 노부부가 있다. 노부부는 추석이 다가오면 고민이 된다. 벌초 때문이다. 벌초는 원래 자손들이 직접, 조상님을 돌보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야 하는데 건강상 형편이 안된다. 작년에는 벌초를 농협에 부탁하였다. 본인들이 하는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주변도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문제는 돈이다. 부모님하고, 조부모까지 다섯 상부(基)나 되어 100만 원 가까이 지출된 것이다. 올해 벌초는 농협을 이용하지 않았다. 작년에 너무 잘해놓아서 올해는 부부가 며칠 동안 잡풀만 뽑는다고 했다, 경제 사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S는 벌초 때만 되면 조카에게 미안하다.

그는 평생 맞벌이를 했다. 그러다가 아들은 낳지 못하고 딸 하나만 낳았다. 어쩌다 보니 딸 하나를 키우게 된 것이다. 딸 하나 있어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잔재미는 아들보다 더 쏠쏠한 것 같았다. 문제는 벌초이다. 그는 평소 벌초에 주도적이었다. 직장에 있을 때나, 퇴직하여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세월이 그의 열정을 식게 했다. 팔십이 되어가니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안 아픈 곳이 없다. 같이 벌초하러 다니는 조카도 서너 군데 아픈 곳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말이 조카이지 조카도 칠십 노인이다. 땀방울을 흘리는 조카의 뒷모습이 고맙다. 슬며시 조카의 주머니에 작은 봉투를 찔러 주었다. 몇 번 뿌리 치던 조카는 이제 모르는 척한다. 조카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조카가 있고, 늙은 나라도 있으니 벌초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없어지면 어이 될꼬, 가을바람 풀잎에 스칠 때 보름달이나 찾아오려나!

벌초하는 이들은 대부분 노인이다. 벌초는 노인에게는 힘든 일이다. 노인은 모두 몸이 시원찮다. 퇴행성 질병을 앓고 있다. 늙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빠르고 늦을 뿐이다. 이럴진대 벌초하는 곳에는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자녀들이 벌초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다. 이유는 가지가지다. 아이들이 싫어하여, 벌에 쏘이고 가시에 찔릴 위험 때문에, 공부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그 아이들은 위험한 설악산, 지리산에는 잘도 올라간다. 시간이 없다는 아들은 주말이면 강원도 단풍길을 차로 가득하게 한다. 또 공부해야 한다는 아이는 게임에 얼마나 오래 매달리고 있는지. 부모들의 잘못된 생각이다.

자식들은 귀하고 예쁜 존재들이다. 아이들이 싫어하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누군들 권하고 싶겠는가? 그러나 부모들이 아차 하는 순간, 벌초는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엔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것이다.

한적한 산소의 묘비석 비문이 새롭다.

‘왔니? 고맙다, 사랑한다, 행복해라. 아빠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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