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변화하는 K-호러, 다양해지는 괴물들
[대구논단] 변화하는 K-호러, 다양해지는 괴물들
  • 승인 2022.10.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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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진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스토리 장르 중에서 ‘아트호러’는 초자연적 괴물이 등장하여 공포감을 주는 이야기다. 초자연적 괴물이란 귀신, 좀비, 악마, 늑대인간, 저승사자 등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작가의 상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포의 스토리 캐릭터를 뜻한다. 우리나라 아트호러를 지배해 온 대표적인 초자연 괴물은 여귀(여자귀신)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여귀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효과적인 괴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엔 다양한 괴물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K-호러의 새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은 변화하는 한국 아트호러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백문임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후기의 고전소설 865편 중 112편에서 여인이 자살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허구적 소설이지만 여인들이 자살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조선후기에 정착되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와 여성을 구속하는 열녀, 효부, 정절 등의 폭압적 관습들이라고 볼 수 있다. 자살한 여인이 원귀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김인향전>, <유최현전>, <접동새>, <장화홍련전>...등을 찾을 수 있으며, <장화홍련전>은 1924년, 1936년, 1956년, 1972년에 영화를 통해서도 일반대중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외에도 1923년 경북에서 채록한 영남루 전설인 <아랑전설>이 여귀의 원혼담을 들려주고 있다. 이러한 여자귀신의 스토리들은 주로 억울하게 죽은 여인이 자신의 억울함을 사또에게 읍소하여 한을 해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귀신으로 나타난 장화, 홍련이나 아랑은 초자연적 존재지만 사람을 위협하거나 공격하는 괴물이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해한을 관헌에 호소하는 수동적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고전소설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여귀는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연민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967년 권철휘 감독의 영화 <월하의공동묘지>에는 한국 아트호러의 첫 번째 괴물 캐릭터로서 인간을 위협하는 여귀가 탄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간통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자살했던 주인공 명순은 자신의 아들까지 살해하려는 가정부 때문에 무덤을 가르고 귀신으로 돌아와 잔인한 복수를 하는 공포영화의 본격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고전소설 초기에는 가부장 질서 속에 순응적이고 읍소형의 특성을 가진 여귀는 <월하의공동묘지>를 시작으로 한국호러를 이끄는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여귀로 자리를 잡는다. 사실 190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도 미국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다양한 괴물(드라큐라, 프랑캔슈타인 등)들이 한국 극장가에 이미 넘쳐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호러스토리는 <월하의공동묘지>를 시작으로 외국에서 수입된 괴물들을 제치고 여귀가 그 권좌를 차지하는 역사를 보여준다. 김훈순, 이소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호러영화가 매년 5편 이상 제작되어 극장가에 걸리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 여귀가 그 중심에서 활약했던 것이다.

여귀 중심의 천편일률적 한국 호러는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명맥유지가 힘들 정도로 크리에이티브가 빛을 보지 못한다. 미국에서도 호러장르가 대중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1973년 크리스마스에 개봉된 <엑소시스트>가 엄청난 관객을 끌어 모았으며, <캐리, 1976>, <할로윈, 1978>, <에일리언, 1979> 등의 새로운 괴물들의 탄생을 알리며 호러장르의 부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월하의공동묘지>에서 출발한 한국 아트호러는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동안 메인 캐릭터로 활약했던 여귀에서 벗어나 한국 호러는 2000년대 들어서 다양한 괴물들을 사용하며 호러 장르를 꽃피우고 있다. 한강에서 탄생한 봉준호 감독의 매우 특이한 괴물은 일본의 <고질라>와 같이 환경파괴의 결과물로 인식할 수 있다. 최근 <부산행, 2016>, <곡성, 2016>, <검은사제들, 2015>, <연가시, 2012>, <반도, 2020> 등 대부분의 한국 호러영화들이 여귀가 아닌, 좀비, 악마, 기생충 등 괴물의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 괴물의 다양성은 K-호러가 크리에이티브의 활력을 찾아가는 과정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패션 따라 옷을 입고, 벽화마을이 여기나 저기나 비슷하고, 도시마다 건물도 유사한 디자인 일색이다. 다양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오히려 집단화, 통일화되는 경향을 보였던 우리나라의 호러스토리가 그동안 여귀중심이었지만 이제는 다채로운 괴물들의 스토리를 만들며 대중의 흥미와 사랑을 불러들인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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